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사회 서울시

속보

더보기

[오승주의 수선전도] 내시가 만든 '광화문의 눈물'

기사입력 : 2020년08월20일 17:02

최종수정 : 2020년08월20일 18:21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내시 김사행이 설계·감독·감리..정도전은 큰 그림만
임진왜란·일제강점기 거치며 수차례 헐고 짓는 아픔
무분별한 광복절 집회로 코로나19 재확산 위기

[편집자]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도봉산부터 남쪽 한강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주요 도로와 동네, 궁궐 등 460여개의 지명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선전도에 있는 지명들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승주의 수선전도'는 이 지도에 나온 동네의 발자취를 따라 지명과 동네에 담긴 역사성과 지리적 의미, 옛사람들의 삶과 숨결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 숨가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광화문'이 울고 있다. 안정세로 가닥을 잡았던 듯 싶었던 신종코로나감염증(코로나19)이 광복절(8월15일) '광화문 집회'를 계기로 재확산 기로에 섰다.  

◆정문(正門)에서 세종 때 광화문(光化門)으로

조선건국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철저히 불탔다. 270여년의 세월을 상처입은 채 폐허로 지낸 광화문은 대원군의 중건으로 다시 기세를 펴는 듯 했지만, 일제 치하에 신음했다. 6·25전쟁을 겪으며 다시 파괴됐고, 몇 번의 재건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광화문은 현 시대에서 경복궁의 남문(南門)이 아닌 민주화의 요람으로 각인된다. 광화문 앞 넓게 트인 광장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한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사상 최초로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촛불집회를 비롯해 민주화의 고비마다 광화문은 자리를 내줬다.

광화문은 조선 건국 이후 법궁(法宮·왕조의 대표궁궐)이 된 경복궁의 담을 둘러싼 남쪽문이다. 처음부터 광화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태조 4년(1395년) 10월7일 2번째 기사다. 태조가 판삼사사 정도전에게 새 궁궐 전각의 이름을 짓게 했다.

'판삼사사 정도전에게 분부하여 새 궁궐의 여러 전각의 이름을 짓게 하니, 정도전이 이름을 짓고 아울러 이름 지은 의의를 써서 올렸다.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 하고, 연침(왕의 침소)을 강녕전이라 하고, 동쪽에 있는 소침(작은 침실)을 연생전이라 하고, 서쪽에 있는 소침을 경성전이라 하고, 연침의 남쪽을 사정전이라 하고, 또 그 남쪽을 근정전이라 하고, 동루를 융문루라 하고, 서루를 융무루라 하고, 전문을 근정문이라 하며, 남쪽에 있는 문을 '정문'(正門)이라 하였다.'

광화문의 첫 이름은 바를 정(正)자를 쓴 '정문'이었다. 정도전은 이름을 지은 까닭도 태조 앞에서 밝힌다.

'정문(正門)에 대해서 말하오면, 천자와 제후가 그 권세는 비록 다르다 하나, 그 남쪽을 향해 앉아서 정치하는 것은 모두 정(正)을 근본으로 함이니, 대체로 그 이치는 한가지입니다. 고전을 상고한다면 천자의 문을 단문(端門)이라 하니, 단(端)이란 바르다(正)는 것입니다. 이제 오문(午門·남쪽문)을 정문(正門)이라 함은 명령과 정교(政敎)가 다 이 문으로부터 나가게 되니, 살펴보고 신실하게 한 뒤에 나가게 되면, 참소하는 말이 돌지 못하고, 속여서 꾸미는 말이 의탁할 곳이 없을 것이며, 임금께 아뢰는 것과 명령을 받드는 것이 반드시 이 문으로 들어와 윤하하신 뒤에 들이시면, 사특한 일이 나올 수 없고 공로를 상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을 닫아서 이상한 말과 기이하고 사특한 백성을 끊게 하시고, 열어서 사방의 어진 이를 오도록 하는 것이 정(正)의 큰 것입니다.'

정문이 광화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세종 때다. 세종 8년(1426년) 10월 26일. 정도전이 지은 이름이 있었지만, 세종은 집현전에 명해 경복궁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다시 정했다.

