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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주택 변천사] 때되면 나눠주던 주택 상품으로 둔갑, 투기광풍 집값 폭등에 중국경제 몸살

기사입력 : 2019년10월08일 17:23

최종수정 : 2019년10월08일 17:23

계획경제 분배에서 1998년 매매 상품 전환
2003년부터 경제성장 부동산 의존도 심화
4차례 부동산 투기 광풍, 경제 안정 위협

[서울=뉴스핌] 강소영 기자=중국 건국 70년 동안 많은 분야에서 변화와 개혁이 이뤄졌다. 중국 민생과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도 그중 하나다. 부동산 산업은 다른 분야보다 다소 늦게 개혁이 이뤄졌지만, 변화의 속도는 엄청났다. 계획경제 아래에서 집은 정부가 분배해주는 공공 자산에 불과했지만, 현재 중국에서 부동산은 자산증식을 위한 최고의 투자 대상이자, '내 집 마련'이라는 인생의 중요 목표물이 될 정도로 중국인들에게 중요한 자산이 됐다.

중국 부동산 시장과 산업은 1998년 전후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그 해 이뤄진 부동산 개혁 정책으로 정부에서 직접 공급하는 복지주택 제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1998년 6월 15일 진행된 전국 부동산 개혁 업무 회의를 통해 하반기부터 주택 직접 공급을 중단하고, 현금 주택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결정됐다. 계획경제하에서 정부가 분배 해주던 주택이 하나의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거래가 되기시작한 것이다. 

이후 새로 지어지는 주택은 임대가 아닌 매매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입, 중국 경제성장을 지탱했고 중국인의 삶의 질도 대폭 개선됐다. 그러나 부동산으로 인해 경제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도 함께 등장하게 됐다. 

◆ 계획경제 시절 집 걱정은 없었으나 열악했던 주거환경 

-복지주택 공급, 화장실·주방 공동 사용 
-덩샤오핑, 중국 부동산 산업 개혁 적극적
-1980년대 중반 분양주택 개념 도입
-1993년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 첫 등장

1980년대 복지주택의 모습. 개별 주방이 없는 구조여서 모든 가구가 좁은 복도에 주방을 설치해 사용하고 있다. <사진=바이두>

중국인민공화국 수립 당시 중국 국민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 노출돼있었다. 잇단 내전으로 대부분의 주택이 훼손됐지만, 당시 산업화 수준으로는 단기간에 대량의 주택 건설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주택 공급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초기 중국 공산당 정부는 개인의 주택 임대를 장려하기도 했다.

정권이 안정되면서 중국 정부는 주택 문제 해결에 나섰다. 정부가 자금을 제공하고, 단위(單位)로 불리는 기관 혹은 기업이 주택을 짓고, 분배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이를 '복지주택(福利房)'이라고 부른다.

회사는 직원의 근무 기간, 가족 단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집을 분배했다. 그러나 초기에 지어진 복지주택은 매우 좁았고, 편의 시설도 부족했다. 1960~70년대 중국 가구 당 평균 주택 면적은 10평(약 30제곱미터)이 되지 않았다. 집 내부에 방 구분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독립된 화장실과 주방도 없었다. 

30여년 전 직장에서 신혼집을 분배 받은 쉬(徐)씨는 "집 크기가 20제곱미터도 채 안됐다. 침대, 탁자, 옷장 하나씩만 넣어도 집이 꽉 찼다.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했고, 밥을 짓는 것은 좁은 복도에서 해결해야 했다"라고 회상했다. 

정부 차원에서 주택 공급에 직접 나섰지만, 부동산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비했다. 1978년 중국 고정자산투자에서 주택 건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안이었다. 

주택 환경 개선과 주택 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처음 제시한 것은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 1978년 9월 전국 도시주택건설 회의를 통해 덩 전 주석의 의중이 하달됐고, 개인 주택 건설 허용·관민 주택 공동 건설·할부 구매 등의 새로운 제도 도입이 거론됐다.

이를 계기로 '주택'에 대한 중앙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비생산성 건설로 분류됐던 주택을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의 중요 사업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주택 건설 계획을 대폭 확대해, 1982년 6차 5개년 개발계획(6·5계획)에서  5년 내 3억1000 제곱미터 건설 목표가 제시됐다. 7·5 계획 기간에는 목표치가 6억5000만 제곱미터로 커졌고, 8·5계획 기간에는 12억 제곱미터로 다시 확대됐다. 

1984년에는 정부 공작보고에 처음으로 '주택 상품화 시범 계획'이 언급되며, 부동산 산업의 싹이 트게 됐다. 부동산을 시장에서 매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 이후 상품방, 즉 민간이 건설하여 판매하는 분양주택이 탄생하게 됐다. 토지를 공공 자산으로 간주하는 제도 아래서 상품방은 매매가 가능하지만 소유권은 인정되지 않으며, 사용 기한은 40·50·70년으로 제한된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토지개혁도 빠르게 진행됐다. 1987년 12월 선전에서 홍콩의 제도를 도입한 토지사용권 경매가 첫 시행됐다.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후 이뤄진 최초의 경매였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홍콩 토지 측량사협회는 영국에서 주문 제작한 경매 낙찰 망치를 선전에 선물했다.  

