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라이프

속보

더보기

[이명훈의 4색 여행기] 서구 시원 문명에의 입구 크레타

기사입력 : 2016년02월25일 16:45

최종수정 : 2016년02월25일 16:45

크레타의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배가 고팠다. 부둣가 저쪽에서 생선 냄새가 흘러오고 있었다. 생선 요리 식당이 보였다. 그리로 걸어가 허기진 배를 때웠다.
택시를 잡아 타고 시내로 달려가다보니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묘지 안내판이 보였다. 어둡지만 않다면 가보고 싶은데 마음을 접어야 했다.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의 무덤이 지키고 있어서인지 크레타는 내 마음을 한결 다사롭게 감싸주고 있었다. 청정한 공기에 어둠은 점점 더 깊어져가고 있었고 서구의 시원 문명권에 들어섰다는 기분이 가슴을 싸아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모텔을 골라 여장을 풀고는 푹 잔 다음 날엔 크노소스 궁으로 향했다.

(이진성의 <그리스 신화의 이해>에서 퍼옴)

크레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이라클리온에서 십 여리 밖에 위치한 이 궁을 발굴한 에반스라는 영국의 고고학자가 콘크리이트로 부분적으로 보완한 것이 못마땅했지만 4000 여 년 남짓 전의 아득한 문명을 간직한 궁전은 침묵 속에 묵직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필 육지 아닌 섬에서 서구의 시원 문명이 싹텄을까.

그러나 이 말은 모순일지도 모른다. 크레타 문명지가 발굴된 후로 다양한 고고학적, 인문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 섬에서 독자적으로 문명이 발아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이전에 이미 문명의 빛을 발하고 있던 이집트나 오리엔트 지역의 문명들과 크레타는 접촉과 교류가 있었다. 이 섬과 육지를 오갈 정도의 선박 기술은 당시에도 풍부하게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이 서구 문명의 시원적 성격이 있다는 말은 부분적으론 맞고 부분적으론 어폐가 생기게 된다. 이집트와 오리엔트까지 가 닿아야 하는 것이다. 서구 문명의 뿌리는 이처럼 근원이라고 여겨지던 곳에서 더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고 또 올라간다. 그 종착지가 어딘가를 알려면 이집트 문명과 오리엔트 문명 중에 초기에 특히 강렬했다고 하는 수메르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그 지점에서 또 깊어지는 면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을 서구의 시원 문명이라고 부르기 보단 시원 문명에의 입구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겠다.

이에 대해 서구인들은 자존심이 상할지 모른다. 그들은 그리이스 문명에서 기원이 더 아득한 과거로 밀려갈수록 점점 불안해했다. 고고학의 발전적 성취는 서구인들의 그런 불안감과 일치하는 면도 있다. 물론 열린 마음의 서구인들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고 닫힌 마음의 소유자들에게 국한된 말이다.
그러나 아전인수의 마음으로 역사건 문명이건 진단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정확한 사실의 바탕 위에 진실의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이 시대에 걸맞는 인식일 것이다. 크레타를 서구의 시원 문명에의 입구라고 부르는 것은 그런 면에서 타당한 빛을 낼 것이다.

(이진성의 <그리스 신화의 이해>에서 퍼옴)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크노소스 궁전의 지하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미궁을 상기시키는 듯한 곳 앞에 서니 기분이 아득해진다.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떠올라서였다.
그리이스 신화에 따르면 황소로 변한 제우스가 에우로페라는 여자를 크레타 섬으로 납치한다. 둘 사이에 아들이 생겨나는데 그가 바로 미노아 문명의 전설적인 왕 미노스이다. 미노스는 장성해 왕위를 놓고 다투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청한다. 황소를 한 마리 보내달라고. 신께 제물로 되돌려 드리겠다고. 포세이돈이 받아들여 황소를 한 마리 보냈고 그 덕에 미노스는 왕이 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진노한 포세이돈이 복수한다. 미노스의 왕비에게 그 황소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둘 사이에 괴물이 태어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미노타우로스이다.
미노스 왕은 고민 끝에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려운 미궁을 만들도록 해 미노타우로스는 그 안에 가둔다. 그 괴물을 죽인 영웅이 바로 아테네의 테세우스이다. 미노타우로스에게 아테네의 처녀 총각들이 공물로 바쳐지는데 그 사이에 자발적으로 섞인다. 크레타에 가서 그 괴물을 처치하고 오겠다고 나선 그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의 사랑을 받는다. 그녀가 실 한 꾸러미를 주면서 그것을 풀어가며 미궁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그 실을 따라 나오라고 일러준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그 실을 따라 미궁을 빠져나온다.