'집현전 수찬에게 명하여 경복궁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정하게 하니, 근정전 앞 둘째 문을 홍례(弘禮), 세 번째 문을 '광화'(光化)라 하고, 근정전 동랑 협문을 일화(日華) 서쪽 문을 월화(月華)라 하고, 궁성 동쪽을 건춘(建春), 서쪽을 영추(迎秋)라 하고, 근정문 앞 석교(돌다리)를 영제(永濟)라 하였다.'

광화문은 양반들의 문이었다. 궁궐의 정문이라는 상징성이 있는데다, 좌우에는 조선의 관청들이 줄지어 있어 백성들이 감히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광화문은 조선의 표준시 역할도 했다. 광화문에 종과 북을 달아 임금의 거동을 알리고, 백성들에게도 일하고 마칠 시간을 알렸다.

'다락 3간이 상·하층으로 있었다. 다락 위에 종과 북을 달 새벽과 저녁을 알리게 하고 중엄을 경계했으며, 문 남쪽 좌우에는 의정부(議政府)·삼군부(三軍府)·육조(六曹)·사헌부(司憲府) 등 각사 공청이 벌여 있었다.'(태조 4년(1395년) 9월29일 경신 6번째 기사)

세종이 정문(正門)을 광화문으로 개명한 이유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에 남아 있지는 않다. 몇가지 설이 대두된다. 태평성대를 뜻하는 광청화일(光天化日)을 줄인 말이라는 설과 중국 고전 '서경'에 나오는 광피사표(光被四表)에서 따온 설이 유력하다.

박대종의 어원 이야기(데일리한국·2012년 2월23일)에 따르면 광피는 본래 빛이 넓게 미친다는 뜻이다. 임금의 덕이 널리 미치게 된다는 뜻도 가진다. 광(光)은 빛이라는 뜻 외에 '덕'(德)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 즉, '광화=덕화'다. 중국 남북조시대 위수가 편찬한 '위서'(魏書·551~559) 함양왕희전에 덕화의 의미로 쓰인 '광화'가 나온다. 왕희는 왕에게 "폐하의 성스러움은 요순보다 더 뛰어나 중원을 광화하셨습니다(성과요순 광화중원·聖過堯舜 光化中原)"라고 대답한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6년경 촬영된 광화문의 모습. <자료=문화재청> 2020.08.20 fair77@newspim.com

남쪽을 바라보는 광화문은 임금의 덕을 만방에 떨치는 덕화문이라는 해석이다. 남쪽은 정면이라는 의미와 같다. 경복궁에서 조선임금들은 '앞=남쪽'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아 정사를 펼쳤다. 남쪽 정문은 백성들을 향해 정사를 펼치는 문이었다. 따라서 광화문은 왕이 덕행으로 백성들을 감화시키는 남쪽 정문이란 뜻을 담아 집현전 학사들이 이름을 지어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광화문은 임금이 백성들에게 직접 알리는 소통의 역할도 맡았다. '조선임금의 대자보'라는 말이다. 세종 11년(1429년) 2월 5일, 사헌부에서 건의한 금령의 조문을 요약해 광화문 밖 등지에 내걸었다. 조문은 모두 43개다. 주요 내용으로는 ▲관청의 조회가 끝날 때 옷을 터는 일 ▲남녀 불문하고 황색 옷을 입는 일 ▲양반 아닌 상인(常人)들이 성내에서 말을 타는 것을 금지했다. 중이 과부집에 출입하는 것도 금지했는데, 당시 승려들이 과부집에 자주 드나들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음을 알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광화문 담벼락은 임금의 대자보가 아닌 '백성의 대자보'를 붙이는 공간으로 변하기도 한다. 중종 6년(1511년) 4월 17일 어떤 사람이 방문을 광화문 담장에 붙였다.

'김근사·성운·김굉·이빈은 오늘날의 사흉(네명의 흉악한 인물)이다. 근사는 폐주의 행신으로 폐주가 총애하던 기생을 첩으로 삼았으니, 신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운은 눈을 내려 뜨지 않고 조정을 경멸하며, 부정한 재물로 큰 집을 지었다. 김굉은 본래 그 집안에 음란한 기풍이 크게 행했으니, 두 기생을 첩으로 삼고 방종 음란을 마음대로 한다. 이빈은 상 중에 내를 막아 논을 풀었으니, 이것은 온 나라의 중론이다." 하였다.'

