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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40년] 1978~2017년 중국, 40개의 역사적 장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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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순강화, 양안 첫 공식회담, 삼협공정 개시
인터넷시대 진입, 홍콩반환, 중국 WTO 가입

[뉴스핌=황세원 기자] 2018년은 중국이 개혁ㆍ개방의 노선을 채택한 후 4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40년간 중국은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고성장세를 이어갔고, 경제를 비롯해 외교,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쾌거를 이루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G2로 부상했다.

현재 중국은 개혁ㆍ개방 이후 40년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2018년 '시진핑 신시대(新時代)'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1978년 부터 2017년까지, 지난 40년간 중국이 지나온 개혁개방의 여정을 40개의 사건과 역사적 장면으로 재구성해본다. 

<1편에서 이어짐>

 ◆ 1990년 휴대폰 ‘부의 상징’으로 인기

90년대 휴대폰은 중국인 최고의 인기 아이템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당시 중국 주요 대도시에서는 무전기만한 휴대폰을 들고 목청을 높여 통화하는 중국인이 많았다.

휴대전화가 큰 인기를 끌면서 중국인 사이에서는 이를 일컫는 신조어 ‘다거다(大哥大)’가 유행했다. 중국에서 ‘다거(大哥)’는 ‘큰 형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거다(大哥大)’는 개혁개방 이후 부유층을 부르는 데서 유래했다.

90년대 중국에서는 휴대폰을 일컫는 ‘다거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 1992년 덩샤오핑 ‘남순강화’

남순강화(南巡講話)는 덩샤오핑이 남부 지역을 순회하며 개혁개방 심화를 촉구한 일련의 연설이다. 중국 일각에서는 남순강화를 두고 ‘중국 제2의 개혁개방’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은 소강국면에 접어들었고 보수파의 발언권은 나날이 커졌다. 이에 덩샤오핑은 1992년 1월말부터 2월초까지 우한(武漢), 상하이(上海),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등 중국 남부 지역에 위치한 경제특구를 차례로 방문해 개혁개방 확대를 촉구했다.

남순강화를 계기로 중국 경제는 다시 한번 고도 성장기에 진입했다. 1989년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4.1%까지 떨어졌으나, 1992년 14.2%, 1993년 13.9%로 상승했다.

1992년 덩샤오핑은 중국 남부 지역을 순회하며 개혁개방 확대를 촉구했다.

◆ 1993년 양안 첫 공식 회담

1990년 이후 중국의 양안(兩岸)관계는 빠른 속도로 개선됐다.

1991년 민간교류단체인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가 설립되면서 두 지역간의 교류 창구가 만들어졌고, 1992년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이 ‘92공식(‘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에 합의했다.

1993년 4월 해협회와 해기회는 싱가포르에서 첫 회담을 개최했다. 비록 민간 교류 창구간의 만남이긴 하나, 신중국 설립 후 양안간 최초 공식 회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 양안 관계: 국공 내전을 통해 분리된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대만)의 관계

◆ 1994년 삼협공정 개시

1994년 중국은 창장(長江, 장강) 중상류 일대 대형 수리시설을 건설하는 ‘삼협공정’에 착수했다. 삼협공정은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수력 발전사업으로 2009년에야 비로소 완공했다.

삼협공정은 프로젝트 구상 초기만 해도 생태계ㆍ문화유적 파괴 등 우려가 제기되며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홍수방지, 수력발전, 방류량 조절 등 긍정적 역할이 부각되며 공사가 진행될 수 있었다.

1994년 중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수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인 ‘삼협공정’에 착수했다.

◆ 1995년 인터넷시대 진입

1995년을 기점으로 중국은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에 진입했다. 90년대 후반 왕이(網易), 신랑(新浪) 등 중국 1세대 IT 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百度) 등이 바톤을 이어 받아 중국 인터넷 산업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오늘날 중국은 인터넷 이용자 수 7억5000만명, 모바일 인터넷 이용자 수 7억여명의 인터넷 대국으로 성장했다. 중국은 인터넷 산업 발전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5G 통신 등 신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글로벌 4차산업혁명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 1997년 홍콩반환과 덩샤오핑 사망

1997년 7월 영국령 식민지 홍콩이 150여년만에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됐다.

‘영국령 홍콩’은 오랜 기간 중국인 가슴 속에 큰 상처로 남아 있었다. 중국은 1차 아편전쟁 패배로 1842년 홍콩을 영국에 영구 할양한다는데 합의했고, 1860년 2차 아편전쟁의 패배로 영국령 홍콩 범위는 카오룽(구룡)반도까지 확장됐다.

