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안성혁 씨가 2011년 탈북 후 30일 한국에 정착해 연세대 졸업 뒤 미국에서 한반도 안보를 연구하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이 됐다.
- 2009년 화폐개혁 이후 극심한 빈곤과 노동, 굶주림을 겪으며 체제에 대한 의문과 분노를 키운 그는 로이터 인턴과 팟캐스트 활동을 거쳐 미국 유학과 국제정치 연구의 길을 선택했다.
- 현재 시카고대에서 권위주의 정권 생존 전략을 연구 중인 그는 탈북 경험을 강점으로 보고 후배들에게 유학·진로 조언을 전하며 남북한과 미국을 잇는 가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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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목 따 오겠다'던 열성분자
강냉이밥도 못 먹는 가난 시달려
"남북한과 미국 가교 역할" 포부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못 먹으니까 사상이 변하더라고요."
한반도 최북단인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자란 한 소년이 탈북 15년 만에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한반도 안보를 연구하는 장학생이 됐다. 한때 '남조선에 가서 대통령 목을 따오겠다'고 말하던 '열성분자'였던 이제 국제정치학자로서 한반도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주인공은 미국 시카고대학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안성혁 씨다. 그는 로이터통신 인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을 거쳐 미 국무부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안 씨는 자신의 삶을 '감사의 연속'이라고 표현했다.

◆"하루 한 끼도 어려웠던 시절…체제에 의문"
안 씨의 변화는 거창한 정치적 사건이 아닌 '배고픔'에서 시작됐다. 2009년 북한 화폐개혁 이후 가정 형편은 급격히 악화됐다. 하루 한 끼도 어려운 날이 이어졌고, 학생 신분이던 그는 농촌 동원과 도로 공사에 반복 투입됐다. 겨울 공사 현장에서 손가락을 절단하는 사고까지 겪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친구들은 강냉이밥이라도 싸왔지만 그는 그마저도 없었다. 매일 집까지 뛰어가 식은 죽을 먹고 돌아오는 생활이 반복됐다.
안 씨는 "나는 이 나라에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는데 왜 밥 한 끼 해결해주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때부터 체제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고 말했다.
전환점은 2011년이었다. 군 입대를 앞둔 시점에서 중국에 있던 고모를 통해 탈북 기회가 찾아왔다. 조심스러운 한국행 제안에 그는 "0.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미 체제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향했고,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입국했다.
한국 정착 이후 일반 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 그는 학업과 함께 다양한 활동에 도전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북한 일상을 다루는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미디어 경험도 쌓았다.
이 경험은 방송사 근무 기회로 이어졌고, 이후 풀브라이트 장학금 지원 과정에서도 중요한 자산이 됐다.
◆ 로이터 인턴이 바꾼 진로…"한반도 문제는 국제 문제"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로이터통신 인턴 경험이었다. 그는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얽힌 국제 문제"라며 "특히 한국에 미국은 핵심 동맹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영어는 큰 장벽이었다. 그는 "박사과정을 바로 시작하기엔 부족하다고 느꼈다"며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2021년 3월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해 두 달 만에 시험과 지원서를 준비했고, 탈북 과정과 개인 경험을 중심으로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통해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이후 시라큐스대학교에서 국제관계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그는 시카고대학교에서 추가 석사 과정을 밟으며 논문을 준비 중이다. 연구 주제는 '권위주의 정권의 생존 전략'이다.
특히 북한과 중국 관계에 주목한다. 그는 "북한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면서도 때로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헤징(hedging)' 전략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 방법으로는 '로동신문' 분석과 탈북민 인터뷰를 병행할 계획이다.

◆"탈북민 경험, 약점 아닌 자산"
안 씨는 탈북민 후배들에게 현실적인 조언도 전했다. 그는 "석사 후 취업인지 박사 진학인지 방향을 먼저 정해야 한다"며 "학교 커리큘럼을 통해 실무 중심인지 이론 중심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링크드인 등을 통해 먼저 유학한 사람들에게 연락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언어 기준으로는 토플 80점(아이엘츠 6.5) 이상을 권장했다. 특히 그는 탈북 경험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개인의 스토리를 중요하게 본다"며 "탈북 경험이 장학금이나 진학 과정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을 결심하게 만든 가족, 도움을 준 교수, 기회를 제공한 기관과 사람들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족 있다. "그때 고모가 아니었다면, 교수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안 씨의 목표는 박사 과정 진학과 함께 한반도 문제를 더 깊이 연구하는 것이다. 나아가 남북한과 미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함경북도 경성군의 한 소년이 시카고에서 한반도 평화를 연구하기까지. 그의 지난 15년은 '생존'에서 '연결'로 이어진 시간이었다.
<뉴스핌-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yjlee@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