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공급은 정상" 해명에도 늑장공시·부채비율 투명성 지적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엘앤에프가 테슬라와 맺은 3조8000억원대 양극재 공급 계약을 973만원으로 정정하면서 회사의 해명과 실제 상황 사이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99.9% 감액은 단순 물량 조정이 아니라 샘플 가격만 정산한 수준으로, 실질적인 계약 해지와 다름없다는 평가다. 엘앤에프 측은 "다른 (고객사) 출하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시장에서는 제품 경쟁력·공급망 지위·재무 건전성 전반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30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엘앤에프는 전날 공시를 통해 테슬라와 2023년 2월 체결한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 계약 금액을 3조8374억원에서 973만원으로 정정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과 배터리 공급 환경 변화에 대한 일부 프로젝트 구조 및 일정 조정을 사유로 거론했다. 계약 기간은 2024년 1월 1일부터 2025년 12월 31일까지로, 사실상 종료 직전에야 실제 납품한 물량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공개한 셈이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이번 감액 규모가 통상적인 전기차 배터리 수요 둔화(캐즘)나 일정 조정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973만원은 회사 측 설명대로 지금까지 테슬라에 실제 납품된 금액에 해당한다. 당초 수조원대 공급을 전제로 설비 투자와 자금 조달을 진행해온 점을 고려하면, 회사 측 해명과 달리 사실상 계약 해지로 해석된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공시 금액만 보면 샘플 가격만 정산한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양산 공급이 없었다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계약 해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회사 측은 핵심 제품 공급에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다. 엘앤에프 관계자는 "공급 물량 변경에 따른 계약금액 정정으로 주력 제품인 NCMA95 하이니켈 제품의 출하 및 고객 공급에는 어떠한 변동도 없다"며 "한국 주요 셀 업체향 출하 역시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정정 공시는 엘앤에프의 경영·공시 투명성에도 의문을 남겼다. 엘앤에프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테슬라향 공급이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계약 종료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야 정정 공시를 내 늑장 공시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앞서 엘앤에프는 지난 6월에도 늑장공시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경고를 받은 바 있어 반복된 정보 공개 지연이 투자자 신뢰를 추가로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배터리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수주가 어그러지는 일은 종종 있지만, 계약 종료를 며칠 남겨두고 계약금액의 대부분을 지우는 정정 공시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보통은 계약 만료 전에 대략적인 분위기를 알리는 식으로 리스크 일정 부분을 공유해 신뢰도를 지키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계약 해지에 가까운 소식과 늑장 공시 논란은 주가에도 즉각적으로 반영됐다. 공시 직후 엘앤에프 주가는 대체거래소 애프터마켓에서 11%가량 급락한 이후 정규장에서도 9만5000원 선에서 거래됐다. 수조원 규모 테슬라 수주가 사실상 샘플 수준에 그쳤다는 실망감과 계약 진행 상황을 뒤늦게 알린 데 따른 리스크가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무 부담도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엘앤에프의 부채비율은 2022년 135%에서 올해 상반기 기준 460%를 돌파했다. 고정비 부담이 큰 상황에서 테슬라향 대형 물량이 사실상 사라지면, 설비 가동률·이자 상환 여력 모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고금리·원자재 가격 변동에 더해 핵심 고객 리스크까지 현실화했으니 신용등급·추가 조달 조건 등에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클 것으로 관측한다.
미래 먹거리인 LFP(리튬인산철) 양극재 사업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삼원계 하이엔드 모델에서도 직납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상황인데 중국 기업이 장악한 LFP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제품 품질 문제로 인한 수주 무산이 아니더라도 이번 이력 자체가 차기 라인인 LFP 수주 시에도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향후 자금 조달, 설비 투자 의사결정에서도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엘앤에프 관계자는 이번 논란에 대해 "계약 기간이 올해 12월 31일까지였고 고객사와 협의 후 현시점에 공시했을 뿐 의도적으로 늦춘 것은 아니다"라며 "테슬라와 여전히 다양한 프로젝트를 논의 중이나 구체적인 사항은 공시 관련 내용이라 밝히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aykim@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