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와 같이 대선 일정을 앞둔 시점에서는 연준리(FRB)가 금리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통상적이겠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월스트리트저널(WSJ)는 현재 금융시장의 기대 대로라면 연준리는 대선을 전후한 시점에 금리를 인상해야하는데, 이러기 위해서는 통화정책 구사가 정치적 외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저널에 따르면 이미 과거에도 대선을 앞두고 연준리가 금리를 인상하거나 인하한 사례들이 존재하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는 금리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관례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신문은 이런 과거 사례를 소개하면서 과거에도 금리인상을 단행한 경험이 있는 그린스펀 의장이 소신대로 통화정책을 구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지금 연준리가 정치적 변수를 고려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문은 덧붙이고 있다.◆ 연준리 통화정책, 중요한 대선 변수전 연준리 의장 아서 번스(Arthur Burns)는 1972년 닉슨(Nixon)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연방준비은행 관련 역사가인 앨런 멜처(Allan Meltzer)가 역사적인 기록을 샅샅이 훑어보아도 그런 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이런 혐의는 쉽게 씻어지지 않았다.그러나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의장은 1988년 대선을 앞두고 금리를 수차례 인상한 바 있고,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이 지명한 전임 폴 볼커(Paul Volcker) 의장은 1980년 대선을 몇 달 앞두고 금리를 크게 올려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이 집권하는데 도움을 줬다.연준리 관계자들은 정치적인 공세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금리 변화 여부는 선거가 아니라 경제여건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지난 달 다우존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게리 스턴(Gary Stern) 미네아폴리스 연준 총재는 "만약 적절한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대선일정을 앞두고도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대선의 변수로 등장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정책적 올바름을 위해서 그런 부분은 일차적인 고려요인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연준리도 선거일정을 고려한다그러나 지난 1992년 10월 FOMC 의사록을 보면 그린스펀 의장의 언급 중에 정책이사들이 부시-클린터 대선 일정이 임박한 시점에서 금리를 인하해야 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망설였음이 확인된다. 당시 그린스펀 의장은 "관례적인 절차처럼 선거가 끝날 때까지 한 걸음 물러나서 사태를 관망하는 사치를 부릴 수 있었으면 한다....[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당시 회의에서 로버트 맥티어(Robert McTeer) 달라스 연준 총재는 "이렇게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는 금리를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통상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에드워드 보엔(Edward Boehne) 필라델피아 연준 총재는 "그건 진실이 아니다. 이미 FOMC가 선거일을 한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금리를 인상한 사례가 있다"고 반박했다.결국 연준리는 1992년 10월 FOMC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1년 이상 금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나중에 조지 H.W.부시 대통령은 연준리가 금리인하에 늦게 대응한 것이 대선에서 패배하는데 하나의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그린스펀은 공화당편?이런 상황은 올해 부시-케리 대선에도 정확히 적용된다. 현재 금융시장에서는 연준리가 연말, 정확히 선거 전후 시점에 현행 1% 연방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용시장이 위축되어 있고 인플레 상승 압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공화당원인 그린스펀이 부시의 재선을 돕기 위해 저금리를 유지한다고 비난하고 있다.또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린스펀이 부시의 조세 인하를 지지한 사실에 분노를 표명한 바 있다. 특히 전 민주당 경선후보 하워드 딘(Howard Dean)은 그린스펀이 지나치게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혐의를 제기하면서 교체를 주장했다. 그러나 케리 후보는 그런 비판은 제기하지 않았다.◆ 금리인상이든 동결이든 정치권은 자기 나름대로 해석 물론 대선을 앞두고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공화당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스캇 리드(Scott Reed) 공화당 전략가는 이번 대선에서 경제문제가 제 1의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마당에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변화를 구사할 경우 공화당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린스펀은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만큼 정치적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다라고 언급했다.그러나 1991년부터 1997년 사이 연준리 이사로 재직했고 또 전 부시 행정부 경제자문역을 맡았던 로렌스 린지(Lowrence Lindsey)는 연준리가 조기에 금리를 인상할 경우 양 당은 모두 그것을 대선에 유리한 방향에서 해석할 것이란 분석을 제기했다.민주당은 부시 정부의 재정적자를 비난하고 나설 것인 반면, 공화당은 금리인상은 경기회복의 증거라고 강조할 것이란 얘기다. 린지는 정치지형이란 원래 복잡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연준리는 그런 것을 무시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정석대로 하는 것이 최선현재 케리후보 대선캠프에서 자문역을 맡고 있는 진 스펄링(Gene Sperling)도 "연준리가 계산도 되지 않는 정치적 변수를 헤아리는데 힘을 쏟지 말고 정석대로, 경기지표가 지시하는 바대로 대처하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그린스펀은 연준리 의장에 재직한 이후 이번으로 다섯 번째 대선일정을 맞이하게 됐다. 1988년에 그는 금리를 6차례나 인상했는데, 그 중 두 번은 대선일정을 바로 앞둔 8월에 단행됐고 또 두 차례는 대선이 끝난 시점에 결정됐다. 1996년에는 1월에 금리를 인하했고 그 다음부터는 금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그 다음 2000년의 경우 5월까지 금리를 세 차례 올렸다.보통 연준리는 정치적인 외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대통령들은 연준리 내에 정치적 압력을 불어넣기 위한 시도를 나타냈다. 대표적으로 레이건 대통령은 금리 인하를 목적으로 연준리 의장을 지명, 볼커 의장이 자리를 떠나게 만들었다.지난 90년대 초 부시 정권은 그린스펀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부시 대통령은 아직 임기만료 시점도 되지 않은 그린스펀 재신임을 약속했다. 현재 부시행정부는 과거 클린턴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연준리를 비난하거나 통화정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않도록 조심스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그린스펀 의장이 반대로 재정정책에 대해서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해주기를 바라는 정치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뉴스핌 Newspim 취재본부]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