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를 향한 폭언·폭력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아
"을의 위치에 있다가 갑이 되니 보상심리...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버스기사들의 수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버스 운전기사에 대한 폭력행위 등 처벌이 강화된 지 오래지만 '기사들의 수난시대'는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일반 대중의 마음 속에 또아리를 튼 '갑질 보상심리'가 애꿎은 버스운전사들을 향해 터져나오는 것으로 분석한다. 아직 한국사회에 '버스기사는 하대해도 된다'는 의식이 버스와 택시기사에 대한 '그릇된 갑질'로 표출된다는 설명이다.
◆ 버스기사 폭행...5년간 1만5000건
버스기사 문모(57)씨는 지난해 애꿎은 수난을 겪었다. 시내버스를 운행하던 중이었다. 승용차 한 대가 갑자기 버스를 앞지르더니 이내 앞을 가로막았다. 승용차주 김모(26)씨는 다짜고짜 문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문씨의 얼굴에 침까지 뱉었다. 버스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끼어들었다는 게 이유였다. 버스 승객 모두가 보고 있어 문씨가 느낀 모욕감은 더 컸다. 재판부는 남성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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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인근에서 마을버스 운전기사가 차량 운행을 하고 있다. 2018.05.29 leehs@newspim.com |
버스·택시 등 운전기사의 안전 운행을 보장하기 위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까지 개정됐지만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경찰청에 따르면 2013~2017년 승객이 운전기사를 폭행한 사건은 약 1만5000건 이상 발생했다. 지난 5월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서 한 버스 기사는 자고 있던 30대 남성을 깨웠다가 폭행 당해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 지난 4월 충북 청주에서는 엉뚱한 정류장에서 기다리다 버스를 놓친 70대 남성이 홧김에 해당 버스기사에게 주먹을 휘두른 일도 발생했다.
특가법 제5조에 따르면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한 가해자는 가중처벌 대상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국토교통부는 버스기사를 보호하기 위해 2006년부터 시내버스를 대상으로 운전석 주변에 보호격벽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운전기사를 향한 폭언·폭력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 전문가 "을의 위치에 있다가 갑이 되니 보상심리...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전문가들은 운전기사 폭행을 뿌리 뽑기 위해선 처벌강화·보호격벽 설치 등에 앞서 시민들의 의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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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사회 자체가 각박해지다 보니 지금까지 추진해온 처방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행해지는 단기적인 대책이 아닌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희롱만 하더라도 지금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고 인식하지만 불과 2~3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며 "운전기사 폭행 역시 정말 잘못된 행동이라는 인식을 교육·캠페인을 통해 사회에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운전기사를 상품처럼 바라보니까 폭력행위가 발생한다"며 "갑질하는 자를 엄중히 처벌해, 징벌 효과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을의 위치에 있다가 잠시나마 갑이 된 순간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며 "약자에게 강한 한국인의 심리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어릴 때부터 남을 배려하는 게 진정한 갑의 모습이란 사실을 교육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unja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