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상황에서 그런 아름다운 말을 남길 수 있을까. 내게 혹시나 부담이나 죄의식을 남겨줄까 조심하며 맑게 걸러진 톤으로 잔잔하게 얘기하던 현주......그때의 그녀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런 불미스런 상황 속에서 그토록 정제된 언어가 나온다는 것이 내 경험 속에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현주에 대한 깊은 신뢰와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흡인력이 내 청춘의 옷자락을 자연스럽게 이끌어갔다......그러나,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아내 가슴 속에 흘러간 감정이.
내 두 번째 사랑은 무겁게 얹힌 체증 같다고 할까, 한두 마디로 말할 수 없는 굉장히 복잡하고 착잡한 무의식을 이루고 있었다. 혜진과 헤어진 후 안암동 지하 교회에서 새롭게 길들여지며 눈을 떠 전위적인 전도사로 변신한 사실은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렇게 삼 년 이상 지나서였다. 대학원에 진학해 있을 때였다. 생각도 못한 변화들을 겪으면서도 사랑에는 오래 닫혀 있었다.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해저에 침몰한 배처럼,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굳게 닫혀 있었다. 더구나 순수한 영적 진리 운동에 심취해있던 나로서 육체적 사랑은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내 몸이 교회이며 곧 성전이었다. 진리와 성령 외엔 어떤 반입물도 허용되지 않는 의식의 고결과 청정만이 절대적이었던 나로서 육체적 사랑, 그것도 교회 밖의 이방인 여자와의 관계는 파계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계기로 해서 내가 그녀에게 무너지듯 빠져들고 그녀가 내게 빠져들었는지,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 자제에 자제를 거듭하는 사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뜨거움의 봇물이 그녀와 내 몸을 동시에 관통한 것 정도로만 해두자.
천사가 자기 위치를 벗어나는 것이 타락이며, 곧 사탄이 되는 거라는 믿음 체계로 이미 채워진 나로서 그 절대적 믿음 체계가 완전히 파괴되는 방향으로의 격정 속에 얼마나 극적이고 혼란스런 감정의 격류가 흘러갔는지는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신과, 그가 이 시대에 보낸 자 곧 내 영혼의 스승에 대한 죄송과 자책. 내가 바닥 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공포와 그녀에 대한 목마른 갈증과 죄의식. 내 안에, 그녀에게 원초적으로 이해시킬 수 없는 이질성이 있음에 대한 괴로움. 그로 인해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사랑을 사이에 둔 그녀와 나 사이의 애절한 갈구와 눈물.
그럴수록 아리게, 감미롭게 뒤섞이던 육체. 분열되어 버릴 듯한 고통. 신앙과 사랑 사이의 양립 불가능 속에 가슴을 쥐어뜯던 나날. 그리고 그녀와 나 사이에 아로새겨진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아름다운 화인(火印)과 눈물뿐인 이별.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민다나오로의 떠남...
아담하고 귀여운 여자. 소박한 불심을 지닌, 총명하고 정이 많은 여자. G여대에서 사회학 석사 코스를 밟으며 진취적인 꿈을 꾸던. 비록 길진 않았지만, 불가해하게 흘러간 그림같은 불꽃 사랑. 그녀와의 속화된 사랑이 그 이후 내 절대적인 신앙관을 상대화시켜준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되었지만, 그러한 값진 선물을 내게 안겨주고도 정작 자신은 이별의 이유도 정확히 모른 채, 종교의 멍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나와 아프게 헤어져야 했던 것이다.
이런 복잡한 무의식의 침전물로 인해 현주와 가까워질수록 일종의 도덕적 채무 같은 것을 강하게 느끼곤 했는데 그 모든 채무를 나이도 적은 발랄한 그녀가, 순정과 고통 속에 포용하며 나를 가볍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결혼 후에도 아내는 밝은 성격 그대로 집을 화사하게 꾸며나갔다. 아침마다 창을 열고 밤낮으로 방을 닦으며, 항상 청결하게 해놓았다. 내가 동료들과 어울려 밤늦도록 술을 푸다가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 비틀거리며 들어와도 별 짜증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봄이면 화병에 개나리꽃이 꽂히고, 식탁의 탁자보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상과 무늬가 어울리도록 갈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