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개그계의 대부' 전유성이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가는 길만큼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개그맨 후배들은 물론 정말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겼다. 사실 오랜 세월 그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엉뚱함'과 '탁월함'에 놀랄 때가 많았다. 그보다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들려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합하면서 참 티 내지 않고, 체하지 않는 어른이었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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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많은 울림을 남긴 개그맨 전유성. [사진 = 코미디언협회] 2025.09.30 oks34@newspim.com |
일단 그의 엉뚱함을 이야기해 보자. 일화가 끝이 없지만 가장 재미있는 건 불쑥 나타났다가 불쑥 사라지는 기행이다. 개그계 동료가 하루는 술 한 잔하자고 해서 그를 만났다. 전유성은 맥주컵에 소주를 가득 따르더니 벌컥벌컥 들이킨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잔' 하자고 만났으니 '한 잔' 하고 간다는 것이었다. 또 한 번은 한 개그맨과 술을 마시다가 전유성이 온다 간다 말을 하지 않고 사라졌다. 다음 날 말도 없이 사라진 이유를 묻자 "둘이 마시다가 한 사람이 간 걸 가지고 뭘 그러냐?"면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쌍팔년도 음주 운전에 관대하던 시절 얘기다. 그가 음주 운전 단속을 피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자동차에 상주들이 쓰는 굴건(屈巾)이나 삼베로 만든 완장을 싣고 다닌다는 것이다. 경찰 단속에 걸리면 상가를 지키다가 급하게 일을 보러 나온 상주 행세를 해서 음주 단속을 피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가 직접 해봤는지는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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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장안의 지가를 올린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표지. 2025.09.30 oks34@newspim.com |
그의 천재성은 다방면에 걸쳐 입증이 됐다. 엄청난 독서광인 그는 늘 책을 끼고 다녔다. 실제로 베스트셀러도 여러 권 썼다.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는 컴퓨터 초보자 입문서였다. 그가 직접 지은 제목 때문에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가 인사동에 낸 카페 이름은 '학교종이 땡땡땡'이었다. 학교 교실 분위기를 연출한 공간에서 눈치 보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장소였다. 그는 소고기집 제목으로 '이랴이랴 워워'도 지어놨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1980년대 아이디어를 내서 심야 극장이 생긴 일화도 유명하다. 또 청도에 코미디 극장을 만든 발상과 '개나소나 콘서트', '백원짜리 콘서트' 등 늘 아이디어의 보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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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김신영과 전유성. [사진 = 김신영 인스타그램] 2025.09.30 oks34@newspim.com |
전유성의 이른 죽음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는 이유는 그가 '체하지 않는 어른', '티 내지 않는 어른'이었다는 점이다. 전유성의 제자이자 후배인 개그우먼 김신영은 자신이 한물 갔다고 한탄하자 "한물 가고 두물 가고 세물 가면 보물이 되거든. 너는 보물이 될 거야. 두고 봐"라면서 용기를 북돋아 줬다고 말한다. 전유성과 함께 일했던 한 조연출도 자신이 선배 PD에게 민망할 만큼 혼이 나고 있을 때 일화를 털어놨다. 전유성이 "일본에서 뭘 가지고 온 게 있는데... (가져다가) 연출진 좀 나눠 주려고. 조연출 좀 빌려줘"라면서 자신을 데리고 나갔다. 알고 보니 너무 민망하게 혼나고 있는 게 안타까워서 그 자리에서 구해 준 것이었다.
전유성은 남원에 내려가 있으면서도 주변의 작은 책방에 들러서 책을 구입하고, 어쩌다가 후배들이 책을 내면 반드시 구입해서 사인을 요청했다고 한다. 후배들을 아끼고, 책을 사랑하고, 문화적 아이디어가 풍성했던 '그 이름 전유성'. 나이 들면 고집이 세지고, 어른 행세를 해서 '노땅'이나 '꼰대'가 되기 십상인 시대에 그는 정말 '쿨한 어른'이었다. 그래서 조금 일찍 세상과 작별했지만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결코 적지 않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