1990년대 들어서 주택제도 개혁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가 일으킨 개혁 열풍을 타고 중국 부동산 시장에도 개혁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단시간에 과열되자 중국 정부가 조치에 나섰다. 1993년 6월 23일 국무원은 부동산 회사의 시장진출과 은행 자금의 부동산 시장 투입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 부동산 시장 역사상 첫 번째 투기과열 억제 정책으로 불린다. 

 ◆ 주택공급 중단, 분양주택 시대 도래 후 부동산 비약적 발전 

-1998년 하반기부터 복지주택 공급 중단, 주택시장 상품경제 개념 확산 
-중국 건국 70년 동안 중국인 1인당 거주 면적 10배 증가

중국 부동산 산업과 시장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온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1997년 금융위기가 아시아를 휩쓸자, 경제 성장 돌파구 마련이 시급했던 중국 정부가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가장 획기적인 제도 변화는 복지주택 공급 중단이었다. 계획경제의 대표적인 잔재였던 복지주택 제도 철폐는 중국 주거환경과 경제산업 구조를 뒤엎는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이후 중국 부동산 시장에 자유경제 이념이 빠르게 침투했고, 부동산 산업과 시장 규모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됐다. 중국 주택 시장은 '복지방' 시대를 거쳐 '상품방(商品房 분양주택)'의 시대로 진입, 주택의 면적과 품질도 갈수록 개선됐다.

개혁개방 정책의 큰 틀에서 주택시장의 시장경제화는 필연적이었다. 복지주택으로 살집에 대한 큰 걱정은 없었지만, 이 제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주거환경 개선에 대한 중국인들의 갈망을 채워주기엔 한계가 있었다. 공평성에 대한 불만도 무시할 수 없는 사회문제였다. 같은 조건인데도 동료가 나보다 좋고 큰 집을 분배받았다는 불평이 사업장마다 터져나왔다. 

1949년 4.5제곱미터에 불과했던 중국인 1인당 거주 면적은 1998년 주택제도 전면적 개혁 당시 17제곱미터로 증가했다. 2016년에는 40.8제곱미터로 70년 만에 10배 가까이 확대됐다.

◆ 중국인의 부동산 애착은 언제부터, 부동산 투기 열풍 역사 

-1차 투기 열풍: 1980년 대 말 하이난다오
-2차 투기 열풍: 2003년 본격적인 투기세력 형성
-3차 투기 광풍: 2008년 4조위안 정책으로 부동산 기형적 팽창
-4차 투기 열풍: 2015년 경기 경착륙 방어 위해 정부가 나서

부동산 제도 전면 개혁과 주택 산업 발전은 중국 경제성장에 큰 밑거름이 됐다. 국민들의 삶의 질도 대폭 향상됐다. 그러나 유별난 중국인의 '내 집'에 대한 애착과 자산증식에 대한 열망으로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도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원칙을 강조하며 투기 억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앙 정부의 대대적인 투기 근절 기조에 중국 부동산 시장이 다소 침체 양상을 보이고는 있지만,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는 조짐이 나타나면 대도시 부동산이 어김없이 들썩이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부동산 시장 변천사에 있어 뚜렷한 투기 열풍이 나타난 것은 모두 네 차례다.

첫 번째 투기 열풍은 1980년 말부터 90년대 초 하이난다오에서 발생했다. 1988년 8월 하이난다오가 광둥성에서 분리, 31번째 성급 행정구로 승격되면서 투기 광풍이 현지를 덮쳤다. 총 인구 160만 명의 하이난다오에 2만 개가 넘는 부동산 회사가 진출했다. 하이난의 상품방(분양주택) 가격은 3년 만에 400%가 넘게 올랐다.

부동산 투기 사태가 심각해지자 주룽지 당시 총리가 특단의 조치에 나섰다, 부동산 기업의 시장 진출과 은행 자금의 부동산 투입을 중단했다. 이 영향으로 하이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지역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두 번째 부동산 투기는 2003년에 시작됐다. 당시 중국 정부가 부동산을 중국 경제의 지주산업으로 간주, 관련 산업 지원에 나서면서 부동산 시장과 업계가 빠르게 성장했다. 실제로 당시 부동산 시장 성장으로 중국 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향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 부동산 투기 세력이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세 번째 부동산 투기 광풍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중국 정부의 4조 위안 경기 부양정책 결과로 불어닥쳤다.

2007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8년 선전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2007년 대비 50%나 하락했다.

부동산 시장 급랭으로 경제성장 둔화를 우려한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경기 부양에 나섰다. 후진타오 전 주석 시절 원자바오 총리 주도로 4조 위안 규모의 초대형 부양책을 전개,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교적 순조롭게 극복할 수 있게됐다.

