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업황은 좋지만 그 주식 이미 비싸다." 외국계 리포트를 볼 때면 심심찮게 '매도(Sell)'나 '비중축소(underweight)' 의견을 접한다. 좋은 실적을 내고도 주가가 이내 꺾였다면 '고평가' 딱지를 받은 종목일 가능성이 높다. 실적 기대감은 선반영됐고 기다리던 뉴스에 차익실현이 시작된다.
김준희 자본시장부 기자 |
서학개미가 사랑한 미국 소프트웨어기업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팔란티어는 지난 1분기 호실적을 기록한 대표적인 성장주다. 2분기 실적은 더 좋을 것이라고 했다. 발표 이튿날 9% 올랐던 주가는 5일에 걸쳐 15% 가량 떨어졌다. "과대 낙폭은 매수 기회"라는 의견도 나왔지만 냉정한 분석가가 더 많았다. 목표주가 컨센서스가 낮아졌다. 이미 성장성에 대한 기대가 충분히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외국 투자은행(IB)들의 냉정한 분석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최근 삼성SDI(모건스탠리)와 LG화학(CS), 금호석유(JP모건), 롯데케미칼(골드만삭스) 등 국내 대형주도 외국계 리포트의 '매도' 의견에 휘청했다. 시총 2조~4조가 날아가는 건 순식간이다.
외국계 리포트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1차적으로 전 세계 외국인과 기관투자자 등 큰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 리포트에서는 보기 드문, '매도' 의견이라는 점도 외국계 리포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매수 리포트에는 잠잠하던 주가가 매도 리포트에만 쉽게 반응한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다.
'매수' 의견이라면 국내 증권사 리포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일까지 매수 의견으로 상향한 리포트만 122건이다. 같은 기간 매도 의견으로 하향한 리포트는 단 2건에 불과했다. 투자의견 자체를 하향한 리포트가 111건이라는 점이 그나마 고무적이다.
투자 전략상 매수 타이밍만큼 중요한 것이 매도 타이밍이다. 국내 증권사 리포트로는 매도 전략을 짜기 어려워지면서 외국계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가 갖는 힘이 커졌다. 물론 주가에 대한 평가는 애널리스트마다 다를 수 있다. 업종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할수록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도 제각각이다. 문제는 일부러 '매도' 의견을 기피한다는 사실이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현실적으로 매도 의견을 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해당 기업으로부터 정보를 얻기 어려워지거나 진행 중인 IB 거래 등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어려움은 애널리스트 개인을 향한 협박과 업무방해라고 한다. 한 중소형사 리서치센터장은 "칼을 든 개인 투자자가 로비 1층까지 쫓아와 행패를 부린 적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외국계 증권사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제는 국내 투자 환경도 바뀌어야 한다. 외국계 리포트의 힘이 커질수록 피해를 입는 것은 사실 개인 투자자들이다. 유료로 제공하는 외국계 리포트는 보통 고액자산가와 기관투자자들에게 먼저 전달된다. 평범한 국내 투자자라면 이미 공매도 잔고가 잔뜩 늘어난 후에야 뉴스로 소식을 접한다. '공매도의 농간'이라고 분개하면서도 주가 하락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다.
상대적으로 국내 증권사의 리포트는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열려 있다. 증권사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는 정보도 넘친다. 부지런한 투자자라면 외국인, 기관과 같은 출발선상에서 투자 전략을 짤 수도 있다. '매도' 없는 투자는 없다는 점에서 애널리스트의 매도 의견은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애널리스트가 "그 주식을 팔라"고 말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는 개인 투자자들이 그 용기에 힘을 보태는 지원군이 돼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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