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들어오니 새벽 네 시. 아이들은 곱게 자고 있었다. 아내 곁에 누웠다. 아무 말도 서로 하지 않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술은 취하지도 않았고, 정신이 초롱초롱 빛났다.
가슴이 막막했다. 모든 것이 뒤집혀 있었다. 그간의 사연은 일일이 듣지 않아도 윤곽이 잡히는 듯했다. 속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곁에 누운 아내의 몸에 손을 대 보았다. 차가왔다. 대리석 같았다. 아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촉감을 대뇌로 잇는 신경이 다 끊겨버린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안의 생각이 밖으로 전혀 새 나오지 않았다.
가벼운 얘깃거리만 있어도 주체가 안 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술술 풀어가던 여자가 돌로 변해 버렸다. 휴즈 끊어진 두꺼비집 같았다. 이제 우리 집은 정전이 되는가. 아이들은 이 컴컴한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내 몸에서 살아나갈 기력이 다 빠져나간다.
“왜 이렇게 차가워” 한마디 쏘아부쳤더니, “응, 차가운 것 맞아” 냉정하게 되받아친다.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오열이 솟구쳐오른다. 참을 수 없는 통곡이 가슴 밑바닥을 째고 가파르게 치솟는다. 아내는 미동도, 숨소리도 없다.
그 방의 불길함과 적막, 숨이 끊어질듯한 통한을 못 견뎌 이불을 걷어차고 나온다. 벽장 서랍이 있는 내 방. 그리로 내달려 아픔을 죄며 책상에 앉는다. 오랜 습성처럼 내 손엔 독 오른 펜이 쥐어 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1997년은 산산조각 나는 해인가. 초조한 마음이 핸드폰의 주파수에 불을 지르고, 잠든 딸들 껴안으니 눈물이 난다. 아이들의 환경이 이 아빠의 척박한 가슴이라니.
아내는 애정의 덫에 걸려 있다. 내 고통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자니 가정이 비극으로 끝날까 두렵다. 아이들은 내 마음의 폐허 속에서도 날아야 할 새들이며 내 가슴이 난지도가 되어도 피어야 할 새싹들이다. 아버지, 어머니 가슴은 그래서 숯이 되었다.
질투도, 배신도, 분노도 다 말뿐이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극에서 극으로 흐른다. 아내는 왜 그리 흔들렸을까. 어디까지 자기를 내주고 얼마나 깊은 공감대를 나누었을까. 내 이해의 테두리 밖에서 소용돌이치는 혼돈과 불명료함의 격류. 아내는 어떤 마음일까. 몇 개월간 무슨 감정의 흔들림 속에 어디로 흘러갔는가. 확인할 수 없는 심정은 번민이요, 믿음을 찢는 갈퀴요, 나는 지천에 걸린 천처럼 흔들린다.
여기까지 써 내려갔을 때, 아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곁에 물끄러미 서 있는 아내를 덥석 껴안는다.
“왜 그랬어, 응?”
눈물이 줄줄 흐른다.
“이러지 마. 이러면 내가 더 힘들어져.”
새벽 다섯 시. 집을 나섰다.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불끈 발작처럼 일어서였다. 어제 저녁부터는 내 발길을 제어하지 못하겠다. 운동화를 되는대로 구겨 신고, 택시를 집어 탔다.
“세검정 갑시다.”
운전기사는 세검정 가는 길을 잘 몰랐다. 나도 꽤나 갔던 길이지만 길눈이 어두워 자신이 없었다. 갈림길에서 알려준다고 한 것이 잘못되어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오십이 넘어 보이는 기사는 말이 많았다. 알지도 못한 길로 가자고 했다느니,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느니 중얼거렸다.
“기분이 안 좋으니 조용히 갑시다.”
그는 남의 감정 따위에는 일절 관심 없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더 걸렸느니 미터계 요금보다 더 내라느니 연신 투덜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