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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노믹스] ④ 아베노믹스 계승이 아니라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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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는 출범 직후부터 '아베노믹스의 계승'을 분명히 했다. 엔저를 바탕으로 한 수출 진흥, 대규모 재정 지출, 완화적 통화정책, 이 세 축을 다시 가동해 일본 경제의 활력을 되찾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2025년의 일본 경제를 둘러싼 현실은 10년 전과 전혀 다르다. 지금 일본은 인플레이션, 부채, 인구감소라는 새로운 토대 위에 서 있다.

◆ 10년 전 아베노믹스와 달라진 환경

아베노믹스가 작동하던 시절에는 디플레이션과 내수 침체가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3년 넘게 소비자물가(CPI)가 일본은행(BOJ)의 목표치인 2%를 웃도는 고물가 국면에 있다. 임금 인상 압력이 본격화하고, 에너지·식품 가격 상승이 생활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통화 정책은 더 이상 엔저 유지를 정당화하기 어렵고, 재정 정책은 팬데믹 이후의 대규모 부양책으로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성장 전략 역시 인구 감소와 산업 경쟁력 약화 속에서 과거와 같은 효과를 내기 어렵다.

아베노믹스가 일본은행(BOJ)을 앞세워 과감한 돈 풀기로 시장의 기대를 높였다면, 지금의 BOJ는 그때와 같은 역할을 반복하기 어려워졌다. 무제한 통화 완화는 이제 엔화 약세 심화, 수입물가 상승, 정책 신뢰 약화 같은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돌아오고 있다.​

결국 아베노믹스의 계승이라는 명분 아래에서도, BOJ가 옛 방식대로 경제 전환을 이끄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려워졌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우)와 구로다 하루히코 전 일본은행(BOJ) 총재 [사진=로이터 뉴스핌]

◆ BOJ의 딜레마..."긴축 미루면 엔저 심화"

블룸버그통신이 16~22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BOJ가 이번 10월 회의에서는 현행 0.5% 정책금리를 유지하지만, 12월에는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49%로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의 90%는 "연내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다카이치 총리가 완화적 기조를 중시하는 만큼, BOJ가 당장 긴축으로 선회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금리 동결이 이어질 경우 엔저 심화와 수입물가 상승 우려가 커진다. BOJ 내부에서도 "방향성은 이미 금리 인상으로 정해졌고, 남은 건 시기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SBI신세이은행의 모리 쇼타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금리 인상을 제어하려 든다면, 그 자체가 엔저를 심화시켜 오히려 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BOJ의 긴축 지연은 단기적으로는 정치 안정에 기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책 신뢰와 시장 예측 가능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사진=로이터 뉴스핌]

◆ '세 기둥'은 같지만 작동 조건은 다르다

아베노믹스의 세 기둥인 통화완화·재정확대·성장전략은 다카이치노믹스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그러나 동일한 처방이 같은 효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당시에는 엔저가 수출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되돌아온다. 당시에는 국채 발행 여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넘는다. 당시에는 여성 활약·관광 등 신수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고령화로 내수 확장 여지가 좁다.

즉, 다카이치노믹스가 아베노믹스를 표면적으로 계승하더라도 그 작동 환경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이제 일본 경제는 "엔저를 막을 수 없고, 금리를 올릴 수도 없는" 구조적 딜레마에 놓여 있다. BOJ가 긴축에 나서면 경기 둔화와 주가 하락이 우려되고, 반대로 완화를 유지하면 엔저 심화로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

다카이치 정권은 이 딜레마 속에서 '아베식 처방'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 약효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려면, 아베 시대의 처방전을 넘어서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도쿄 시내의 일본 직장인들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필요한 것은 '계승'이 아니라 '전환'

지금 일본에 필요한 것은 단기 경기 부양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이다. 노동시장 개혁, 기술혁신, 디지털 전환, 여성·고령층의 노동 참여 확대 같은 구조적 변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다카이치노믹스는 '돈의 순환'이 아니라 '부채의 순환'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아베노믹스가 통화·재정·기대인플레이션이라는 3박자를 맞춰 단기 회복을 이끌었다면, 다카이치노믹스는 인플레이션·부채·저성장이라는 3중 난제를 안고 출발한다.

인플레이션은 통화 완화의 여지를, 국가부채는 재정 확대의 여지를 줄이며, 저성장은 구조 개혁의 효과를 제한한다. '세 개의 화살'을 다시 쏘려 해도 활줄 자체가 느슨해진 셈이다.

이런 환경에서 다카이치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달라진 현실을 새 틀로 조율하는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말하는 '성장 전략'이 단순한 공공투자에 머물지 않고, 노동시장 개혁·기술혁신·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지속 가능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결국 다카이치노믹스가 맞닥뜨린 과제는 아베노믹스의 '계승'이 아니라 '전환'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goldendo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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