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들 천문학적인 자금줄 제공
오라클 회사채 CDS 급등
셰일 '붐-버스트'와 흡사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미국의 신생 투자 업체 블루 아울 캐피탈부터 거대 투자은행(IB) 골드만 삭스까지 월가가 데이터센터 건설의 자금줄을 대고 나선 가운데 최근 상황이 2010년대 초반 이른바 프래킹 붐과 흡사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레버리지에 의존한 빅테크의 인공지능(AI) 인프라 건설이 엄청난 투자 열풍이 일었지만 결국 버블이 꺼지면서 커다란 손실을 남겼던 프래킹 붐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다.
오라클(ORCL)의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지난 11월13일(현지시각) 하루에만 2021년 이후 최대 폭으로 치솟는 등 채권시장이 적신호를 보내는 상황과 맞물려 투자자들의 관심을 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 중견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던 블루 아울 캐피탈은 메타 플랫폼스(META)와 오라클에 수백억 달러의 대규모 자금을 공급, 데이터센터 건설에 자금줄로 급부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블루 아울을 포함한 기관들이 수 조 달러의 자금을 축적하고 수 년간 대형 딜을 찾던 차에 AI라는 완벽한 투자처를 만났다고 전했다.
블루 아울은 아마존(AMZN)과 마이크로소프트(MSFT)를 위한 대형 데이터센터를 소유, 운영하는 투자회사 IPI 파트너스를 인수하는 데 성공하면서 초대형 AI 파이낸싱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포석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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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라클 5년 만기 CDS [자료=ICE 데이터 서비스, 블룸버그] |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블루 아울은 텍사스 소재 오라클과 오픈AI의 데이터센터를 위한 140억달러 규모 패키지를 주선하는 업체로 선정됐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업체는 루이지애나의 메타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해 약 300억달러를 조달했다. 고객 자금 30억달러를 투입하고 나머지는 차입했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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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존 데이터센터 [사진=블룸버그] |
이번 차입에는 이례적인 조항이 포함됐다. 파트너십이 무산될 경우 블루 아울의 지분 투자에 보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엄청난 규모의 AI 투자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금융권이 '창의적인' 금융 기법을 만들어 냈다는 해석이다.
골드만 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최고경영자(CEO)는 AI 거품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AI 인프라 파이낸싱에 목적을 둔 새로운 팀을 구성했다.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이른바 FOMO(Fear Of Missing Out, 뒤처지는 데 대한 두려움)로 지칭되는 심리적인 요인으로 AI 빅테크를 추격 매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융권 역시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조바심으로 돈줄을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데이터센터 버블 경고가 고조되는 상황이지만 대부분의 빅테크 경영자들은 과소 구축이 과잉 구축보다 더 위험하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에이미 후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따라잡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팅이 뜨거워질수록 경고음도 커지는 모양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오라클의 회사채를 정크 등급으로 강등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오라클 회사채는 최근 몇 주 사이 7% 내렸고, 주가 역시 32% 급락했다.
IT 대기업들이 고가에 사들이는 AI 칩이 몇 년 안에 구식이 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은 데이터센터 대출의 위험성을 더욱 높인다.
WSJ은 이처럼 월가가 한 가지 특정 산업에 '올인'한 마지막 사례로 프래킹(fracking) 붐을 꼽는다. 대표적인 '거품 그리고 붕괴' 사이클이었는데 이번에는 금융권이 십 수 년 전보다 훨씬 더 큰 자금을 밀어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딜로직 데이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5년 사이 전세계 모든 석유 및 가스 회사의 총 차입금은 약 1조달러였다.
이와 별도로 모간 스탠리의 추정에 따르면 소수의 AI 빅테크 기업들이 2025년부터 2028년까지 1조2000억달러의 자금을 차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교롭게 블루 아울의 애빌린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는 프래킹 붐의 진원지였던 서부 텍사스 유전 지대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프래킹 붐은 수압파쇄법의 줄임말로, 지하 3km 지층의 퇴적암, 즉 셰일 층에 물과 화학 제품, 모래 등을 혼합한 물질을 고압으로 분사하고 바위를 파쇄해 석유와 가스를 분리해 내는 공법이다.
보도에 따르면 2005~2015년 사이 프래킹을 사용한 셰일가스 생산은 연간 310억 입방피트에서 4350억 입방피트로 급증했는데 이 중 거의 90%가 미국에서 이뤄졌다.
문제는 프래킹이 환경 오염과 지하수 오염, 지진 유발, 온실가스 배출 증가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켰고, 기대했던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했다는 점이다. 그나마 만들어졌던 일자리 중 상당수가 이후 사라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물론 이른바 셰일 혁명으로 인해 미국이 원유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탈바꿈 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프래킹, 즉 셰일이 기술적으로 성공했지만 투자 측면에서는 거품이었고 결국 붕괴됐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07년 이후 석유가스 산업이 셰일 붐에 2800억 달러를 잃었고, 2010년 이후 미국 기업들의 누적 손실이 3000억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5년 초 이후 북미 지역에서 230개 이상의 석유가스 업체가 최소 1520억달러의 부채를 안고 파산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프래킹 유정은 1년 차에 엄청난 생산량을 보이지만 이후 60~80% 급감하기 때문에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대규모 재투자를 실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편에서는 프래킹과 AI 데이터센터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생산과 혁신은 이뤄지고 있지만 월가가 대규모 자금을 대며 버블을 키우는 양상이 흡사하다는 것. 종국에 버블이 무너지면서 투자자들이 커다란 손실을 떠안게 되는 결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