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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모스크바 이야기]...(5-1) 한국전쟁 진실 밝힌 두 러시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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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북침설 잠재운 볼코고노프 장군...남침입증 비밀문건 공개
"한국전쟁은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 3인이 공모한 해방전쟁" 단언
스탈린 남친전쟁 승인-중공군 참전문건 등 극비전문 첫 공개 '충격'

[서울=뉴스핌] 김흥식 객원논설위원 = 한국전쟁이 북한에 의한 남침이라는 사실은 지금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팩트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그동안 일부 진보적 학자 사이에서 남침을 부정하는 황당한 논리를 펴기도 했다.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론에 의한 북침설, 남북한 국지적 무력충돌이 확대돼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설, 나토의 군사적 압력을 극동으로 분산시키고 아시아권 공산화 촉진을 위해 스탈린이 기획했다는 설 등이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제70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군 장병들이 미래전투수행체계 시범을 보이고 있다. 2018.10.01. leehs@newspim.com 

◆옐친 최측근이자 군 개혁위원장 볼코고노프...소련군 선전선동총국 2인자 출신   

김일성 주도의 인민해방전쟁(남침)으로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에는 두 명의 저명한 러시아 전문가가 결정적 기여를 했다. 볼코고노프 장군과 코로트코프 박사가 바로 그들이다. 필자가 공들여 만났던 이들은 관련 비밀문건을 공개하며 용감하게 진실을 털어놓음으로써 북한의 ‘남침’ 사실을 확고부동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옐친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남침을 입증하는 관련 비밀문건을 제공했다.

먼저 볼코고노프 장군을 말하고자 한다. 한국전쟁 과정에서의 소련 개입 여부를 집중 취재하던 중 92년 봄 드미트리 볼코고노프 장군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현역 육군 상장(우리의 대장)인 볼코고노프는, 러시아 연방 인민대의원(국회의원) 겸 국가문서관리위원장, 옐친 대통령 군사보좌관과 국가안보위원회 위원,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이란 다채로운 직책을 가진 거물이었다.

옐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소련 해체 직후 러시아 연방정부의 첫 국방장관 직을 제의받았으나 야전 지휘관 출신이 아니라는 합리적 이유를 들어 사양했다고 한다. 그 대신 대통령 군사보좌관과 군 개혁위원장을 맡아 안보와 군개혁문제에 관해 대통령과 수시 협의하는 최측근 인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소련군 선전선동총국(중국군 총정치부와 유사한 기구) 쪽에서 주로 근무하면서 부총국장까지 올랐다. 자연스럽게 비밀문건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련의 왜곡 투성이 역사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레닌과 스탈린의 조작된 신화를 무너뜨린 탁월한 연구는 서방에서도 알아주는 역사학자로 자리매김했다. 그 때문에 군부를 비롯한 정통 보수파로부터 배척을 받고 국방부 산하 군사연구소 소장으로 좌천돼 있다가 옐친의 부름을 받게 된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2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6.25전쟁 제68주년 중앙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8.06.25 kilroy023@newspim.com

◆"한국전쟁은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 3인이 공모한 해방전쟁" 단언 

그의 화려한 프로필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국가문서관리위원장이라는 자리가 주목을 끌었다. 공산체제를 극도로 싫어한 옐친 대통령은 소련 시절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비밀문건 등을 전면 재검토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문서관리위원회를 신설했다.

위원장에는 스탈린 독재를 비롯해 기존의 공산폭정에 관한 비판적인 저서를 냈다가 축출된 볼코고노프를 상장(우리의 대장)으로 올려 임명했다. 그에게는 KGB, 국방부, 외무부 등 모든 정부기관에 소장된 어떤 비밀문건에도 접근할 수 있는 전대미문의 특권이 부여되었다. 과거에 일어난 일체의 기록과 사건. 사고를 아무 제한없이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를 만난 건 순전히 행운이었다. 어느 한국인 회사 사무실에서 친교를 맺은 러시아인(예비역 소령)이 볼코고노프 장군을 모신 적이 있고 가끔 연락도 하는 사이라며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사실 특파원 부임 전부터 볼코고노프란 인물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어느 외국 기자에게 한국전쟁과 관련해 북침(소련에서는 정설로 돼 있었다)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며 관련 자료를 검토, 정리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첫 만남에서 연합뉴스의 매체 성격을 설명하고 필자에게 전해주는 내용은 가감없이 한국민에게 알리겠다고 말했다. 장군은 서울에서는 한국전쟁기원에 관한 내막이 궁금할 것이라며 차근차근 자료를 제시하며 설명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한국전쟁은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 3인이 공모한 ‘해방전쟁’이었다고 단언했다.