<그리스 신화의 이해>의 저자 이진성에 의하면 이 신화의 밑바탕엔 크레타 문명이 미케네 문명에게 지배당하는 역사적 사건이 들어있다고 암시한다. 즉 미케네 문명이 기원전 1500년경부터 1400년 경까지 크레타 섬을 지배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는 이야기 속에 그런 사실이 우회적으로 들어있다는 것이다.
미노스의 왕 역시 제우스의 아들이며 테세우스가 승리하게 된 이유를 미노스의 딸의 배신으로 만든 것도 어쩌면 전승자인 미케네 문명의 신화 창조자의 날조일지도 모른다. 미노스의 부인이 짐승과 불륜을 맺고 괴물을 낳았다는 얘기도 미노스 왕실에 대한 고의적 험담을 은밀히 숨겨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점은 미케네가 트로이에 대해 승리한 이야기가 배경인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에서도 은근히 숨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 문명은 그렇게 무너지면서 신화적으로도 악의를 담당한채 뒷 문명의 재료가 된다. 지금 서구 문명의 바탕엔 그처럼 한때 화려하게 타올랐던 문명들의 아스라한 재들이 깔려 있다. 미케네 문명에 의해 지배당한 크레타 섬은 미케네와 그 이후의 그리스 문명에게 진귀한 불씨를 전해주고는 쇠퇴해 파란만장한 변화를 겪게 된다. 로마에 정복되어 속주가 되었다가 그 후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된다. 십자군 전쟁 땐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는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자 더불어 정복 당해 섬을 채웠던 교회와 수도원들이 모스크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격심한 굴곡들을 겪으며 그리이스 영토가 되어선 전설상으로 있던 크노소스 궁전의 발굴에 의해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빛을 발하는 것이다.