지금의 홍콩 범위는 1898년 영국이 홍콩을 99년간 임차하는 협정을 맺으면서 확정됐다. 임차 기간이 끝나가던 1980년대 영국 마가렛 대처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고 1984년 양국은 홍콩 반환에 합의했다. 홍콩이 중국의 품으로 돌아오던 날 당시 중국 지도자였던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은 ‘100년의 치욕을 씻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일국양제’라는 묘안으로 마가렛 대처 총리를 설득하고 홍콩 반환을 이끌어냈던 덩샤오핑은 홍콩 반환을 5개월 앞둔 1997년 2월 19일 베이징에서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97년 6월 30일, 홍콩 컨벤션 센터에서 홍콩 주권 반환 행사가 진행됐다.

◆ 1999년 마카오 반환

1999년 12월 20일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442년만에 중국에 반환하면서 마카오 차이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1997년 영국이 홍콩을 반환한 이후 1999년 포르투갈이 마카오에 대한 통치권을 중국에 이양하면서 서구 열강의 아시아 식민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 2001년 중국 WTO 가입

2001년 12월 중국은 143번째 회원국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이로써 중국은 반세기만에 국제 무대로 완전히 복귀, 세계 경제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중국이 WTO에 최종 가입하기까지는 무려 15년의 시간이 걸렸다. 중국에 대한 개발도상국 지위 부여 등 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간의 의견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

미중 양측은 가입 초기 중국이 개발도상국 특혜를 일부 누리는 한편, 향후 경제 성장에 따라 점진적으로 개방을 확대한다는데 합의하면서 극적 타결을 볼 수 있었다.

WTO 가입 이후 2000년대 초반 중국은 두자리 수에 육박하는 고성장세를 이어갔으며 2010년에는 아시아 최강국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등극했다.

◆ 2002년 야오밍, 1순위 NBA 휴스턴 입단

2002년 중국 농구 영웅 야오밍(姚明)이 아시아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미국프로농구(NBA)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휴스턴에 입단하며 중국 농구계 이정표를 남겼다.

이후 야오밍은 NBA 올스타 8차례 선정, 2016년 NBA 농구 명예 전당 등극 등 수많은 진기록을 세우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걸어다니는 만리장성’ 야오밍은 NBA에서 가장 성공한 중국 농구 선수로 꼽힌다.

◆ 2002년 남수북조 착공

2002년 중국은 수자원 확보 프로젝트인 ‘남수북조(南水北調)’를 본격 시행했다.

'남수북조'란 중국 남부의 풍부한 담수 자원을 물 부족 지역인 북부로 끌어오는 사업으로, 중국 양쯔강(揚子江) 3개 지점에 운하를 뚫어 베이징, 톈진(天津), 산둥(山東)성 등 황하(黃河) 유역으로 물을 보내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신중국 설립 이후 중국 최대 토목 공사로 평가되는 남수북조 사업에는 총 620억달러(약 67조원) 자금이 투입됐으며 2050년 완공된다.

<3편으로 이어짐>

 