‘KBS 다큐 1’ 6.25 한국전쟁…대한민국 최초 전투함 ‘백두산함’, 긴박했던 해상전투 <사진=‘KBS 다큐 1’ 홈페이지>

◆스탈린이 김일성에 보낸 남침전쟁 승인-중공군 참전결정 극비전문 첫 공개 

처음 공개하는 것이라며 남침전쟁임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3인간 주고받은 극비전문 일부를 보여줬다. 스탈린이 ‘핀시’라는 기이한 암호명으로 김일성에게 보낸 남침전쟁 승인과 중공군 참전결정에 관한 비밀전문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묻혀진 과거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게 자신의 의무이자 임무라면서 진실을 말할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엄격한 장군이라기 보다 학자풍인 그는 앞으로 만남이 계속되면 추가적인 미공개 자료들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필자의 기사에 자신의 이름을 얼마든지 인용해도 좋다고 할 정도로 거리낌이 없었다.

비밀문건을 토대로 한 기사는 당연히 국내언론에 연합 크레디트를 달아 대서특필됐다. 대어를 낚았다는 뿌듯함과 함께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자신감이 넘쳤다. 첫 만남이후 귀임할 때까지 10여 차례 만났다. 그의 도움으로 한국전쟁을 비롯해 한.러 관계 보도를 심도있게 이어갈 수 있었다. 만남이 계속될수록 이심전심으로 정서적 유대감이 커지고 상호신뢰가 깊어졌다고 생각한다.

92년 8월의 만남에서 볼코고노프 장군은 냉전시대 최대의 비극으로 기록된 사할린 상공 KAL기 격추사건(1983년 8월31일)과 관련해 당시 소련 지도부의 조직적 은폐과정을 폭로하는 비밀문건을 필자에게 제시하고 설명했다.

사건 발생 다음날 처리방침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소집된 소련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 회의록이라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의 파렴치한 행태가 그대로 드러난 회의록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의록의 내용은 'KAL사건에 관한 고르바초프의 애매한 태도' 편에서 상술했으므로 생략한다.

[평택=뉴스핌] 이형석 기자 =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미군 유해가 27일 오전 북한 갈마공항을 출발해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2018.07.27 leehs@newspim.com

◆KAL기 격추사건 조직적 은폐 문건 제시...옐친, YS에 유감표시 관련 문건 전달 계기 

이와 관련, 필자는 옐친 대통령이 92년 11월 방한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들어 KAL기 피격사건과 희생자에 대해 러시아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가 있어야 한국인의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며칠 후 장군은 전화통화에서 대통령에게 건의했으며 소련과 러시아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공식사과를 표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옐친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KAL기 사건과 한국전쟁 개입에 대해 정식으로 유감을 표시하고 관련 문건들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귀임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장군은 장문의 문건 하나를 전해주었다. 스탈린 사망 직전 3일 간의 긴박한 상황을 비밀문건을 토대로 정리한 것인데 원래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주기로 했다가 필자에게 석별의 기념으로 주는 것이라고 했다. 스탈린 공식 사망 전 3일 동안 권력층 내부에서 전개되는 치열한 암투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 문건에 의하면 별장에서 최후를 맞기 직전 스탈린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였다. 스탈린은 사망 얼마 전부터 서방의 종전 압력과 중국의 참전대가로 약속한 대규모 무기공여, 군수공장 설립 및 원자탄 제조비밀 제공 등의 이행을 마오로부터 끈질기게 요구받자 전쟁을 끝내기로 작정했다는 게 장군의 설명이다.