다시 말하면 김근사 등 4명은 중종반정 이후 옛 임금인 연산군의 신하들인데, 새로운 권력에 잘 타고 올라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잘사니 나라 사람들이 비난한다는 내용을 대자보로 붙인 것이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의 야경 모습. <자료=문화재청>2020.08.20 fair77@newspim.com

◆내시가 설계하고 지은 광화문

정도전이 광화문을 비롯한 경복궁 궁궐 배치 등 큰 그림을 그렸다면 실제 광화문을 설계한 인물은 김사행이다. 벼슬이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다. 내시부의 으뜸 벼슬, 종2품이다. 즉, '환관 대장'이다.

환관이지만 건축에 일가견이 있었다. 고려말 공민왕때부터 조선 태조까지 목숨을 이어가며 권세를 누리다 태종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 당시 목이 잘려 저잣거리에 내걸린다.

고려사 세가 권제43(공민왕 21년-1372년-10월)에서는 김사행이 건축에 자질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양릉을 참배하고 길에서 놀이판을 벌이고 (공민왕이) 궁궐로 돌아왔다. 환관 김사행이 공사 감독을 잘하였으므로 안마(안장을 앉은 말)를 하사했다.'

비록 환관 신분이지만 건축에 보통 재능이 있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태종의 입에서 '실제 경복궁 공사 설계와 감독은 김사행이 도맡았다'는 말이 나온다.

태종12년(1412년) 5월 14일. 형조에서 박자청이라는 신하가 이중위라는 인물에 대해 폭행을 저지른 것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 이 대목에 김사행의 이름이 언급된다.

태종이 말한다. "태조 때에 있어 무릇 공역(工役)의 일을 환자(宦者·내시) 김사행이 맡았는데,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김사행이 태조를 권하여 공역을 일으켰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사행이 권한 것이 아니고 도성을 창건하는 초기를 당하여 무릇 공역하는 것이 모두 신충(宸衷·임금의 마음, 즉 태조의 뜻)에서 나왔었다."

눈여겨 볼 대목은 김사행이 공역의 일, 즉 경복궁 창건의 일을 맡아 지휘 감독했다는 점을 태종이 직접 말한 것이다. 경복궁의 수많은 전각과 광화문도 김사행의 설계와 감리, 감독에 따라 이뤄졌다.

환관이지만 조선창업을 도와 태조에 의해 공신의 지위도 받는다. 태조 2년(1393년) 7월 27일 경오 1번째 기사다. 태조가 창업에 공이 있는 우인열·김사행·윤상·권중화 등에게 포상토록 교지를 내렸다.

'판내시부사 김사행은 내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궐내의 제도가 대강 마련되고 갖추어지지 못했는데, 전조(고려) 성시의 궁중 의식을 일일이 들어 지나친 것은 줄이고 모자란 것은 보태어서 내조의 다스림을 장식했으니, 공을 기록할 만하다.'

현재 몇차례 재건축과 보수가 되기는 했지만, 광화문의 웅장한 모습의 기초는 '조선의 내시'가 세운 셈이다. 하지만 김사행은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 건축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1차 왕자의 난 때 태종은 김사행의 목을 베어 삼군부(조선초 군무를 관장하던 관청) 문에 매달게 했다.

고려와 조선을 넘나들며 광화문을 세운 환관은 역적으로 몰려 생을 마감했다. 김사행의 목이 매달린 삼군부는 조선초 육조거리 오른편 맨 앞(현재 정부서울청사 건물)에 위치했다. 자신이 세운 웅장한 광화문을 목이 잘린 채 바라본 애절한 인생이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제75주년 광복절인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 국민운동본부·자유연대 주최로 문재인 퇴진 8.15 국민대회가 열린 가운데 집회 참가자들이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2020.08.15 mironj19@newspim.com

◆광화문의 눈물..집회자유에 걸맞는 책임 필요

임진왜란 때 불타 폐허로 남은 경복궁과 함께 광화문은 대원군의 중건까지 278년을 상처입은 채 쓸쓸히 자리를 지켰다.