[뉴스핌 Newspim] 황세원 기자 (mshwangsw@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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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민주 지지율 고공행진, 野 19%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소폭 하락했으나, 60% 중반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정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이 46%로 국민의힘에 두 배 이상 앞섰다.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국민의힘의 전통적인 강세 지역인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에서도 민주당이 약진하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TK에서 국민의힘과 동률을 기록했고, PK에서는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섰다.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TK와 PK의 수성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청와대 본관에서 11회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주가 상승·부동산 정책 긍정…고환율·민생 어려움 부정 요인  한국갤럽이 지난 24~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에게 이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일주일 전 조사에 비해 2%포인트(p) 하락한 65%로 나타났다.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24%로 1%p 줄었다. 10%는 의견을 유보했다. 긍정 평가 요인으로는 '경제·민생'(17%)과 '외교'·'부동산 정책'(이상 8%)이 꼽혔다. 부정 평가 요소로는 '경제·민생·고환율'(17%)과 '외교'· '부동산 정책'· '도덕성 문제·자격 미달'(이상 7%)을 지적했다. 경제·민생과 부동산 정책은 긍정과 부정 평가의 주요 요인으로 동시에 꼽혔다. 평가가 지지층과 반대층으로 갈린 것이다. 주가 상승과 이 대통령의 다주택자와의 전쟁이 긍정 요인이었던 반면 고환율과 민생의 어려움은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3∼25일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이날 공개한 전국지표조사(NBS)도 비슷한 흐름이었다. NBS에선 지지율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대통령 지지율은 직전 조사보다 2%p 오른 69%였다. 부정 평가 응답은 22%로, 지난 조사보다 2%p 하락했다. 전 지역에서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높았으며, 대구·경북(49%)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긍정 평가가 50%를 넘겼고, 20대 이하(46%)를 제외한 전 연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PK 민주당 35% vs 국힘 26%…서울 3배 차이    갤럽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이 46%로 국민의힘(19%)을 압도했다. 민주당은 전주와 동일했고 국민의힘은 1%p 떨어졌다. 이어 개혁신당(3%), 조국혁신당(2%)과 진보당(1%) 순이었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이 국민의힘보다 높은 27%였다. 특히 TK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27%로 동률을 기록했다. 반면 PK에서는 민주당(35%)이 국민의힘(26%)을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섰다. 진보층의 77%가 민주당을 지지한 반면 보수층의 국민의힘 지지는 50%에 머물렀다. 보수층 절반만 지지한다는 의미다. 중도층에서는 민주당 44%, 국민의힘 13%, 무당층 31%였다. 나머지 지역은 민주당이 크게 앞섰다. 서울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45%, 15%로 세 배 차였고, 인천·경기(49%, 17%), 대전·세종·충청(49%, 22%), 광주·전라(69%, 5%) 등이었다. 갤럽 조사는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한 전화 조사원 인터뷰(CATI) 방식으로 진행됐으며(응답률 12.6%)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사진=뉴스핌 DB] ◆NBS 조사선 李지지율 70% 육박…중도층 격차 커   NBS도 비슷한 흐름이었다. 민주당 46%, 국민의힘 18%였다. 지난 2주 전 조사와 비교해 민주당은 3%p, 국민의힘은 1%p 상승했다.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은 각각 2%, 진보당은 1%를 차지했다. 특히 중도층에서는 민주당이 41%로 국민의힘(11%)과의 격차가 더 컸다. 민주당은 전 연령에서 국민의힘에 앞섰고, TK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국민의힘에 우위를 보였다. TK는 민주당 25%, 국민의힘 26%, 개혁신당 4%, 진보당 2%, 조국혁신당 1% 순이었고, '그 외 다른 정당'은 3%, '지지하는 정당 없음'은 38%였다. TK 지지율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팽팽했다. 특히 이 지역의 무당층이 38%에 달한 것은 국민의힘에 실망한 합리적 보수층과 중도층이 대거 중간 지대로 이동한 영향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윤어게인 노선 갈등과 공천 내홍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NBS는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다. 응답률은 21.3%였다. ◆이대로라면 민주당 지방선거 압승…국힘 출구 못 찾아  두 조사에서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압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60% 중반대의 지지율을 이어갔고, 민주당의 지지율(46%)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0%에 미치지 못했다. 윤어게인 노선 갈등과 공천 내홍이 결정타였다. 이대로라면 민주당의 지방선거 압승이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전통적인 강세 지역인 TK와 PK 수성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로 유력한 김부겸 전 총리가 국민의힘의 모든 경선 후보에 앞선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총체적 위기 상황을 맞은 국민의힘은 여전히 출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leejc@newspim.com 2026-03-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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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 탄 차량 전복·체포 [서울=뉴스핌] 이웅희 기자·한지용 인턴기자 =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50)가 또 '음주 또는 약물 운전'(DUI·Driving Under the Influence) 혐의에 연루돼 체포됐다.  미국 ABC 방송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우즈는 28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틴 카운티 주피터 아일랜드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사고를 일으킨 뒤 경찰에 체포돼 구금됐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타이거 우즈. [사진=로이터] 2026.03.19 psoq1337@newspim.com 사고는 이날 오후 2시를 넘긴 시점에 발생했다. 우즈가 몰던 차량은 왕복 2차선 도로에서 다른 차량과 충돌한 뒤 전복된 것으로 전해졌다. 우즈는 큰 부상을 입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우즈의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음주 또는 약물 영향 아래 운전을 했다고 의심했고, 곧바로 체포했다. 현재까지 우즈가 술에 취한 상태였는지, 약물 복용에 따른 것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우즈의 교통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21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차량 전복 사고를 당해 다리 등에 중상을 입고 장기간 재활 치료를 받은 바 있다. 당시 경찰은 과속과 운전 부주의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으며, 음주나 약물 정황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타이거 우즈. [사진=로이터] 또한 우즈는 2017년에도 DUI 혐의로 체포된 전력이 있다. 당시 그는 도로변에 정차된 차량 운전석에서 잠든 채 발견됐으며, 진통제 복용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이후 법정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벌금과 보호관찰, 사회봉사 등의 처분을 받았다. 우즈는 지난해 9월 일곱 번째 허리 수술을 받은 후 선수 생활 연장을 준비해 왔다. 우즈는 다음달 9~12일 열리는 마스터스 출전 여부를 아직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음해 열리는 아일랜드 라이더 컵의 미국 단장직 승낙 여부도 이달말까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football1229@newspim.com 2026-03-2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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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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