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용석 기자 = 김치찌개가 주식이던 시절, 햄버거와 피자를 먼저 맛볼 수 있었던 곳. 강남과 여의도보다 앞서 모래밭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이촌동은 서울의 독특한 도시화 과정을 보여주는 지역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이 발간한 '아파트 마을, 이촌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를 통해 이촌동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본다.
이촌동이라는 이름은 '옮길 이(移)' 자를 쓰는 移村洞(이촌동)에서 유래한다. 이는 과거 한강 범람으로 인해 주민들이 끊임없이 이주를 거듭해야 했던 이촌동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에는 조선인 거주가 금지된 '폐동'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대규모 집회나 여름철 물놀이, 겨울철 스케이트장으로 활용되던 넓은 모래밭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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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용석 기자 = 1968년 여러 공사가 혼재된 동부이촌동. [사진= 국가기록원] 2025.06.20 fineview@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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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용석 기자 = 1968년 서부이촌동. [사진= 서울기록원] 2025.06.20 fineview@newspim.com |
황량했던 이촌동 모래밭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 국가 주도의 개발 열풍 덕분이다. 1962년 건설부의 한강변 매립 계획 발표에 이어, 1966년 서울시가 이촌동 한강 매립 공사를 최초로 완료했다. 특히 서울시와 한국수자원공사라는 두 주체가 서로 다른 개발 계획을 추진하면서, 현재의 이촌동은 강변도로인 이촌로를 중심으로 북쪽(서울시 개발)과 남쪽(한국수자원공사 개발)이 확연히 다른 공간 구조를 갖게 되었다. 한강으로 불쑥 튀어나온 동부이촌동의 독특한 지형은 바로 이러한 '합작 개발'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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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용석 기자 = 1973년 로얄맨션 노선 상가. [사진= 국가기록원] 2025.06.20 fineview@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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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용석 기자 = 1970년대 동부이촌동. [사진=대한주택공사] 2025.06.20 fineview@newspim.com |
이촌동은 서울 아파트의 모든 것을 실험한 '주거 문화의 테스트베드'였다. 1968년 대한주택공사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하이츠'와 '맨션' 개념을 도입하며 중산층을 겨냥한 고급 아파트, 한강맨션을 선보였다. 한강맨션은 국내 최초로 '모델하우스'를 도입하고 '선분양'을 시도하며 부동산 시장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1971년 27~57평형의 대형 아파트 660세대가 웅장하게 들어서며, 오늘날 재건축 막바지에 이른 '부촌 이촌동'의 씨앗을 뿌렸다.
이촌동은 무주택 공무원들을 위한 소형 평수의 연탄 난방 공무원아파트와, 경제 개발 시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지어진 '외국인 전용' 외인아파트가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을 자랑했다. 외인아파트는 야외 수영장은 물론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최고급 시설로, 당시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국적인 모습이 한강변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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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용석 기자 = 1970년대 한강외인아파트 야외 수영장. [사진= 대한주택공사] 2025.06.20 fineview@newspim.com |
반면 이촌2동(서부이촌동)에는 또 다른 현실이 존재했다. 서울시 공영주택 사업에 따라 15~20평 내외의 소형 시범, 시영, 시민 아파트들이 한강변을 따라 줄지어 들어섰다. 이 아파트들은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돕는 동시에, 내부 불량주택지를 가리는 '병풍' 역할도 했다는 냉엄한 도시 개발의 이면을 보여준다.
이촌동의 생활상은 그야말로 '하이브리드' 그 자체였다. 외인아파트와 미군 부대와의 인접성 덕분에 다른 지역보다 훨씬 일찍 서양 문물을 접할 수 있었다. 미군 부대 PX에서 흘러나온 햄버거와 피자는 동네 아이들에게 익숙한 간식이었고, 미군이 주최하는 카니발이나 핼러윈 축제는 이촌동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형성되면서 '리틀 도쿄'라는 별명이 붙었다. 도심과 가까운 안정적인 아파트 단지였고 일본인 학교와도 인접했던 이촌동은 자연스럽게 일본인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었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 병원, 부동산, 판매점 등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이촌동 지역 버스에는 아직도 일본어 안내방송이 나올 정도다.
이촌동은 연예인들의 '보금자리'로도 유명했다.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와 가깝고 외부와 단절되어 조용히 살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형성 초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스타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한강맨션 1호 계약자인 배우 강부자를 비롯해 신성일, 엄앵란, 현미 등 1970년대를 풍미했던 배우와 가수들이 이촌동 주민이었다. 최근에는 아이돌 가수 장원영이 이촌동 출신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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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용석 기자 = 이촌로와 강변북로가 보이는 동부이촌동 전경. [사진= 역사박물관] 2025.06.20 fineview@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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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용석 기자 = 강변북로가 보이는 서부이촌동 전경. [사진= 역사박물관] 2025.06.20 fineview@newspim.com |
이촌동은 1970년대부터 40년 이상 거주한 '토박이'들이 유난히 많은 지역이다. 지역 내 초·중·고등학교가 각 1개뿐이다 보니, 아이들끼리는 물론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되는 곳이다.
동부이촌동은 학교, 기관 등 기반 시설을 갖춘 '부촌'으로 성장했지만 서부이촌동은 아파트만 건립되어 생활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학교도 없어 학생들이 장거리 통학의 불편을 겪는다. 같은 이촌동임에도 불구하고 동·서의 격차는 크게 벌어져 버렸고, 한 마을이 아닌 '두 개의 마을'이 되어버린 슬픈 현실이 존재한다.
fineview@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