특히 중국이 미국에 맞서 대등한 전투를 벌임으로써 마오의 국제적 위신이 높아진 데 따른 경계심도 작용했다고 한다. 사망 5일전인 1953년 2월 28일 전쟁을 끝내기 위한 행동을 다음날 취할 계획이라고 측근들에게 말하고 이날 저녁 베리야, 불가닌, 흐루시초프, 몰로토프 등 최측근 정치국 동료들과의 만찬에서도 한국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없음을 거듭 지적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94년 6월 모스크바를 방문, 교민들과 인사하는 가운데 특파원단 대표 자격으로 필자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스핌DB]

◆스탈린, "한국전쟁 승리가능성 없다"...최고위급 만찬서 정전 결정후 뇌졸중 쓰러져 

밤늦게까지 이어진 파티를 끝내고 다음날 새벽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비밀경찰 총수 베리야는 스탈린에 대한 응급조치를 고의적으로 지연시켰고 스탈린은 3월 5일 사망했다. 그의 별장집무실 책상 위에는 한국전쟁 정세 분석 문건과 유고슬라비아 지도자 티토 제거계획이 실패했다는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후임 지도부는 서둘러 한국전쟁을 끝내기로 하고 정전의사를 유엔대사를 통해 표명토록 조치했다.

러시아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헌신적이었던 볼코고노프 장군은 94년 말 옐친 대통령의 체첸 침공 결정을 비판하면서 내침을 받게 된다. 민족분쟁 해결에 무력사용은 안된다는 게 그의 변함없는 신념이었다.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인 그는 미-러 전쟁범죄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95년 말 병환으로 서거한 장군에 대해 LA타임스는 “진실을 폭로하고 조작된 신화의 타파를 위해 그는 자주 (체제에 대한) 반역과 배신을 저질렀다. 그는 결코 후퇴하지 않았다”고 평했다. 그의 인물됨이 돋보인 것은 서슬이 시퍼런 공산당 시절에 소련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용감하게 반기를 들었다는 점이다.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은 장군의 단호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기존의 저서 ‘스탈린’에서 한국전쟁 관련한 스탈린-김일성-모택동 간 비밀전문과 남침 직전 쉬티코프 대사의 극비 보고서등이 포함한 개정판을 한국어로 발간하기도 했다.