그러나 이후 중국 경제는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막대한 규모로 풀린 자금이 기업 등 실물경제 주체보다는 부동산 시장에 더욱 많이 유입됐고,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 과정에서 중국 경제 산업 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 부동산 열풍은 2015년 발생했다. 이때는 중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나섰다. 2003년 이후 중국 경제의 부동산 산업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졌고, 부동산 시장 침체가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형성됐다. 경기 경착륙을 우려한 중국 정부가 부동산 활성화에 착수했고, 시장이 빠르게 반응하면서 다시 투기 열풍이 확산됐다.

그해 인민은행이 부동산 활성화를 위해 한 해 동안 5차례 금리를 낮추면서 중국 금리가 역대 최저점까지 내려갔다.

js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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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힘들어도 환자 위했는데, 공공의 적 됐다" 전공의 '울먹' [서울=뉴스핌] 방보경 노연경 기자 = 의과대학 학생, 전공의 등은 정부가 독단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전공의 대표는 '정부가 우리를 악마화하는 과정에서 (환자와의) 신뢰를 깨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서울의대 비대위)가 30일 개최 의료개혁 관련 긴급 심포지엄에서 박재일 서울대병원 전공의 대표는 "국민 위한 의료개혁이 올바른 방향 무엇인가를 고민했는데, 공공의 적이 돼버렸다"며 울먹였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제일제당홀에서 열린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대위 긴급 심포지엄에 의료진들이 참석해 있다. 2024.04.30 pangbin@newspim.com 이날 열린 심포지엄은 의대 정원 확정을 앞두고 이뤄졌다. 교수들은 의료대란의 배경 및 정부에 제시할 정책 대안을 짚었다. 김민호 서울대 의과대학 학생회장과 박재일 서울대병원 전공의대표 역시 자리에 참석해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박 대표는 혈액종양내과에서 일해오면서 느꼈던 개인적인 소회를 털어놨다. 박 대표는 "수련받으면서 몸이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몸이 힘들수록 내 환자의 몸은 건강해질 거라고 믿었다"고 했다.  그는 "내과 1년차 때 맡았던 환자에게 매일 울면서 어떤 말을 해드려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신을 믿지 않지만 인생에서 처음으로 기도를 했다"며 "(그분을 볼 때마다) 복도로 다시 나와서 심호흡하고 커튼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걸 반복했다"며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했다.  박 대표는 "2년 후 그분이 완치된 것을 보고 힘든 상황에 환자들 곁에 있고 싶어서 혈액종양내과를 지원했다"며 "회복한 환자들의 감사인사와 편지를 마음속에 품는데 정부는 전공의를 악마화해서 국민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자부심과 긍지 갖고 환자 곁에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며 "기피과가 있다면 시스템 개선해서 모든 전공의들이 소신껏 지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박 대표의 발표가 끝나자 30초 이상의 큰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박 대표는 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휴지를 손에 쥐고 연신 눈물을 닦았다. 동료 전공의로 보이는 몇몇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방재승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교수는 "교수이자 선배의사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이 심란하다. 전공의 대표가 저렇게 슬픈 모습 보이는 것은 진심이 아니면 나올 수 없다"며 "정부는 전공의 복귀를 이야기하기 전에 진실된 마음으로 의대생과 전공의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제일제당홀에서 열린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대위 긴급 심포지엄에 의료진들이 참석해 있다. 2024.04.30 pangbin@newspim.com 박 대표는 발표에서 정부가 전문직, 수련생, 노동자 등의 정체성이 혼재된 전공의의 입장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료계는 오래전부터 의료체계 문제점 분석해 정부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보건의료정책 심의위원회에서도 알 수 있듯, 의료계 현장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타국과 비교했을 때 전문가 의견 태도가 반영되지 않았고, 의료개혁특별위원회까지 지속됐다"며 "정부는 의료체계 전반적 문제점을 잘못 진단하고 엉뚱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며 초기 진단과정부터 되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의과대학 학생 대표 역시 정부가 의료계와 교육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대표는 "정부는 필수의료만이 국민의 건강을 위해 필요하며, 비필수의료는 시스템을 왜곡하는 주범인 양 몰아가고 있다"며 "저수가 박리다매 의료 시스템이 고성장 시대가 끝나자 통째로 무너져내리고 있는데, 이를 정부가 좁고 자의적인 범위로만 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증원으로 교육 질 저하, 의료 질 저하 발생하면 책임 결과 또한 의료인이 같이 안게 된다"며 "학생들은 (정부 정책이) 의료와 의학을 위하는 진심 어린 정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시스템적 접근 필요 ▲현장의 목소리 청취 ▲필수의료패키지 반대 등의 안건을 내놓으며 대정부 요구안을 제시했다.  hello@newspim.com 2024-04-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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