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 아침 8시 반, 사무실에서
아침 일곱 시 이십 분. 경혜가 막무가내로 투정을 부린다.
"나비 무늬 러닝 줘"
아무리 찾아도 없다. 고집불통이라 다른 옷은 입지 않고, 계속 운다.
“아빠가 회사 끝나고 집에 올 때, 인형 사줄게. 대신, 이거 입어.”
“나, 유치원 안가”
시간이 흐른다. 여덟 시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애 엄마는 어제도 안들어오고.....
경혜는 안방으로 들어가 아예 문을 잠가 버린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 사십 분.
“경혜야, 문 열어”
“싫어”
“바나나 먹을래?”
“싫어”
“어제 산 장난감 여기 있는데, 보여줄까?”
“어디에 있어?”
“문 열어봐”
“응”
문을 열려할 때, 주혜가 창을 통해 안방으로 기습하자, 도중하차이다. 경혜, 문을 열려다가 도로 꽝 닫고 또 운다. 막무가내의 울음 속에, 초조의 시간이 흐른다. 평소 같았으면 인내의 한계를 넘었을텐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어디에 길이 있을까.
“경혜야, 아빠 회사 간다. 주혜야, 가서 엘리베이터 눌러라”
주혜에게 눈짓으로 신호하니 통해서 주혜, 웃는다
“알았어, 아빠”
나가는 시늉한다. 경혜 잠잠하다. 시간이 더 지난다. 이젠 초조고 뭐고 없다. 즐거운 지혜가 발동한다. 회사 늦는다고 인생 지각 하나. 찰칵, 경혜가 살며시 자물쇠를 풀어놓는 소리가 들린다. 영특한 놈, 요, 요, 귀여운 놈. 문 열고 보니, 등 돌리고 앉아 있다.
“경혜야, 무슨 옷 입을까?”
경혜는 창틀에 뛰어올라 베란다 빨래줄에 걸린 옷가지 틈에서 나비 무늬 러닝을 찾아낸다.
“여기 있잖아!”
“경혜야, 어떻게 찾았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니, 지금 막 찾아냈니?”
주혜와 나는 박장대소하며 웃는다.
“엄마가 빨아논 건데,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근데, 왜 얘기 안했어?”
“그냥.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비밀! 이 얼마나 신선한 표현인가. 7시55분. 초조와 신경질의 시간이었을, 지금 생기 도는 이 순간에, ‘비밀’이란 경혜 말 속에 길이 보인다. 이 길을 내가 막아왔구나. 요 영특한 놈 머릿속에 재미있는 그림이 들어있었구나.
“봐, 시간 안 늦었지?”
경혜는 일곱 시 오십육 분을 가리키는 탁상시계를 들고 앙증맞게 웃는다. 행복하다. 귀여운 나의 딸. 그때부터 일사천리. 경혜는 베란다에서 바지, 양말, 잠바 다 찾아내어 스스로 챙겨 입고, 해맑게 웃는다. 몇 초만에 뚝닥 끝내고, 엘리베이터 누르고, 삼부녀가 숨가쁘게, 신나게 달려나온 길.
길이 있었구나. 요, 제 엄마를 꼭 빼다 닮은 놈. 내 저 길만 관심 갖고 따라왔던들 가정 천국이 따로 없는데. 내 그늘에 가린 그 속에, 길이 원래부터 있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