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처벌규정과 사회적 변화 사이 괴리 인정
법원 "입법부가 손 봐야"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여비서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53)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위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당했다고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30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피감독자 간음)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위력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적자기결정권이 성숙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위력·위계 행사에 따른 처벌이 있다”며 “다만 피해자는 개인적 취약성 때문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없던 사람 같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결 사유를 밝혔다.
이어 “피해자 심리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떠나 피고인의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거나 피해자가 제한을 당했다고 볼 만한 상황이라곤 볼 수 없다”며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는 피해자로서는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등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피해자가 내심에 반하는 상황에 있었다 해도 현재 성폭력 범죄 처벌 체계 하에서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존 처벌규정과 사회적 변화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며 입법부로 공을 돌리기도 했다.
재판부는 “기존 처벌규정이 사회적 변화에 부응 못해 책임과 처벌 사이에 불합리한 괴리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며 “입법부에서 체계적 정비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사법부에서는 각종 증거법칙과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결정을 내릴 뿐”이라고 덧붙였다.
안 전 지사의 여비서 성폭행 혐의는 지난 3월 5일 김지은(33) 전 충남도 정무비서의 미투 폭로로 알려졌다. 김씨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러시아·스위스·서울 등 출장지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업무 중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고소장을 접수한 검찰은 지난 4월 11일 안 전 지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형법상 피감독자간음과 강제추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였다.

1심의 ‘무죄’ 선고에 방청석 반응은 극명히 엇갈렸다. 재판 내내 고요했던 법정은 울분과 박수로 뒤덮였다. 재판부가 퇴정하자 한 여성은 “정말 너무한다”, “정의가 없다”고 외쳤다. “지사님, 힘내세요”라고 외치며 박수를 치는 방청객도 있었다.
안 전 지사는 조용히 쏟아지는 눈물을 닦았다. 얼어붙어 있던 변호인단 얼굴에도 웃음이 피었다.
반면 피해자석에 앉아 선고 내내 정면을 응시하던 김씨는 선고가 끝나자마자 바로 자리를 떠났다.
zuni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