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현대미술관, 장애 비장애 경계 허물고
몸과 감각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는 전시 기획
국내외 장애 비장애 작가 20명 70점 출품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장애가 예술을 만나니 결핍이 아닌 챌린지가 됐다. 부산현대미술관(관장 강승완)이 오감의 한계를 뛰어넘는 '열개의 눈'전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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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부산현대미술관 열개의 눈에 참여한 라파엘 드 그루트의 '손과 손 사이-엉키는 매듭들' 직픔, 퍼포먼스, 설치,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가변크기. 부산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2025.05.25 art29@newspim.com |
최근들어 국내 곳곳에서 장애·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몸과 감각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는 현대미술 전시가 연달아 열렸거나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기울인 몸들'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전이 바로 그 예다. 부산현대미술관도 무장애 전시를 마련했다.
부산현대미술관이 '배리어 프리(Barrier-Free·무장애)'를 표방하며 준비한 국제기획전 '열 개의 눈'이 막바지로 접어들며 잔잔한 호응을 얻고 있다. 전시 제목의 '열개의 눈'은 인간의 손가락 10개를 '두 눈'에 비유한 은유적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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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 김덕희 '밤의 노래', '하얀 목소리', 2025. 석고,히터,가변크기. 부산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사진=이영란 기자] 2025.08.17 art29@newspim.com |
사람의 신체 감각은 고정된 게 아니라 나이·상황·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인식에서 이번 전시는 출발했다. 강승완 관장은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접근성'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함께 하는 사회를 예술을 통해 상상해보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각이나 청각의 결여는 결핍이 아니라 또다른 감각으로의 확장은 아닐까 하는 점들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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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다이앤 보르사토, '아트페어 몸짓'. 3채널 비디오 중 일부. 사운드, 6분24초. 작가 소장. [사진=이영란 기자] 2017~2018. 2025.08.17 art29@newspim.com |
'열개의 눈'전에는 국내외 장애·비장애 작가 20명이 다양한 감각을 사용해 만든 작품 70여 점이 나왔다. 특히 평소 접하기 힘든 장애인 작가의 예상을 뛰어넘는 작품들이 다수 나와 새로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부산현대미술관 1층 전시장 안쪽에는 사람과 강아지가 손을 잡고 서있는 조각이 자리잡고 있다. 교통사고로 시각을 잃은 미국의 여성 작가 에밀리 루이스 고시오의 작품이다. 한 점 빛도 볼 수 없게 된 작가는 안내견 런던이와 동고동락하며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상상을 하면서 이 조각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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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교통사고로 시각을 잃은 미국의 여성작가 에밀리 루시오 고시오의 '진정한 사랑은 결국 당신이 찾을 것이다'. 2021. [사진=이영란 기자] 2025.08.17 art29@newspim.com |
박한나 학예연구사는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은 파트너이자 자신의 눈과 같다"며 "안내견의 신체를 빌려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위계, 장애라는 벽이 허물어지길 바라는 소망을 갖고 만든 작업"이라고 전했다.
눈을 가린 상태에서 손가락의 반복된 움직임을 실험하는 미국 미니멀 아트의 거장 로버트 모리슨의 작업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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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엄정순 '당신의 눈동자를 보는 망원경', 2025. [사진=이영란 기자] 망원경 프로젝트. 2025.08.17 art29@newspim.com |
'코끼리 조각'을 매개로 인간의 감춰진 감각을 고찰해보는 '인터랙티브한 작업'으로 유명한 작가 엄정순의 새로운 작업도 눈길을 끈다. 엄정순은 망원경 안에 유리구슬처럼 반짝이는 이물질을 넣어 렌즈를 살짝 덮었다. 반짝이는 이물질이 화려하게 빛나지만 시야가 차단된 망원경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온 '본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고 있는 작업이다.
뇌출혈 이후 왼손으로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라움콘(Q에이터, 송지은)의 '한 손 프로젝트', 초점이 어긋난 일본 시각장애인 사진가의 사진에 재즈 음악을 입힌 정연두의 영상작품도 화제를 모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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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뇌출혈 이후 한 손으로만 작업을 전개하는 라움콘의 '한 손 프로젝트'.[사진=이영란 기자] 2025.08.17 art29@newspim.com |
출품작들은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접근성'과 '소통'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몸의 감각과 존재의 다양성과 특수성 등을 다각도로 돌아보게 한다. 이를 통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조금씩 다른 차이를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예술을 통해 상상해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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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 김덕희 '밤의 노래', '하얀 목소리', 2025. 석고,히터,가변크기. 온도 변화를 통해 촉각을 일깨워주는 설치작품이다. 부산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사진=이영란 기자] 2025.08.17 art29@newspim.com |
이밖에 다이앤 보르사토, 해미 클리멘세비츠, 김채린의 작업은 예술에 대한 다양한 접근성과 예술언어의 가능성을 짚어보게 한다. 김덕희, 김은설, 홍보미, 조영주, SEOM:(서하늬, 엄예슬) 등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접근성에 대한 고민도 이번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부산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시각 및 청각 장애인을 위한 전문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모든 이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시는 9월 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