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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내가 바로 패션이고 명품이다, 코코 샤넬

기사입력 : 2017년12월25일 12:30

최종수정 : 2017년12월25일 12:30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41)

“용모와 복장이 잘 갖추어진 사람은 그 사람의 내면을 보려고 하지만, 용모와 복장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은 자꾸만 그 사람의 외모만 보려고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려면 늘 달라야한다.”
“몸단장을 하지 않고 외출하는 여자를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예의를 차리지 않는 행동이다. 오늘이 운명의 상대와 만나게 되는 날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삶을 창조했다. 이전의 삶이 싫었기 때문에...”

코코 샤넬은 전통과 창조정신으로 한 세기를 풍미한 세계 패션계의 전설이다. 그녀의 야망은 자유를 추구하는 여성, 사랑하고 있는 여성, 사업을 하는 여성, 끊임없이 움직이며 관습을 타파하고 틀에 박힌 일들을 무시하는 그런 여성들의 옷을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그녀가 고안한 우아하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 디자인은 여성들로 하여금 종래의 복잡하고 불편한 옷에서 탈피하여 저지 드레스와 슈트, 나팔바지, 단발머리, 트렌치코트, 터틀넥 스웨터, 모조 보석, 리틀 블랙 드레스 등의 간편하고 새로운 혁신을 받아들이게 했다. 이처럼 20세기 여성에게 자유를 선사한 수많은 아이템은 바로 누구보다도 여성을 이해하고 사랑한 코코 샤넬 정신의 산물이다.

코코 샤넬(Coco Chanel, 1883~1971)은 1883년 프랑스 서부에 위치한 소뮈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이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그녀는 오바진 수녀원에서 7년여 간 생활하며 바느질을 배웠다. 또 여기서 금욕주의와 블랙 앤 화이트(Black & White) 컬러의 수녀복 의상,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부터 디자인의 영감을 얻었다.
성인이 된 샤넬은 수도원을 나와 봉제회사를 다니며 저녁에는 카페에서 가수로 일했다. 당시 그녀가 부른 노래 때문에 ‘코코(Coco)’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다. 또 후원자인 아서 에드워드 카펠의 도움으로 1910년 파리의 패션 거리에 샤넬 모드(Chanel Modes)라는 모자가게를 열었다. 가게 오픈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우연한 기회를 통해 샤넬이 디자인한 모자가 상류층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얻게 되었다.
1913년 샤넬은 모자 디자이너로서 성공한 것을 기반으로 북부 해양 휴양도시인 도빌 지역에 최초의 부티크(Boutique)를 오픈했다. 부티크의 간판에는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이라는 이름이 대문자로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샤넬이 본격적으로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였다. 전쟁이 일어나자 전쟁터로 나간 남성들을 대신해서 여성들의 노동력이 요구되었다. 이에 여성들은 화려한 장식이 어우러진 기존의 의복 스타일이 아니라 샤넬의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에 매력을 느꼈다. 샤넬은 남성 속옷에 사용되었던 얇고 가벼운 저지(Jersey) 천을 투피스에 활용해 여성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외적인 명성을 얻게 된 샤넬은 1918년에 파리 패션의 중심지였던 캉봉가 31번지로 진출했다. 이후 샤넬은 엉덩이 부분 옆선에 주름을 넣어 만든 샤넬 라인 원피스를 비롯해 큰 호주머니를 단 짧은 소매 재킷(Jacket), 길고 따뜻한 머플러(Muffler) 등을 추가로 출시하여 1920년대 자유로운 복장을 원하던 여성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이때부터 그녀는 순조롭게 패션 디자이너로서 성공의 길을 걷는다.
1921년, 세계 패션계에 역사적인 사업이 시작되었다. 바로 샤넬향수 사업이다. 샤넬은 여성복에서 혁신을 이룬 것처럼 향수 이름을 짓는 데서도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개발된 순서에 따라 번호만으로 향수 이름을 붙였다. 그러니까 마릴린 먼로가 자기는 이것만 뿌리고 잔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No.5’ 는 다섯 번째로 개발된 향수이다. 당시는 향수에 ‘봄의 욕망’, ‘저녁의 도취’ 같은 시적인 이름을 주로 붙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도식들을 과감히 깨부수고 이미 파리에서 자신의 의상실이 유명하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향수 이름을 ‘샤넬’이라고 지었다.

