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당·공화당 의원 대부분 기권… '연금 개혁 잠정 중단' 카드가 결정적
FT "일시적 유예일 뿐… 험난한 예산안 협상 과정 남아"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16일(현지 시간) 야당이 밀어붙인 의회 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았다. 이에 따라 프랑스 내각은 당분간 붕괴 위협에서 벗어나 국정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곧 내년도 예산안을 마련해 야권과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되면 언제든지 총리 퇴진과 내각 붕괴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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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로이터=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16일(현지 시간) 의회에 출석해 자신에 대한 불신임 동의안이 논의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과 극좌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등 2개 정당이 르코르뉘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한 가운데 프랑스 의회는 이날 표결을 진행했다. 2025.10.16. ihjang67@newspim.com |
프랑스 하원은 이날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과 극좌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가 지난 13일 제출한 총리 불신임 동의안을 표결에 붙였지만 찬성표가 각각 144표와 271표에 그쳐 부결됐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LFI가 제출한 동의안의 경우 18표 차이로 부결돼 르코르뉘 총리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동의안이 통과되려면 전체 577표 중 과반인 289표가 필요했다. 중도좌파인 사회당과 중도우파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대부분 기권했다.
르코르뉘 총리는 표결에 앞서 의회 연설을 통해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5.4% 수준인 재정적자를 내년까지 5% 미만으로 줄이기 위한 2026년도 예산안을 의회가 반드시 통과시켜 주길 바란다"며 "이 목표 달성을 위해 300억 유로 규모의 증세와 지출 삭감이 필요하지만 이 또한 토론과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는 곧 다가올 것이며 (각 정당은) 선거운동을 할 기회를 얻을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예산안을 볼모로 잡지 말아달라"고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감축 예산안에 반대한다며 총리와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을 추진하지 말아달라는 호소였다.
르코르뉘 총리의 생존은 '연금개혁안 잠정 중단'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던져 사회당의 표심을 움직인 것이 결정적이었다.
의회에서 69석을 차지하고 있는 사회당과 그 우호세력은 작년 말 미셸 바르니에 전 총리와 지난 9월 프랑수와 바이루 전 총리의 '불신임 정국' 때 사퇴에 표를 던졌다.
하지만 르코르뉘 총리가 지난 14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대표 정책인 연금 개혁을 다음 대선 때까지 잠정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자 이번 표결에선 '기권'을 선택하면서 르코르뉘 총리에게 생명줄을 건넸다. 연금 개혁 중단은 사회당의 핵심 공약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오늘 불신임 부결로 르코르뉘 총리는 정치적 위기 속에서 유예 기간을 얻었고, 2026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킬 기회를 잡았다"면서도 "이번 유예는 일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현재 프랑스 의회에는 르코르뉘 정부를 전복시키겠다고 밝힌 정당 소속 의원이 265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극우 진영은 조기 총선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고, 극좌파는 마크롱 대통령의 사임까지 촉구하고 있다.
마린 르펜 국민연합 원내대표는 "르코르뉘 정부는 앞으로 몇 주 정도 더 버틸 수 있을 뿐"이라며 "오늘의 비참한 광경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사회당이 예산안을 놓고 충돌하게 되고, 결국 협상이 결렬되면 정국은 다시 한번 내각 붕괴 국면으로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
사회당은 연금개혁을 중단시키는 데 성공한 뒤 앞으로 진행될 예산안 협상에서 부자 증세 방안을 밀어붙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집권 여당과 중도우파 공화당은 이에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