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변광대한 우주를 어떻게 일주일만에 뚝딱 만들 수가 있냐는 것. 그렇다고 천지창조를 그냥 신화라고 얼버무린다면 성경이 어떻게 진리가 될 수 있냐는 것이다. 하루라는 것이 24시간이란 개념이 아니고, 하나의 단계라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첫째 날과 둘째 날, 둘째 날과 셋째 날...그 각각의 단계들과 또 그것들 사이엔 어마어마한 우주적 시간이 가능하게 된다. 이런 간단한 해석 하나로도, 답답한 교리와 호킹의 빅뱅 사이에 방황하던 물리학도의 갈증을 시원스레 풀어줌과 동시에 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 무한한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전복적인 새로움들은 열정을 토해내는 랍비의 입에서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세상을 불로 심판한다고 할 때의 불도 불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 하나님이 인간과 세상을 불로 태워 죽이겠냐는 것이다. 그때의 불은 말씀의 불, 곧 시대시대에 맞게 떨어지는 진리라는 것이다.
모세 때는 모세의 불. 예수 때는 예수의 불처럼. 때가 이르면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는 구름도 마찬가지였다. 뭉게구름이나 양떼구름, 새털구름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는 계시는 신약뿐 아니라 구약에도 기록되어 있다며 구약의 해당 귀절들을 일일이 짚어주었다. 이같은 철저한 검증은 과학적인 검토와 함께 기본이었기에 신도들의 믿음은 갈수록 깊어지고 절대화되어갔다.
즉 구약에도 메시야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계시되어 있는데, 그 계시가 실제 어떻게 이루어졌냐는 것이다. 구름이란 것은 물에서 정화되어 올라간 것, 곧 세속의 중생이라는 오염된 물에서 정화된 깨끗한 무리, 진리를 따르며 마음을 깨끗하게 닦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구름은 곧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 구름, 즉 베드로나 야고보, 빌립보 같은 사도, 마음이 가난한 무리들을 타고 예수도 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올 재림주도 사람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공중휴거라는, 당시 매스컴을 오르내리고 사회 문제를 일으켰던 골치 아픈 사건도 그런 식으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공중이라는 것이 저 허공에 뜬 공중이 아니라는 것. 지구에서 볼 때 허공이 공중이지, 더 큰 차원, 우주에서 볼 땐 지구 자체가 공중이라는 것이다.
휴거라는 것도 붕붕 날아오르는 물리적인 들림이 아니라, 영적인 들림 즉 깨달음에 의한 인식의 향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중휴거의 참뜻은, 지구를 불로 태워버리는 심판 일에 공중으로 붕붕 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지구라는 공중에서, 이 시대에 떨어진 진리의 불로 깨달음을 얻어 영적인 들림을 이뤄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천 년 전 예수도 갈릴리 바닷가나 사마리아라는 실제의 땅에서, 진리의 불을 전파함으로써 깨우침과 구원을 열어나갔듯이. 그런 것을 모르고 메시야가 하늘에서 올 줄만 알고 공중만 바라보던 구약의 유대인들, 예수가 메시야로 온지 이천 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 진실을 모르는채 허공만 바라보는 유대인들은 참으로 무지할 뿐이며, 지금의 종교판도 그때와 똑같은 엄청난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간담을 서늘케 하면서도 뜨거운 충격을 주는 말씀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라는 말도 허구하는 것이다. 아담이 기껏해야 육천 년 전 인물인데 그러면 몇만 년 전에 실재했던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들은 다 무엇이란 말이냐.
이런 생물학적, 고고학적 발견을 무시한 신학은 죽은 신학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아담은 누구냐, 인류의 조상이 아닌, 하나님 신앙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드디어 인류 역사에 개입을 시작해서 생기를 불어넣어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한 최초의 선지자라는 것이다. 당연히 아담의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성경에는 그런 실제 상황들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