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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형 경사노위 위원장 "합의보다 숙의…사회적 대화의 방식 바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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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서 기자간담회 개최
"경사노위 기능·대화 의제·절차 모두 새로 모색"
"야간노동 건강권 보호 방안에 초점…추후 검토"
"민주노총 복귀 불투명…진정성 보면 참여할 것"
'합의' 실종 지적에 "결론 도출에 쫓기지 않을 것"

[서울=뉴스핌] 양가희 기자 = 김지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앞으로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는 단순히 대화의 재개에 그치지 않고 대화 패러다임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고 22일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단순히 대화를 이어가는 재개가 아니라 재구조화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5일 취임한 김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기능과 역할 ▲사회적 대화 의제 ▲사회적 대화 절차 세 가지 모두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사노위가 기존 '경제사회노동 정책을 둘러싼 노사 간 이해관계 조정 기구'에서 '미래 설계를 위한 사회적 대화 플랫폼으로서의 공론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의 의제는 기존 노사정 제기 현안 외에도 국민 모두 공감하는 사회적 과제를 '통섭형 의제'로 적극 발굴해 논의하겠다는 구상도 공유했다. 대화 절차는 각 의제의 성격에 맞춰 공론조사 외에도 타운홀 미팅, 시나리오 워크숍 등 다양한 공론화 방식을 적극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뉴스핌] 양가희 기자 = 김지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22일 서울 경사노위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2025.12.22 sheep@newspim.com

김 위원장은 "AI(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디지털 방식의 공론화 기법의 활동도 적극 검토하려고 한다. 스타트업·플랫폼·프리랜서·고령자 등 다양한 계층의 이해당사자도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대화의 문을 더 넓게 개방하겠다"며 "업종·지역 단위 사회적 대화를 중층적으로 병행해 나가는 방안도 다각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정년연장과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노란봉투법) 등 여러 노동 현안 가운데 가장 우선시하는 이슈가 무엇인지 묻는 질의에 김 위원장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는 "노란봉투법은 시행 과정에 있다. 시행 이후 상황, 전개과정을 모니터링해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는지 살펴보겠다"며 "정년연장도 국회 중심으로 입법 추진하는 상황이다.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답했다.

심야 택배 배송 등 야간 노동의 경우 건강권 보호 방안 논의 의지를 밝히면서도 구체적 논의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제가 알기로는 야간 노동 자체를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면서도 "건강권 보호 병행 필요성에는 이론이 없지 않나. 야간 노동에 따른 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어떻게 확보해 나갈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가 다뤄 볼 의제 중 하나에 포함할 수 있겠다"며 "당장 착수하기보다는 의제개발조정위원회 등을 통해 검토 여부를 판단할 생각이다"라고 덧붙였다.

취임식에서 강조한 민주노총 복귀의 경우 당시보다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민주노총의 복귀 시점이 굉장히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라며 "민주노총을 완전히 배제시킨 채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진정성 있는 사회적 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민주노총의 참여 모멘텀도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참여 여부가 사회적 대화를 새로 시작하는 것의 전제가 되지는 않는다"면서도 "시급한 의제, 다뤄야 할 과제, 오래 중단된 사회적 대화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 등을 감안한다면 현재 참여 주체들을 중심으로 시작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양가희 기자 = 김지형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22일 서울 경사노위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2025.12.22 sheep@newspim.com

김 위원장은 경사노위 참여주체 대표성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노동법 밖 미조직·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청년·고령자 등의 목소리가 경사노위 사회적 대화 과정에 충분히 반영되냐는 지적이 있다"며 "청년뿐 아니라 계층별 위원회 등으로 대표성 흠결 보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년 일자리 문제 관련해서도 논의해 볼 여지가 충분히 있겠다 생각한다"며 "단편적 시각으로 부분적 의제를 다루기보다 전 생애주기에 고용을 통한 소득 안정성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와 같은 거시적, 본질적, 핵심적 문제 제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론화 방식은 과거 500여명 규모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대형 위원회 신설 방식은 채택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은 신고리 공론화위에 대해 "비용도 많이 들고 절차 관리가 만만하지 않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라며 "특별위원회 형태의 공론화위를 신설해 타운홀 미팅, 시나리오 워크숍 등 다양한 공론화 기법을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경사노위가 거시적 담론 관리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묻는 질의에는 "법에 명시된 것처럼 노동 정책 외에도 관련된 경제사회 제반 정책도 심의할 수 있다"며 "이 기구는 대통령 소속 기구다. 정부위원으로는 고용노동부 장관 외에도 기재부 장관이 포함되어 있다"며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경사노위를 대통령 소속 기구가 아닌 독립 기구로 설정해 논의 과정의 객관성을 강화하는 방향과 관련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입법적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논의 과정을 더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서는 "자연스러운 공개가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개방성을 염두에 두고 운영할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이날 김 위원장의 발언에는 '합의'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이에 경사노위의 장점 중 하나인 합의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합의의 의미를 소홀히 보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간 합의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역으로 합의가 잘되지 않는 경우나 결렬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다른 논의 주체들에게 충분히 공감받아야 할 일이겠지만, (경사노위는) 결론 도출에 쫓기기보다 좀 더 충분히 숙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sheep@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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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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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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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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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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