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번 미일 정상회담은 안보와 경제 협력이 주요 의제로 제시되어 있지만, 회담 분위기를 좌우할 변수는 바로 중동 정세다. 특히 이란이 사실상 봉쇄에 나선 호르무즈 해협 문제가 핵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에 해협 안전 확보를 위한 군사적 기여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자위대 파견 가능성을 포함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동맹과 헌법, 에너지 안보가 동시에 얽힌 복잡한 외교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 트럼프의 '무임승차론'과 다카이치의 '딜레마'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부터 호르무즈 해협 문제와 관련해 일본을 직접 거론해 왔다. "일본이 수입하는 원유의 상당량이 지나가는 길목을 왜 미국의 세금으로 지켜야 하느냐"는 이른바 '무임승차론'이다.
이 같은 인식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을 포함한 동맹국들에게 호르무즈 안보 작전에 대한 군사적 참여, 특히 군함 파견을 요구해 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요구다. 일본은 에너지 수입의 9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이 국가 경제와 직결된다. 하지만 동시에 자위대의 해외 군사 활동에는 헌법과 법률, 그리고 국내 여론이라는 분명한 제약이 존재한다.
일본 정부는 헌법과 현행 법제 범위 안에서 어떤 대응이 가능한지 검토에 착수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최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 독자적으로 법적 틀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검토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내부에서는 ▲기뢰 제거 ▲선박 방호 ▲타국 군에 대한 협력 ▲정보 수집 활동 확대 등이 검토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투가 진행 중인 지역에 자위대를 파견하는 데는 법적 장벽이 높다. 일본 정부는 현재의 이란 정세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요건인 '존립 위기 사태'나, 미군 지원을 위한 '중요 영향 사태'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미·이란 간 전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해당 법적 틀을 적용해 자위대를 파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 정부 내에서 강하다.
또 다른 선택지로 거론되는 '해상 경비 행동' 역시 경찰권 행사 성격이 강해 다른 국가를 상대로 한 무력 사용은 상정되어 있지 않다. 일본 관련 선박 보호를 위한 무기 사용은 자기보호 범위에서 가능하다는 해석이 있지만, 실질적인 군사 작전 참여와는 거리가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동맹 기여와 국내 제약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미국 요구에 적극 응하면 동맹 결속을 과시할 수 있지만, 군사적 성격이 강한 작전에 참여할 경우 국내 정치적 반발과 위헌 논란이 불가피하다. 반대로 대응이 지나치게 소극적일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의 '동맹 기여 부족'을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
평소 '보통 국가화'와 자위대 역할 확대를 주장해 온 다카이치 총리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미국 요구에 화답할 경우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지만, 자칫 국내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현실적 선택지는 '제한적 기여'
이 때문에 일본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옵션은 전투 참여가 아닌 제한적 기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으로는 ▲정보 수집 및 초계 활동 확대 ▲해상 안전을 위한 비전투 지원 ▲후방 지원 또는 기뢰 제거(전투 종료 이후) 등이 거론된다.
미국의 요구를 원칙적으로 지지하되 일본의 법적 한계를 근거로 직접적인 전투 참여와는 선을 긋는 방식이다.
일본 정부는 전투 상황이 종료된 이후 기뢰 제거 같은 임무 형태로 자위대 파견이 가능할지도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변수는 경제 문제이기도 하다. 중동발 긴장이 장기화해 유가가 상승할 경우 일본은 수입물가와 연료비 상승 압박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곧 일본 국내 경기와 물가, 나아가 정권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미국의 중동 정책을 지지하는 대신 에너지 수급 안정이나 통상 분야 협력을 끌어내는 형태의 '복합 거래'를 모색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이번 미일 정상회담이 단순한 양자 외교를 넘어 동맹, 에너지 안보, 헌법 제약이 동시에 교차하는 외교 무대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이슈가 됐다.
중동 문제가 공식 의제로 전면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회담의 수면 아래에서는 계속 압박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의 요구와 도쿄의 신중함이 맞부딪히는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가 어떤 방식으로 동맹 기여와 국내 제약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goldendo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