▲김흥식 뉴스핌 객원논설위원 

한국외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1977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뎠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직되는 아픔을 겪고 쌍용그룹에 몸담고 있다가 1988년 연합뉴스 기자로 복귀했다. 1991년 한국의 첫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파견돼 맹활약했다. 이후 연합뉴스 북한부장, 남북관계 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실 간사, 경영기획실장을 거쳐 편집담당 상무이사를 지냈다. 퇴임후 연합뉴스 부설 동북아센터 상임이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비상임이사, 도로교통공단 비상임이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등을 지낸뒤 현재 뉴스핌 객원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kh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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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설상 첫 金 최가온은 누구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한국 스키·스노보드가 오랫동안 꿈꾸던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은 17세 3개월 여고생이었다. 세화여고 3학년 최가온이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쓰며,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최가온은 13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받아 클로이 김(미국·88.00점)과 오노 미쓰키(일본·85.00점)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가 스키·스노보드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비뇨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최가온이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우승한 뒤 금메달을 깨무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6.02.13 zangpabo@newspim.com [리비뇨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세화여고 3학년 최가온이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1차 시기 부상을 털고 일어나, 3차 시기에서 클로이 김을 제치고 극적인 역전 금메달을 따낸 뒤 태극기를 든 채 미소를 짓고 있다. 2026.02.13 zangpabo@newspim.com 최가온은 이미 국제 무대에선 검증받은 올림픽 금메달 후보였다. 2023년 1월 미국 애스펀 X게임에서 14세 2개월의 나이로 슈퍼파이프를 제패하며 클로이 김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고, 한국 최초 X게임 금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같은 해 12월엔 월드컵 데뷔전에서 곧바로 우승을 차지하며 월드 클래스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상승 곡선은 큰 부상으로 한 차례 끊겼다. 2024년 1월 스위스 락스 월드컵 훈련 도중 허리를 크게 다쳐 척추 골절 판정을 받았고, 수술 후 1년 가까이 재활에 매달려야 했다. 유소년 시절부터 '천재 보더'로 불렸던 10대 선수에게 커리어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일격이었다. 돌아온 곳도, 방식도 드라마 같았다. 부상을 당했던 바로 그 락스에서 2025년 1월 복귀전을 치른 그는 월드컵 동메달을 따내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중국·미국·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 하프파이프를 연달아 제패하며 출전한 월드컵을 모조리 석권하는 신화를 만들었다. 월드컵에서도 1차 시기 부진 후 역전 우승을 여러 차례 연출해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 흐름은 고스란히 올림픽까지 연결됐다. [리비뇨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최가온이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극적인 역전 금메달을 차지한 뒤 시상대에서 눈물을 터뜨리자 클로이 김이 활짝 웃으며 쳐다보고 있다. 2026.02.13 zangpabo@newspim.com 이번 대회 결선은 그야말로 최가온 커리어를 상징하는 한 편의 시나리오였다. 1차 시기 두 번째 점프에서 보드가 파이프 턱에 걸리며 크게 넘어졌다. 한동안 일어나지 못한 채 쓰러져 있었고, 의료진이 슬로프 안으로 들어와 상태를 살폈다. 2차 시기를 앞두곤 전광판에 'DNS(출전하지 않는다)'가 잠시 표기될 정도로 기권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그럼에도 그는 두 번째 런에서 다시 슬로프 위에 섰다. 하지만 2차 시기에서도 초반에 또 한 번 넘어지며 점수를 만들지 못했다. 3차 시기를 앞둔 최가온의 점수는 10.00점, 결선 12명 가운데 11위. 반면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던 클로이 김은 이미 1차 시기에서 88.00점을 받아 여유 있게 1위를 지키고 있었다. 눈발까지 다시 굵어지며 코스가 무거워진 최악의 조건 속에서, 최가온은 무리한 1080도 회전 대신 현실적인 선택을 택했다. 1080도 이상의 초고난도 기술을 덜어내고 900도, 720도 회전으로 루틴을 재구성한 뒤, 세 번째 런을 완주하는 데 모든 걸 걸었다. 결과는 90.25점. 깔끔한 착지와 구성으로 심판 점수를 끌어올리며 단숨에 1위로 도약했다. 이제 남은 건 클로이 김의 마지막 런. 하지만 김은 2·3차 시기 모두 도중에 넘어지며 점수를 보태지 못했고, 결국 최가온의 금메달이 확정됐다. [리비뇨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최가온이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 1차 시기에서 두 번째 점프 후 보드가 눈 턱에 걸리며 넘어지고 있다. 2026.02.13 zangpabo@newspim.com [리비뇨 로이터=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최가온이 13일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 1차 시기에서 넘어지자 의료진이 달려와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2026.02.13 zangpabo@newspim.com 최가온의 출발은 거창하지 않았다. 스노보드를 취미로 즐기던 아버지를 따라 보드를 타기 시작했고, 어린 시절엔 피겨 여왕 김연아를 동경해 피겨스케이팅을 먼저 배웠다. 