일제 침탈기에는 조선총독부를 짓기 위해 건춘문 북쪽(현재 국립민속박물관자리)으로 해체 이전되면서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메이지 일왕 등을 기리는 일본의 신사)을 바라보기 위해 5도 가량 건물 각도까지 틀어지는 수모를 당했다. 6·25 전쟁 당시 포탄을 맞아 완파돼 목조 석루 부분은 사라졌고 석축만 남았다.

1968년 원래 위치로 이전한다고는 했지만 고증을 거치지 않은 채 콘크리트로 복원됐고, 당시 중앙청(조선총독부 건물)에 맞춰 3.75도 가량 틀어졌다.

결국 광화문은 경복궁 복원사업 일환으로 2006년 철거돼 4년만인 2010년 완공되기는 했지만, 문 앞에 있던 월대(궁궐의 정전, 묘단, 향교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는 교통체증을 이유로 복원이 미뤄져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광화문이 '집회의 자유 메카'로 자리매김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동안 집회의 성지는 서울시청 앞 광장이었다. 대한민국에 민주화를 가져온 1987년 민주항쟁을 비롯해 한국사의 주요 고비에는 '시청앞 광장'이 있었다.

하지만 2016년 박근혜대통령 탄핵 집회 등을 계기로 광화문 광장은 집회의 메카로 자리 잡는다.

집회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리다. 대한민국 헌법도 제21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알릴 자유는 있다. 다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광복절에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집회는 법원도 허락한만큼 비난받을 권리는 없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는 점을 고려한 배려가 있어야 했다.

