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브론만 남은 베네수엘라… 외국 기업 복귀는 '험로'
중질유는 매력적이지만… 국유화 트라우마 여전
[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미국이 그동안 마약 밀매 차단을 명분으로 내세워온 베네수엘라 압박 정책의 핵심 목적이, 사실상 세계 최대 수준의 원유 매장량에 대한 접근권 확보에 있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정책 기조가 최근 들어 에너지 확보로 뚜렷하게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3일 새벽 기습적인 군사 작전을 통해 베네수엘라의 실권자 니콜라스 마두로를 축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 마러라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조치가 미국 석유 기업들의 베네수엘라 재진출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규모의 미국 석유 기업들이 베네수엘라에 들어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심각하게 붕괴된 석유 인프라를 복구해 그 나라를 위해 돈을 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셰브론만 남은 베네수엘라… 외국 기업 복귀는 '험로'
하지만 외국 석유 기업들이 베네수엘라로 대거 복귀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현재 베네수엘라에 진출해 있는 주요 미국 석유 기업은 셰브론이 유일하며, 셰브론은 베네수엘라 최대의 외국인 투자자다. 다른 글로벌 석유 기업들은 20년 넘게 이어진 부실 경영과 부패로 붕괴된 산업 환경 속에서 현지 정세의 안정성을 먼저 따져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 환경도 부담 요인이다. 베네수엘라의 점성이 강한 중질유를 글로벌 시장에 추가로 공급하더라도, 현재 세계 원유 시장은 추가 물량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유가는 배럴당 60달러 아래에서 머물고 있어 다수의 미국 생산자들에게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글로벌 원유 공급은 올해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셰브론의 전 중남미·아프리카 사업 책임자였던 알리 모시리는 WSJ에 "현재 환경에서 투자한다면 미국 퍼미안 분지와 베네수엘라 중 어디를 선택할지가 문제"라며 "매우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아직 베네수엘라에서 원유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미국 기업들의 진입을 유도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분석가들은 석유·가스 광구 입찰 절차를 허용하는 방식이 가능하다고 보면서, 유럽 기업들의 참여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평가한다.
셰브론은 성명을 통해 "현지 직원들의 안전과 자산 보호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셰브론과 합작사들은 베네수엘라에서 약 3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올해 하루 약 9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 중 약 3분의 1을 셰브론이 담당하고 있다.

◆ 중질유는 매력적이지만… 국유화 트라우마 여전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세계 시장에서 주로 소비되는 경질유보다 무겁고 점성이 강해, 미국 걸프 연안부터 중국·인도에 이르기까지 일부 정유사들이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원유로 평가된다. 미국 셰일 붐으로 생산량은 늘었지만, 미국에서 생산되는 경질유는 베네수엘라·캐나다·멕시코산 중질유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확인된 원유 매장량이 3000억 배럴을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세계 최대 규모다. 다만 과거 국유화 전력은 여전히 외국 기업들의 부담 요인이다. 베네수엘라는 1970년대와 2000년대에도 석유 자산을 국유화한 바 있다.
실제로 코노코필립스와 엑손모빌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인 2007년 자산 국유화 이후 베네수엘라에서 철수했다. 두 회사는 각각 200억 달러와 120억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으며, 장기간의 중재 끝에 일부 손실만 보전받았다.
코노코필립스와 엑손모빌은 WSJ의 논평 요청에 즉각 응하지 않았다.
◆ 트럼프의 오래된 시각 "전쟁의 전리품은 석유"
법학자이자 공공부채 전문가인 호세 이그나시오 에르난데스는 "석유 기업들은 항상 석유를 원하고, 베네수엘라는 그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서도 "정치적 안정은 단순히 마두로 제거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라카스에 기반을 둔 경제학자 오를란도 오초아는, 수만 명의 숙련 인력이 해외로 떠난 이후 사실상 마비된 에너지 산업을 되살리는 일은 '헤라클레스적인 과제'라고 평가했다. 그는 광범위한 경제 안정화 계획 수립과 법 개정, 약 160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 재조정, 미결 중재 사건 해결 없이는 외국 기업들의 복귀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 내내 베네수엘라의 원유를 강조했다. 그는 "지하에서 엄청난 부를 끌어낼 것"이라며 일부 수익을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끼친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군사 개입은 트럼프 대통령이 석유를 전쟁의 전리품이자 미국의 힘을 투사하는 수단으로 인식해 왔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는 평가다. 트럼프는 과거에도 시리아·리비아·이라크와 관련해 군사 비용을 상쇄하거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석유를 확보해야 한다는 발언을 반복해 왔다.
"예전에는 승자에게 전리품이 돌아갔다"며 "나는 항상 석유를 가져가야 한다고 말해왔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은,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를 관통하는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koinwo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