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의 은 선물시장이 '실물 인도 실패' 위기에 직면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 인도 신청 물량이 급증하고 있어 이르면 3월물에서 인도 불이행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다.
귀금속 분석 전문가 빌 홀터의 주장(26일)에 따르면 현재 COMEX의 인도 신청 물량이 평년과 비교해 폭증했다고 한다. 비주요(non-primary) 인도월로 분류되는 1월에만 신청 물량이 4000만온스를 넘어섰다. 과거 같은 시기의 물량 100만~200만온스 대비 20~40배인 셈이다.

현재 속도라면 주요 인도월인 3월에는 관련 수요가 7000만~8000만온스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하지만 COMEX 등록 재고는 1억1000만~1억2000만온스에 불과하다. 재고 소진에 따른 인도 불이행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음을 주장하는 숫자다. 물론 현재 수요가 선취 역할을 해 3월에는 인도 요청이 되레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홀터는 "1월에 4000만온스의 인도 신청이 들어온 것 자체가 극단적인 이상 현상"이라며 "3월에는 더 큰 규모의 인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COMEX가 인도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계약 가치는 제로(0)가 된다"고 했다.
COMEX의 재고 수준에 대해 지적이 나오는 것은 그 수치를 액면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창고에 보관된 은이라 해도 이미 다른 선물계약의 담보로 잡혀 있거나 ETF 보유분으로 묶여 있거나 대출 담보나 리스(대여) 계약에 걸려 있어 실제 가용 가능한 인도 물량은 더 적다는 논리다.
3월 인도 수요가 실제 가용 재고를 초과하면 1980년 '실버서스데이' 사태에 버금가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뒤따른다. 실버서스데이는 1980년 3월27일 목요일 은 시장에서 발생한 역대 최악의 폭락(하루 만에 50%가량 하락) 사태다.
당시 관련 사태의 장본인인 헌트 형제다. 1970년대 달러 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선물 계약과 실물 매집을 통해 은을 대량 사들였고 그 결과 은 가격은 1979년 온스당 6달러선에서 1980년 1월 49달러대로 700% 넘게 폭등했다. 당시 세계 민간 보유 은의 약 3분의 1을 장악했다고 한다.
COMEX는 1980년 1월 이른바 '실버룰7'을 도입해 레버리지 거래와 포지션 규모를 대폭 제한했다. 이 조치로 은 가격이 하락하자 헌트 형제는 마진콜을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3월 마진콜 불이행으로 은 가격이 하루 만에 21달러에서 10달러 후반대로 반토막났다.
헌트 형제는 하루아침에 역대 최대 개인 채무자로 전락했다. 이들에게 자금을 빌려준 은행과 증권사들도 연쇄 도산 위기에 처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주도로 미국 은행 컨소시엄이 긴급 대출을 제공해 시스템 붕괴를 막았다.
홀터는 은 인도 불이행이 벌어지면 금 시장으로 즉각 전이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미국에서 은과 금 선물거래는 COMEX라는 같은 거래소, CME클리어링이라는 단일 청산 시스템을 공유해서다. 은 계약이 인도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시장 참여자들은 금 계약도 동일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홀터의 주장이다.
이 같은 경고가 나오는 것은 귀금속 선물시장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현재 은·금 선물시장의 가격결정 메커니즘은 페이퍼(종이) 계약에 의존한다. 실제 실물 인도 비율은 극히 낮고 대부분의 계약은 현금 결제나 롤오버로 처리된다. 동시다발 실물 인도 요청 부재라는 암묵적 전제 위에 작동한다.
bernard02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