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까지 장기 계약 봇물
가격 결정력과 보수적인 공급
이 기사는 6월 18일 오후 1시20분 '해외 주식 투자의 도우미' GAM(Global Asset Management)에 출고된 프리미엄 기사입니다. GAM에서 회원 가입을 하면 9000여 해외 종목의 프리미엄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PC와 가전용 저장장치 수요가 둔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시장의 무게중심이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그리고 인공지능(AI) 인프라 쪽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웨스턴 디지털(WDC)과 씨게이트 테크놀로지(STX) 주가가 연일 상승 흐름을 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때 낸드플래시 기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에 자리를 내줄 사양 산업으로 여겨졌던 HDD가 오히려 생성형 AI 확산의 최대 수혜 부문으로 재조명 받으면서 해당 시장의 양강으로 꼽히는 웨스턴 디지털과 씨게이트가 상승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특히 웨스턴 디지털은 2026년 연간 생산 물량이 이미 전부 소진됐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시장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028년까지 장기 공급 계약이 줄지어 있어 향후 수 년간 매출 성장이 확실시 되는 상황.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 2월 2026 회계연도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어빙 탄 최고경영자(CEO)는 업체의 하드드라이브 생산 일정이 2026 말까지 꽉 찼다고 밝혔다. 블록스앤드파일스(Blocks & Files) 보도에 따르면 그는 상위 7개 고객사로부터 확정 구매 주문(firm purchase order)을 확보했다고 밝히며 추가적인 생산설비 확장 없이도 기존 설비의 가동률 개선만으로 더 많은 엑사바이트를 고객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2026 회계연도 1분기 웨스턴 디지털은 204 엑사바이트의 드라이브 용량을 출하했다. 이는 전년 대비 23% 증가한 수치로, 이 중 183 엑사바이트가 고용량 니어라인 ePMR(nearline ePMR) 드라이브였다는 점에서 회사의 출하 구조 자체가 이미 데이터센터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탄 CEO는 "현재 제품 포트폴리오에 어떤 추가적인 단위 생산 능력도 더하고 있지 않다"며 이번 호황이 설비투자 확장이 아니라 기존 자산의 효율화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빅고 파이낸스(BigGo Finance)에 따르면 이 같은 매진 현상은 2026년 한 해에 그치지 않는다. 웨스턴 디지털은 상위 고객사 중 두 곳과 2027년 물량에 대한 장기공급계약(LTA)을 체결했고, 다른 한 곳과는 2028년에 대한 장기공급계약을 이미 체결한 상태다.
두 건의 계약은 향후 생산될 드라이브에 대해 물량과 가격을 동시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체결돼 미래 생산 물량 가운데 상당 부분을 사실상 공개시장에서 빼내는 효과를 낳고 있다.

24/7 월스트리트(247 Wall St.) 역시 이 같은 장기 계약 구조를 두고 하이퍼스케일러 AI 데이터센터들이 저장 인프라 용량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통상적인 하드웨어 기업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의 매출 가시성을 제공한다는 얘기다.
수요가 폭발한 이유는 명확하다. 전체 매출의 압도적 비중이 하이퍼스케일러의 클라우드와 엔터프라이즈 부문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통적인 PC 및 소비자용 드라이브 비중은 10% 미만으로 축소된 상태다.
시장 전문가들은 AI 학습을 넘어 추론 단계로 넘어가면서 데이터 저장 부문의 수요가 구조적으로 재부각되고 있다고 말한다.
HDD 수요 확대를 설명하는 데 키워드는 이른바 '지속적 저장(persistent storage)'이다. AI 산업 초기에는 GPU(그래픽처리장치)와 HBM(고대역폭메모리) 같은 컴퓨팅 자원의 부족이 가장 큰 병목이었지만 이제 가공된 데이터를 저장할 공간 자체가 새로운 제약 요인으로 떠올랐다.
빅고 파이낸스는 "GPU와 HMB의 글로벌 공급을 압박했던 AI 붐이 이제는 보다 전통적인 부품인 HDD까지 도달했다"며 "전세계 주요 HDD 공급 업체로 꼽히는 웨스턴 디지털이 가까운 미래의 생산 물량을 전부 예약 받은 상태"라고 전했다.
AI 산업이 단순히 거대언어모델(LLM)을 훈련시키는 단계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 서비스 단계에서 발생하는 추론(inference) 데이터와 에이전트형 AI가 만들어내는 로그, 그리고 로봇과 자율주행 등 물리적 AI가 생성하는 센서 데이터까지 모두 저장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호라이즌 테크놀로지는 씨게이트가 의뢰한 리콘 애널리틱스(Recon Analytics) 설문조사를 인용해 응답자의 61%가 향후 3년 이내 자사 클라우드 기반 저장 수요의 두 배 증가를 예고했다. 응답자의 90% 데이터 보존이 AI 결과물의 품질을 높인다고 답했다. 데이터를 더 오래, 더 많이 쌓아두는 행위 자체가 AI 모델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데 업계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이다.
수요의 절대적 규모를 가늠하게 해주는 또 다른 지표는 데이터센터의 물리적 확장 속도다. 시너지 리서치 그룹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러들은 2025년 1분기 말 기준 1189개의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전세계 데이터센터 용량의 44%에 해당하는 수치다. 시너지 리서치는 2030년까지 전체 하이퍼스케일러 데이터센터 용량이 거의 세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시장 조사 업체 모르도르 인텔리전스 역시 2024년 말 기준 1136개였던 초대형 데이터센터 수가 AI 가속기로 인한 컴퓨팅 환경 재편에 따라 2030년까지 세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데이터센터의 확장이 단순한 컴퓨팅 능력 확충이 아니라 그에 비례하는 저장 인프라 수요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HDD 시장의 구조적 성장 스토리는 AI 산업의 장기 사이클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웨스턴 디지털의 또 다른 경쟁력은 가격 결정력이다. 여기에는 공급 측면의 의도적인 보수성이 자리하고 있다.
디 인포메이션 네트워크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HDD 엑사바이트 출하량은 2023년 하강 기류 이후 지속적인 상승 흐름을 회복해 2025년 말까지 450엑사바이트를 넘어섰고 2026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확장의 본질이 단순한 물량 증가가 아니라 구성의 변화에 있다고 짚는다. 단위 출하량(unit shipment)은 구조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총 저장 용량은 계속 늘어나고, 드라이브 한 대가 담는 데이터 양이 늘어나면서 가격 결정 구조와 업계의 자본배분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웨스턴 디지털과 씨게이트가 신규 생산라인 투자 없이 고용량 드라이브 비중 확대만으로 매출과 마진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