‘미노스 문명은 연속된 유럽의 첫 고리’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그 첫 고리는 과연 또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는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앞으로의 고고학적 탐구를 통해 계속 더 이전으로 시간 여행을 할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그 의미 있는 여행에 눈과 귀를 감지 않고 따라가려 한다. 지평선을 넘고 또 넘어야 진정한 시원이라고 밝혀질 아찔한 감각에 닿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오랜 여행을 거쳐오면서 서구의 시원격인 문명 앞에 서서 나는 이제야 시작하는 느낌을 받는다. 에메럴드 빛 에게 해에 둘러싸인, 낮은 구릉 위의 크노소스 궁의 빛 바랜 잔해들이 비밀의 문을 더 열어 보라는듯 빛나고 있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7월 1일 출석하라" 재통보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내란 특별검사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오는 7월 1일 오전 9시에 2차 대면조사를 위해 출석해 달라고 통보했다. 박지영 내란 특검보는 29일 저녁 서울고검 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소환 일정과 관련해 윤 전 대통령 측 의견을 접수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해 7월 1일 오전 9시에 출석하라고 통지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29일 새벽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청사에 마련된 내란특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2025.06.29 leehs@newspim.com 박 특검보는 "(소환 일정) 협의는 합의가 아니"라며 "결정은 수사 주체가 하는 것이고 윤 전 대통령 측 의견을 접수한 뒤 특검의 수사 일정이나 여러 필요성 등을 고려해 출석 일자를 정해서 통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변호인단 측의 반응은 아직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 측에 오는 30일 출석하라고 통보했으나, 윤 전 대통령 측은 방어권 보장 등을 이유로 오는 7월 3일 이후로 조사 일정을 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특검팀이 당초 날짜보다 하루 늦은 7월 1일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재통보한 것이다. 특검팀은 경찰청에 수사방해 사건 전담 경찰관 파견을 요청했다고도 밝혔다. 윤 전 대통령 측이 지난 28일 첫 대면조사에서 박창환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장(총경) 교체를 요구하며 조사를 거부한 행위가 특검법상 수사방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특검팀은 판단하고 있다.  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이) 변론의 영역을 넘어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이는 특검법에서 정한 수사방해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며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 특검은 수사방해 사건을 전담할 경찰관 3명을 경찰청에 파견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특검법 수사 대상에 보면 일련의 수사 방해나 재판 방해도 수사의 대상이 돼 있다"며 7월 1일 2차 대면조사에서도 박 총경이 계속 조사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hong90@newspim.com 2025-06-29 22:14
사진
"주담대 6억 이상은 안됩니다"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이재명 정부가 출범 약 한 달 만에 초고강도 부동산 대출 규제 정책을 내놓은 가운데 수도권 집값 상승세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된다. 가계 대출 총량을 절반으로 확 조이고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6억원으로 일괄 제한하는 방향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7일 관계기관 합동 '긴급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고 대출 규제를 골자로 한 수도권 중심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에 따르면 지난 28일부터 총액 한도가 없는 주담대를 수도권과 규제지역(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에 한해 최대 6억원으로 제한된다. 고가 주택 구입에 대출을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창구 모습. [사진= 뉴스핌DB] 다주택자에 대한 신규 주담대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0%를 적용해 전면 금지하며 1주택자 갈아타기 주담대 규제도 강화된다. 기존에는 보유 주택을 2년 이내 처분하기로 약정하면 주담대를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6개월로 처분 기간이 줄었다. 위반 시에는 대출금 즉시 회수되고 향후 3년간 주택 관련 대출이 제한된다. 생애 최초 주택구입 목적의 LTV도 기존 80%에서 70%로 줄어든다. LTV는 자산 담보가치에 대한 대출 비율을 뜻한다. 7월부터는 금융권 자체 대출과 정책대출의 총량 목표를 당초 계획 대비 50% 수준으로 감축하며 정책 대출은 연간 공급 계획 대비 25% 줄인다. 은행의 대출 가능 총량이 줄어드는 것이다. 당초 7월 시행 예정이었던 스트레스 DSR(총부채상환비율) 3단계 조치에 이어 이번 초강도 대출규제가 중첩되면서 주택 구매를 위한 대출문턱은 더 높아지게 된다. 예컨대 스트레스 DSR 3단계만 적용 시 연봉 1억원 직장인이 만기 30년, 원리금균등상환, 대출금리 4%의 조건으로 수도권 지역에서 생애 최초 주택구입 목적의 변동 주택대출을 받을 때 대출한도는 5억8700만원으로 기존 2단계 대비 2000만원가량 줄어든다. 또 수도권 가산금리 1.5%P가 더해져 금리는 5.5%가 적용된다. 여기에 7월부터 시행하는 정부의 고강도 대출 정책인 '가계대출 관리 강화 방안'이 더해지면서 대출한도는 이보다 더 줄어들 전망이다.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 목표가 기존 대비 50%가량 줄면 은행들은 대출한도를 추가로 10~30% 감액할 것으로 예상된다. LTV도 기존 80%에서 70%로 줄기 때문에 집값에 따른 대출금도 축소된다. 또 총량 소진 시 대출 자체가 거절될 수 있다. 연봉 1억원 이상 고소득자들의 주택구매도 어려워진다. 수도권 주담대 대출의 최대한도가 6억원으로 일괄 제한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실제 대출금액은 6억원 한도 내에서 LTV(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비율 등에 따라 조정된다. 이번 규제는 토요일인 지난 28일부터 시행이 본격화됐다. 발표 당일인 27일까지 금융회사가 전산상 등록을 통해 대출 신청접수를 완료하거나 주택 매매계약을 체결, 계약금을 이미 납부한 경우 종전규정이 적용된다. 정부가 초고강도 규제에 나선 이유는 과열된 부동산 열풍 및 가계대출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이달 들어 지난 19일까지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말 대비 4조 원 늘어난 752조 74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일당 3328억 원이 늘어난 것으로 지난해 8월 영업일당 평균 4584억원이 늘어난 이후로 가장 큰 폭의 증가세다.  정부는 이번 규제로 올해 하반기 10조원, 연간으로는 20조원 가량의 가계대출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과열된 부동산 열기를 잠재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각에선 강도 높은 대출 규제로 인해 청년들의 주택 구매 여력을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30세대 무주택자의 '주거 사다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romeok@newspim.com 2025-06-29 08:0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