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좌파 사회당도 긍정적 반응 "내각 무너뜨리지 않겠다"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가 14일(현지 시간)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난국으로 평가되고 있는 현 정치권 교착을 타개하기 위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대표 정책인 연금개혁을 잠정 중단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마크롱 정부는 심각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긴축예산을 편성하려 하는데, 작년 7월 총선에서 집권 여당과 함께 의회 의석을 3등분한 극우와 좌파 진영이 이에 반대하면서 잇따라 내각을 붕괴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르코르뉘 총리는 좌파 진영에서 상당한 지분이 있는 중도좌파 사회당의 핵심적 요구 사항 중 하나인 연금개혁 중단이라는 카드를 제시한 것이다.
사회당과 연합세력은 전체 의회 의석 577석 중 69석을 차지하고 있어 예산안 통과나 총리 불신임 정국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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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
르코르뉘 총리는 이날 의회 연설을 통해 2026년도 예산안 통과의 절실함을 호소하면서 "지난 2023년에 통과된 연금개혁안을 다음 대통령 선거(오는 2027년 5월 실시) 이후까지 일시 중단하는 방안을 의회에 제안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는 2028년 1월까지 정년 연령을 인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르코르뉘 총리는 또 "연금을 100% 받기 위해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납입 분기 수도 현재의 170분기로 동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3년 9월 시행에 돌입한 프랑스의 연금개혁안은 연금 수령이 시작되는 퇴직 연령을 기존 62세에서 매년 3개월씩 늘려 2030년에는 64세로 상향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또 연금을 100% 받기 위해 보험료를 납입해야 하는 기간도 기존 42년(168분기)에서 43년(172분기)로 점차 늘리기로 했다.
르코르뉘 총리는 "이번 연금 개혁 중단에 따른 비용은 2026년 4억 유로, 2027년 18억 유로로 추산된다"며 "이에 따른 재정적 부담은 (다른 분야의) 절감 조치 등으로 보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연금 개혁 중단이라는 양보 카드를 내놓은 만큼 야권은 더 이상 내각 불신임안으로 국가와 정부를 흔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불신임안을 제기할 명분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치권에서는 르코르뉘 총리의 '비장의 카드'가 먹힐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르코르뉘 총리의 연금 공약은 사회당 의원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으며, 그들은 르코르뉘 내각을 무너뜨리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정부가 연금 개혁을 중단하거나 후퇴시킬 경우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고 압박을 가했던 중도우파 공화당도 일단 르코르뉘 내각을 살려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공화당은 연금 개혁 중단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불신임 투표를 피하기 위해 정부가 프랑스 국민들에게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르코르뉘 총리는 조만간 의회에 제출할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 300억 유로 규모의 지출 삭감과 세금 인상으로 구성된 재정 패키지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재정적자를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5.4%에서 내년 4.7% 선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르코르뉘 총리는 "이 목표치도 정당간 대화와 협상을 통해 조정이 가능하다"며 "최악의 경우라고 해도 5% 미만으로 합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과 극좌정당인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는 지난 13일 르코르뉘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이 동의안은 오는 16일 오전 9시 하원에서 심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