그러다 하프파이프 특유의 공중 연기에 매료돼 보드를 선택했고, 가족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받으며 세계 정상급 라이더로 성장했다. 겉으로는 수줍은 평범한 여고생이지만, 파이프 위에 올라서면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한 선수라는 건 코치와 동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대목이다. 허리 부상 당시에도 "아픈 것보다 대회에 못 나가는 게 더 속상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경쟁과 무대 자체를 갈망하는 타입이다. 이번 금메달로 그는 올림픽 여자 하프파이프 최연소 금메달리스트 자리에도 이름을 새겼다. 17세 3개월에 금메달을 목에 걸며, 2018 평창에서 17세 10개월로 금메달을 땄던 클로이 김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7개월 앞당겼다. zangpabo@newspim.com 2026-02-13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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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 '100년물 채권'에 거품 경고 [뉴욕=뉴스핌] 김민정 특파원 =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알파벳이 영국 시장에서 발행한 100년 만기 회사채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월가 전략가들은 이를 두고 "신용 시장의 사이클 후반부 과열을 보여주는 최신 신호"라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CNBC에 따르면 알파벳은 지난 10일 영국 파운드화 채권 시장에서 10억파운드 규모(1조9600억 원)의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했다. 이는 알파벳의 첫 파운드화 표시 채권이자 총 200억달러 규모의 다중 통화 자금 조달 계획의 일부다. 이번 100년물 채권에는 발행 규모의 약 10배에 달하는 주문이 몰렸으며 발행 금리는 영국 국채 10년물보다 120bp(1.20%포인트) 높은 수준에서 결정됐다. 알파벳은 지난주 올해 자본지출 규모가 18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경쟁사인 오라클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인프라 지출을 늘리고 있어 빅테크 기업들의 총부채 발행 규모는 향후 5년간 3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윈드 시프트 캐피털의 빌 블레인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거래가 AI 확장을 위해 공공 및 민간 시장에서 조달되고 있는 부채가 역사적인 규모를 벗어난 수준임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블레인 CE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적당히 높은 쿠폰(금리)의 100년 만기 채권을 팔 기회를 포착한 점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온전한 공로를 인정한다"며 "그들은 영국 보험사와 연기금들이 부채를 충당하기 위해 원했던 수요를 명확히 파악했다"고 말했다. 알파벳.[사진=로이터 뉴스핌]  2026.02.13 mj72284@newspim.com 하지만 그는 이번 100년물 발행이 시장 거품의 증거라고 강조했다. 블레인 CEO는 "나는 100년 만기 채권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그보다 더 거품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당신이 고점의 신호를 찾고 있다면 비록 그것이 훌륭하게 실행된 거래일지라도 그것은 절대적으로 고점의 신호처럼 보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블레인 CEO는 "AI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부채 축제'의 엄청난 규모에 대한 요점은 과거 내가 보았던 수많은 상황들을 떠올리게 한다"며 "특히 시장이 하나의 테마를 잡고 그들이 무엇을 사고 있는지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 말이다"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알파벳의 이번 움직임이 자금 조달 다각화 차원이라고 분석하면서도 리스크를 우려했다. 페더레이티드 헤르메스의 나추 초칼링엄 런던 크레딧 책임자는 "알파벳이 AI 자본지출(CAPEX)을 자금 조달하기 위해 시장의 맨 끝단(초장기물)에서 파운드화 발행을 준비한 것은 흥미롭다"며 "그들은 보험사와 연기금 수요를 활용하고 미국 달러 시장의 과포화를 피하기 위해 자금 조달원을 다각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리미어 미튼의 사이먼 프라이어 채권 펀드 매니저는 100년물 발행이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바다"라고 경고했다. 프라이어 매니저는 "구매자들은 기술 기업들이 주식 시장에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업계의 본질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러운 글로벌 및 현지 정치 환경 속에서 6%를 조금 넘는 수익률에 자금을 묶어두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지니치앤코의 타티아나 그레일 카스트로 공공시장 공동 대표는 이번 발행이 투자자들의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당신은 그 회사가 향후 100년 동안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존재할 것이라는 점에 올라타는 것"이라며 "이건 매우 드문 일이며 심지어 정부들도 100년 만기 부채를 잘 발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화 '빅쇼트'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마이클 버리도 알파벳의 100년물 채권 발행에 우려를 표시했다. 버리는 소셜미디어 엑스(X, 옛 트위터)에 "알파벳이 100년 만기 채권 발행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런 일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것은 1997년의 모토롤라였는데 그해는 모토롤라가 거물(big deal)로 여겨졌던 마지막 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997년 초 모토롤라는 미국에서 시가총액 상위 25위이자 매출 상위 25위 기업이었다"며 "오늘날 모토롤라는 매출 110억달러에 불과한 시가총액 232위 기업"이라고 덧붙였다.    mj72284@newspim.com 2026-02-13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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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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