광화문 집회로 코로나19가 재확산되고 있다. 그나마 기운을 차리는가 싶던 식당 등이 다시 침체기미가 뚜렷하고, 사회가 코로나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광화문 집회에서 광화문은 죄가 없다. 책임을 저버린 사람들만 죄가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재유행을 보면서 광화문이 흘리는 눈물과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fair77@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써보니] 트라이폴드 태블릿과 다르다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삼성전자가 2일 공개한 3단 폴더블폰 '갤럭시 Z 트라이폴드'를 현장에서 직접 사용해보니 예상보다 가볍고 얇은 형태가 먼저 느껴졌다. 크기와 구조상 무게가 상당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생각보다 부담이 덜한 편이다. 다만 한 손으로 오래 들고 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고, 전용 케이스나 거치대를 함께 사용할 때 가장 안정적인 사용감이 나온다. 펼친 화면은 태블릿을 떠올리게 할 만큼 넓고 시원하지만, 두 번 접어 휴대할 수 있다는 점은 기존 태블릿과 확실히 다른 경험을 만든다. 동시에 두께·베젤 등 초기 모델의 구조적 한계도 분명히 느껴졌다. ◆ 10형 대화면의 시원함…멀티태스킹 활용도↑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화면을 펼쳤을 때의 시야다. 10형 대화면은 영상 시청 시 몰입감이 크고 웹 검색·문서 작업에서도 확 트인 느낌을 준다.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삼성전자 '갤럭시 Z 트라이폴드'를 다 펼친 모습. 2025.12.02 kji01@newspim.com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삼성전자 '갤럭시 Z 트라이폴드'로 3앱 멀티태스킹을 진행하는 모습. 2025.12.02 kji01@newspim.com 특히 최대 3개의 앱을 동시에 띄워놓는 멀티태스킹 기능은 생산성 관점에서 기존 폴더블보다 한 단계 더 진화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세 개의 스마트폰 화면을 한 번에 펼쳐 놓은 듯한 넓이가 확보돼, 동시에 여러 작업을 처리하기에 충분한 공간감이 느껴졌다. 이메일·인터넷·메모장 등 업무 앱을 한 화면에서 자연스럽게 배치할 수 있고, 영상 콘텐츠를 켜둔 채 작업을 이어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삼성전자 '갤럭시 Z 트라이폴드'로 영상 시청을 하는 모습. 2025.12.02 kji01@newspim.com ◆ 구조에서 오는 한계도 분명…베젤·힌지·두께는 '새로운 폼팩터의 숙제' 새로운 구조 특성상 아쉬운 부분도 있다. 우선 베젤이 비교적 두꺼운 편이다. 화면을 여러 번 접는 구조라 물리적 여유 공간 확보가 필수적이다 보니 테두리가 두드러져 보인다. 상단 롤러(힌지 유닛 일부로 보이는 구조물)도 시각적으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화면 연결부 자체는 자연스럽지만, 힌지 구조물 자체는 어색하게 보일 수 있다.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삼성전자 '갤럭시 Z 트라이폴드'를 닫은 모습. 2025.12.02 kji01@newspim.com 또 하나는 완전히 접었을 때의 두께감이다. 구조상 여러 패널이 겹치는 형태라 다 접어놓으면 두껍게 느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이는 구조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사용성에 치명적일 정도의 부담은 아니었다.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삼성전자 '갤럭시 Z 트라이폴드'는 왼쪽 화면부터 닫아야 한다. 반대로 닫으려 할 시 경고 알람이 울린다. 2025.12.02 kji01@newspim.com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접는 순서가 고정돼 있다는 점이다. 오른쪽→왼쪽 순으로 접도록 설계돼, 반대로 접으려 하면 경고 알람이 울린다. 폼팩터 특성상 불가피한 방식이지만, 초기에 적응 과정이 필요하다. ◆ 태블릿과 겹치는 모습…그러나 휴대성이라는 확실한 차별점 사용 경험을 종합하면 '트라이폴드'는 태블릿과 유사한 역할을 상당 부분 수행한다. 대화면 기반의 콘텐츠 소비·문서 작업·멀티 환경 등 핵심 사용성은 태블릿과 맞닿아 있다.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삼성전자 '갤럭시 Z 트라이폴드'가 거치대에 놓인 모습. 2025.12.02 kji01@newspim.com 그러나 폴더블 구조로 접어서 주머니·가방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은 태블릿이 따라올 수 없는 차별점이다. 이동이 잦은 사용자에게는 '태블릿과 스마트폰의 중간 지점'에 있는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강민석 모바일경험(MX)사업부 스마트폰PP팀장(부사장)은 "태블릿은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없다. 태블릿은 대화면 그 자체의 장점이 있지만, 트라이폴드는 두께·무게 측면에서 소비자가 어디든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을 만들었다"며 "트라이폴드는 기존 태블릿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카테고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 가격은 부담되지만…경쟁사 대비 '상대적 우위' 가격은 여전히 소비자에게 큰 장벽이다. 출고가 359만400원은 스마트폰 범주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금액이다. 다만 경쟁사 제품들과의 상대 비교에서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중국 화웨이는 올해 출시한 트라이폴드폰을 1만7999위안(약 350만 원)부터 책정했다. 고용량 모델로 갈 경우 2만1999위안(약 429만 원)까지 올라간다.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임성택 삼성전자 한국총괄 부사장이 '갤럭시 Z 트라이폴드'를 소개하고 있다. 2025.12.02 kji01@newspim.com 이 기준에서 보면 삼성의 359만 원대 가격은 화웨이 평균 가격보다 낮은 편으로 비교된다. 특히 고용량 기준 화웨이 최고가와의 비교에서는 약 70만 원 가까운 차이가 나, '삼성이 가격 경쟁력까지 고려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시장에서는 출시 전부터 트라이폴드 구조상 부품 단가가 높아 400만 원 안팎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실제 출고가는 이 예상보다 낮게 형성되면서, 삼성이 새로운 카테고리 안착을 위해 가격선을 일정 수준까지 조정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kji01@newspim.com 2025-12-02 11:48
사진
박대준 쿠팡 대표 "'자발적 배상도 고려" [서울=뉴스핌] 남라다 기자 = 박대준 쿠팡 대표가 "패스키 한국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3일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질의에서 "한국 쿠팡에서 패스키를 도입할 계획이 있나"라는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이같이 답변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쿠팡 개인정보 유출 관련 현안질의에서 의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pangbin@newspim.com 이 의원은 "대만 쿠팡에서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전용 패스키 기술을 독자 개발하고 보급했다"며 "한국에 패스키를 도입했다면 이런 사고가 일어났겠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우리 대한민국에도 바로 대만처럼 대처할 수 있습니까"라고 따져물었다. 이 의원 질의에 박 대표는 "의원님 말씀에 공감하고 깊이 책임감 느끼고 있습니다"며 "조속히 (한국)에 도입될 수 있도록 검토하겠습니다"고 말했다. 소송을 통한 배상 대신 자발적으로 배상 조치하라는 질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nrd@newspim.com 2025-12-03 15:54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