■ 대공황 마니아에서 세계 경제의 사령관으로
(1) 대공황의 교훈에 주목하라!
① 대공황 마니아 벤 버냉키
사실 버냉키를 소개할 때는 의례 “대공황 마니아”(a Great Depression buff)라는 수식어가 붙게 마련이다. 지난 2000년 자신의 대공황 연구의 집성판이라 할 『대공황 연구』(Essays on the Great Depression)를 내면서 스스로를 규정한 표현이다. 이런 그의 입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한 에피소드는 그가 지난 1998년 학자 시절 동료 마크 거틀러에게 밝힌 소견이다. “지질학을 이해하려면 지진을 연구해야 하듯이, 경제학을 이해하려면 미국과 세계 경제 사상 최악의 재앙[대공황을 의미]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대공황 퍼즐 풀기”를 “거시경제학의 성배”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공황 이후 수십 년간 상당수 전문가들과 정책 결정가들은 대공황이 과잉 투자와 부실한 기업 지배구조, 그리고 1920년대 투기 과잉(결국 1929년 증시 폭락으로 막을 내린)의 불가피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런 견해는 1955년 존 케네쓰 갤브레이쓰가 쓴 『1929년 대폭락』(The Great Crash, 1929)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하지만 밀턴 프리드만과 애너 제이콥슨 쉬워츠는 1963년 발표한 『미국의 통화사, 1867~1960』(A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867-1960)을 통해 이런 시각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대공황이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연준의 “서투른” 대응에 따른 것이라는 발본적인 주장으로 말이다.
프리드만과 쉬워츠의 이런 시각을 이른바 “화폐적 해석”이라고 한다. 여기서 이들은 우선, 연준이 대공황 직전인 지난 1928년 (어리석게도) 월가의 투기를 종식시키겠다는 의욕에 불타 금리를 인상했고, 그 결과 이듬해 경기침체가 초래되면서 주식시장 대폭락 사태를 촉발했다고 주장한다. 또 이 과정에서 연준은 수천 개의 은행들이 도산되고 통화공급이 급감하는 것을 그저 방관하기만 했다고 지적한다. 사실 당시 연준은 부실 은행들이 도산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히려 금리 인하는 당시 금 본위제 하에서 외국인들로 하여금 달러화 투매를 조장해, 금에 대한 달러화의 고정 가치를 잠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바드 대학 경제학과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한 버냉키는 1970년대 후반 MIT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던 시절 이 책을 탐독했다. 그는 지난 2002년 프리드만의 9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한 컨퍼런스에 참석해 “당시 저는 이 책에 빠졌고, 결국 통화 경제학과 경제사를 공부하게 됐지요”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리고 당시 연준 이사이던 버냉키는 프리드만에게 “대공황과 관련해 당신이 옳았고, 실제가 그랬지요”면서, 그러나 “실로 유감이지만, 당신의 도움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며 자신감을 토로했다.
1979년 박사 학위를 받은 버냉키는 이후 스탠퍼드 대학에서, 그리고 1985년부터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지금 뉴욕 대학의 경제학과 학과장으로 있는 그의 지기, 거틀러는 당시만 해도 통화정책은 야심만만한 학자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분야가 아니었다고 술회한다.
1970년대의 고(高)실업과 고인플레는 연준의 평판을 잠식했고, 당시 유행하던 합리적 기대 이론이나 실물경기순환론 등의 새로운 경제 이론들에서는 중앙은행이 성장과 고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식의 평가가 주종을 이루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버냉키는 대공황기 중 통화정책의 역할을 연구하는 데 전념했다. 그리고 프리드만과 쉬워츠의 이론이 대공황에 대한 사고를 혁명화하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대공황의 장기 지속성과 심도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는 점을 찾아냈다. 사실 이론적으로 보자면,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은 모두 장기 성장이나 고용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경제 주체들이 물가 변동에 적응해 지기 때문이다. 물가가 하락하면 임금도 하락할 것이고, 따라서 이윤이나 고용, 구매력에 미치는 영향은 중립적이게 된다. 물론 차입자들은 부채 가치가 고정돼 있어 디플레이션으로 큰 타격을 입겠지만, 대신 채권자들이 수혜를 누린다. 따라서 경제 전체적으로는 디플레이션은 일종의 ‘빨래’(wash)에 불과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버냉키는 1983년 대공황에 관한 첫 번째 주요 논문을 발표한다. 디플레이션은 비록 여신 가치는 불변이라 하더라도 결국 담보 가치를 잠식하고 차입자의 순자산을 위축시키게 된다다. 이는 결국 전형적인 차입자들로 하여금 이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보다 위험한 프로젝트로 내몬다. 그리고 은행들은 점차 대출을 꺼리고, 자신의 돈을 정부 유가증권에 투자하기를 선호하게 된다. 나아가 많은 차입자들이 부도가 나고 또 담보 가치가 떨어져 부채 상환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은행 스스로도 역시 부도가 날 수 있다. 이렇게 디플레이션은 경제 활력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는 신용 흐름을 차단하게 된다.
버냉키는 통계적 검증을 통해 “나의 이론은 다른 대안들과 달리 대공황의 이례적인 지속성과 심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실 이런 주장은 “거의 오만하다고 할 정도인 그의 지적 대범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후 버냉키와 거틀러는 이른바 ‘금융 가속도’(financial accelerator)로 알려지게 된 메카니즘을 정교화하는데 오랫동안 공동 작업에 임했다. 금융 가속도는 자금시장 조건의 작은 변동에 의해 야기된 최초의 충격이 총생산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하는 표현. 여기서 둘은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버냉키가 주로 대범한 주장을 맡고, 거틀러는 잘못된 것을 그에게 지적하는 식”이었다.
물론 일부 학자들은 대공황기 중 이런 디플레이션의 막중한 역할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다. 또 지금은 당시 많은 국가들이 금본위제를 고수하고 있었던 점 등 그 외 다른 요인들 역시 중요한 변수로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버냉키와 거틀러가 발전시킨 금융 가속도 이론은 현대 거시경제학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게 됐다. 특히 지난 1990년대 초반 미국의 신용 경색과 1990년대 말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설명하는 데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다.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 본 특집의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