샤넬은 사업이 번창하게 되자 명성에 걸맞은 로고를 직접 디자인한다. 하나는 자신의 이름인 영문 CHANEL을 단순한 글자체로 디자인한 것이다. 또 하나는 두 개의 C자가 서로 대칭적으로 놓인 로고다. 가브리엘 샤넬은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던 ‘Coco’라는 별명을 이렇게 활용한 것이다.
이 두 개의 로고는 샤넬이 세계 패션계에 던진 화두와 이념을 잘 드러내 보인다. 먼저 검정색과 흰색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색의 대비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개의 C자가 이루고 있는 완벽한 대칭성이다. 여기에는 여성을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옷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했던 샤넬의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녀는 또 1924년에는 모조(模造)소재 액세서리를 출시했다. 처음에는 이 모조품에 대한 비난이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보석은 부나 집안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을 위한 액세서리여야 한다.”며 자신의 신념을 강조했고, 자신도 모조진주를 보란 듯이 하고 다녔다. 이후 색색의 보석이나 비잔틴 십자가로 장식된 모조 진주목걸이 등은 샤넬 장신구의 고전이 되었고,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물론 나중에는 고가의 보석으로 만든 진품(眞品) 주얼리 패션 액세서리 컬렉션도 선보였다.
샤넬 디자인의 단순미와 기능성의 극치는 1926년 발표한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여성의 검정 의상은 상복이나 점원들의 의상으로만 착용되었다. 하지만 샤넬은 산업혁명 이후 남성복에서 일고 있던 검은색의 우아한 미적 가치를 최고급 여성복에 도입하는 획기적인 시도를 하였다. 그런데 이 디자인은 복제가 쉬워, 다양한 가격대에서 그에 맞는 다양한 소재로 생산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디자인 복제의 성행은 오히려 샤넬 디자인의 홍보효과와 함께 오리지널 샤넬 상품의 희소성을 높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향수의 대명사 샤넬 향수 ‘No.5’ <사진=이철환>

