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인생의 가을, 중년은 아름다워라
- 느림의 미학 2
사람들이 걷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건강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서도 아무리 비싸고 좋은 약이나 음식보다 걷는 것이 더 건강에 좋다고 했다. 두 번째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다. 마음을 평안하게 하기 위해 걷기처럼 좋은 운동이 없기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여러 가지 사물을 만나게 되고, 결국은 내가 나를 만나는 것이 걷기의 매력이다. 세 번째는 빠른 것에 익숙해진 세상에서 느리게 걸으며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삶의 패턴 자체가 느려지고 있다. 얼마 전부터 지구촌 곳곳에 ‘슬로시티(slow city)’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 운동의 취지는 빠른 속도와 생산성만을 강요하는 빠른 사회(Fast City)에서 벗어나 자연· 환경· 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여유 있고 즐겁게 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전통 보존, 지역민 중심, 생태 주의 등 이른바 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
원래 이 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의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느린 마을 만들기 운동’으로 시작되었는데 이탈리아식 표기는 ‘치타슬로(cittaslow)’이다. 이 운동이 처음 시작될 무렵에는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자연환경과 전통을 지키고, 지역민이 주체가 돼 자연을 느끼면서 그 지역의 먹을거리와 독특한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 점차 느리게 걷고 느리게 생각하고 느리게 생활하자는 운동으로 확대되어갔다. 이 슬로시티 운동에 2010년 현재 유럽을 비롯한 20개국 132개 도시가 가입되어 있다.
슬로시티 가입조건은 인구가 5만 명 이하이고, 도시와 주변 환경을 고려한 환경정책 실시, 유기농 식품의 생산과 소비, 전통 음식과 문화 보존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구체적 사항으로 친환경적 에너지 개발, 차량통행 제한 및 자전거 이용, 나무 심기, 패스트푸드 추방 등의 실천이다. 우리나라의 슬로시티는 아시아 최초로 지정된 전남 4개 지역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 마을, 장흥군 유치면,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를 포함해 총 12곳이 있다.
한편, 이 ‘느림의 미학’은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는 데에도 통한다. 사연을 적은 우편물을 넣으면 6개월, 1년 뒤 적어둔 주소로 배달해 주는 서비스인 ‘느린 우체통’이 그것이다. 2009년 5월 인천 서구 영종대교기념관에 처음 생긴 이 느린 우체통은 이후 잇달아 설치됐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는 이 소중한 시간을 느린 우체통으로 천천히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느린 우체통은 무엇이든 빠르고 정확해야만 하는 요즘 시대에 기다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도록 하기위해 고안된 우편서비스이다. 1년 뒤 받아보는 편지. 1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름다운 감성이 묻어있는 추억으로, 소중한 이에 대한 깊은 사랑을 전한다. 애틋한 마음으로 잊혀져가는 기억과 시간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의 풋풋한 사랑 고백, 무뚝뚝한 남편이 차마 말로 하지 못하는 아내에 대한 사랑, 엄마가 뱃속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 1년 후 자신에게 보내는 격려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따뜻한 향기로 우리를 미소 짓게 할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정성들여 편지를 써서 느린 우체통에 담아 본다. 보내는 이의 소중한 마음을 담은 그 편지를 당신은 시간이 꽤 흐른 어느 날 뜻하지 않게도 받아볼 수가 있을 것이다.
바쁜 삶, 빠른 세상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경쟁이라는 크나 큰 파도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소용돌이에 휩쓸리기 보다는 지금 현재의 행복을 위해 한 발자국씩 걸어가 보라! 조금 느려질 지라도 나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마음, 외롭고 슬픈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마음으로 걷는 발자국은 높은 파도에 삼켜지지 않고 오히려 파도를 이겨내는 단단한 대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빠르게 달릴 때는 느끼지 못한 더 넓고도 큰 세상을 만나고 또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 이철환 프로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초빙위원
-현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재직)
*저서- 과천청사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선택, 14일간의 경제여행, 14일간의 (글로벌)금융여행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