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순간 드러난 '행동으로 말하는' 리더십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가 미국에 구금됐던 직원들과 전세기를 통해 귀국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귀국 현장에서 마주한 김 대표의 얼굴은 지쳐 보였다. 사태 수습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닌 흔적이 역력했다. 평소 기자들 질문에 거침없이 답변하던 모습과는 달리, 이날은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멈칫하던 순간이 잦았다. 말투도 한결 느려졌다.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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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구금됐던 한 협력사 직원과 소통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는 다소 의외였다. 귀국 전세기에서 김 대표가 일등석도, 비즈니스석도 아닌 일반석(이코노미석)에 앉았다는 것이다.
협력사 직원은 "비즈니스석과 일등석에 빈자리가 있어 김동명 대표가 당연히 한 자리 이용할 줄 알았는데 일반석에 앉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대기업 대표치고는 이례적인 행동이다. 보통 기업 임원들은 업무 효율성을 위해 비행에서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라서다. 한 기업 임원은 "착륙 후 바로 출장 일정이 시작되기 때문에 비행기 내에서도 일을 해야한다"며 "비즈니스석을 탑승하면 확실히 업무 준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선택은 달랐다. 협력사 직원은 힘든 시간을 함께한 직원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겠다는 의지로 느껴졌다고 했다.
사실 이번 구금 사태는 LG에너지솔루션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큰 위기였다. 지난 4일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합작공장(HL-GA) 건설 현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 및 협력사 직원 등 한국인 317명을 포함해 총 475명이 급작스럽게 체포되는 동시에 구금됐다.
김 대표는 사태 해결을 위해 직접 현지로 날아갔고, 긴 시간의 노력 끝에 전원 석방이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귀국 현장에서 김 대표는 "구금됐던 모든 분이 무사하게 귀환하셔서 가장 기쁘게 생각한다"며 안도감을 드러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런 어려움을 전부 관계자분께서 노력해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그의 말에서도 이번 사태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였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향후 공장 건설 지연이나 인력 운용 방안 등 구체적인 질문에는 "준비를 하고 말해야 할 것 같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대신 직원 지원 문제만큼은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는 "귀국하신 분들이 안정적인 복귀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일반석에 앉은 기업 대표. 단순해 보이는 이 행동이 같이 비행기를 탔던 이들에게, 해당 이야기를 전해 들은 기자에게 왜 이렇게 기억에 남을까.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리더십의 모습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위기 상황에서 직원들과 함께하려는 의지와 몸소 실천하는 모습까지, 행동으로 보여주는 리더십이었다.
물론 이번 구금 사태가 LG에너지솔루션에 미칠 파장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공장 건설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고, 현지 운영 방식도 바뀌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 보였다. 위기의 순간에 직원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선택한 대표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리더십이 있는 한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위기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ay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