샤넬 스타일이 한 세기를 성공적으로 대표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시대의 흐름을 잘 간파하고 이를 자신의 스타일로 끌고 간 그녀의 혁신적인 사고이다. '덜함이 더함이다(Less is More)'라는 이론과 샤넬의 심플한 디자인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소비자들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받게 된다. 또한 실용성을 강조한 그녀의 복식철학이 시대적 추세와 합치해 사업이 크게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둘째, 그녀의 진보적 태도이다. 샤넬은 그 당시만 해도 보잘것없던 디자이너라는 지위에 정면 도전한 선구자적 인물이었다. 스스로 모델이 되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인상적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녀의 마른 몸매와 짧은 머리 스타일은 1920년대를 풍미한 미성숙한 소년의 모습과 활동적인 여성상을 대표하였다.
샤넬은 항상 자신이 디자인한 의상과 액세서리를 착용한 모습으로 매체와 대중 앞에 등장했다. 이는 샤넬 상품 자체의 홍보뿐 아니라, 샤넬 자신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비결이 되었다. 그녀 자신이 '샤넬의 모델' 이었고 '샤넬의 홍보실장' 이었으며 '걸어 다니는 카탈로그'였다. 그 시대엔 샤넬처럼 적극적인 디자이너가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더욱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이처럼 샤넬은 디자이너로서 상당한 명성과 부를 거머쥐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의상 철학만큼이나 여자로서의 개인적 삶도 남자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도도하고 당찬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시대를 풍미하던 예술가, 정치가, 지식인, 사회적 명사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때로는 이들을 유혹하여 그들이 지닌 권력과 부귀를 즐기며 화려한 삶을 누렸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녀와 사귄 남자들은 모두 급사하거나 파산했다. 이에 샤넬은 불행한 사자자리의 숙명을 가진 여자라 불리기도 했다. 또한 같이 일하던 다른 디자이너들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의 정신적 후계자라고 칭찬한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같은 여성으로서 라이벌이던 엘자와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엘자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는 모든 면에서 샤넬과 반대였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던 샤넬과 달리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샤넬이 심플하고 직선적인 라인, 검은색 등 무채색 계열, 실용적인 옷감을 사용한 반면 엘자는 어깨와 가슴을 강조한 디자인, 일러스트와 동물 등 화려한 무늬, 고급스러운 옷감을 사용했다. 엘자는 재킷에는 단추가 있어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나비 장식을 달거나 하이힐을 본 뜬 모자를 만들었다. 1934년에는 여성 치마에 최초로 지퍼를 사용하기도 했다.
샤넬과 엘자의 대결은 의상을 넘어 향수, 잡화로 이어졌지만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두 사람은 파리를 떠나게 된다. 그로부터 15년 후 두 사람은 나란히 패션계에 복귀했다. 그러나 이때 패션계의 제왕 자리를 차지한 것은 샤넬도, 엘자도 아니었다. ‘뉴룩(New Look)’을 내세우며 등장한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이었다.
그런데 이들 두 사람의 역사는 여기서부터 갈리게 된다. 엘자는 패션사업을 정리하고 자서전을 냈지만 샤넬은 끝까지 패션사업을 이어나갔다. 샤넬이 패션을 통해 비즈니스의 길을 걸었다면 엘자는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한편, 무섭게 번창하던 샤넬의 사업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졸지에 문을 닫아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그녀는 사업을 접고 프랑스 남부로 피신했다. 파리가 나치의 손에 넘어간 상황에서 샤넬은 독일군 장교와 교제하였고 나치에 적극 협력했다. 종전 후 그녀의 이러한 행위가 밝혀지면서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스위스에서 망명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1954년, 15년간 파리를 떠났던 샤넬이 스위스 망명생활을 접고 71세의 나이로 돌아와 패션계로의 복귀를 꾀했다. 그러나 그녀의 조국 프랑스에서는 그녀를 나치에 혼을 판 매국노라며 혐오했다. 더욱이 패션의 트렌드도 그녀의 전성기와는 달리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당시 여성들은 전쟁 동안 입었던 실용적인 의상에서 벗어나 우아하고 화려한 의상을 찾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간파한 크리스찬 디올은 코르셋과 부풀린 스커트로 허리 라인을 강조한 ‘뉴룩(New Look)’을 출시했고, 이는 패션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래도 샤넬제품은 왕년의 명성이 남아있었기에 대중들로부터 꾸준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미국에서는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맞물려 여전히 그녀의 패션이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 1957년 샤넬은 미국 댈러스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패션 오스카상(Fashion Oscar)’을 수상했다.

1971년 1월 10일, 거주하던 파리의 리츠 호텔(Ritz Hotel)에서 콜렉션을 준비하던 샤넬은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리츠호텔은 샤넬이 머물었던 방을 ‘코코 샤넬 스위트 룸(Coco Chanel Suite)’라고 이름 붙여 그녀를 기리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유해는 고국인 프랑스의 묘지에 묻히는 것을 거부당했고, 어쩔 수 없이 망명생활을 했던 스위스의 로잔에 매장되었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에 협력함으로써 조국을 배신한 행위를 끝내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다.

샤넬의 자부심은 “나는 사람들이 샤넬 모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샤넬은 스타일이다. 모드는 시간이 지나면 유행이 지나간다. 그러나 스타일은 그렇지 않다.”라는 그녀의 말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녀의 디자인 하우스는 1983년 이후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지휘 아래 샤넬 본래의 스타일에 새로운 요소를 접목해 가며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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