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 씨 남편 되세요?"
"네, 그런데요"
"저는, 최영호의 아내 되는데요"
".........."
"둘이 만나는 거 아세요?"
상황이 좋지 않을 때였다. 걷잡을 수 없는 난기류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을 휘젓고 있었다. 거대한 음모의 회오리가 그렇잖아도 아픈 삶의 뿌리들을 들쑤시고 있었다. 태국의 바트화가 곤두박질치면서 비롯된 아시아 외환위기의 불똥. 도화선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번져 국내에도 불붙을 무렵, IMF라는 혹독한 겨울의 초입이었다.
곳곳에서 음울한 장송곡 소리가 들렸으며, 그런 불길한 징후는 내가 일하고 있는 증권시장에서 다른 어느 곳보다 뚜렷하게 드러났다. 아침 아홉시 개장과 더불어 주식시세는 하얀 배설물을 쏟아내며 폭락하기 시작했고, 브로커나 딜러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깨진 주식을 손절매해야 할지 무작정 들고 있어야 할지 난감해하는 날들이 연일 이어졌다.

누구나 당혹스런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같은 증권맨들을 포함한 샐러리맨들은 퇴근하기가 무섭게 생맥주집이나 포장마차에 둘러앉아 불안한 정보를 주고받거나 뭔가를 암중모색해야 했다. 명퇴자와 실업자, 신용불량자들이 부지기수로 늘면서 각종 자격증 취득과 부업 쪽으로 초조한 시선을 던졌다.
바닥 모를 암담함은 K 증권의 대리인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로선 이런 난관에 미리 몰린 탓에 작년부터 부업을 갖고 있었다. 네트워크 마케팅. 피라미드와 헷갈려 많은 잡음과 오해도 생겼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색다른 비즈니스의 매력을 지닌 묘한 것이었다. 출구가 막혀 방황하는 무수한 인력들이 이쪽으로도 몰려들었다.
평소엔 눈여겨 보지 않던 것인데 몰리면 새로운 눈이 떠지는 것인지 아내와 나는 이 엉뚱한 것에 사로잡혀 발을 들여놓았고 급기야는 과도하게 일을 벌여나갔다. 리쿠르팅(사업자 물색)을 위해 아내는 지방까지 가는 일이 생겼는데 서너달 전, 대학 때 써클 남자친구 하나가 진주에서 의사를 하는데 리쿠르팅 겸 만나보면 어떻겠냐고 농담 비슷하게 얘기를 건네왔다. 속으로 불편하긴 했지만 알아서 하라고 한 기억이 났다.
“둘 사이의 관계를 아세요?”
떨리던 목소리가 선을 긋듯 명료해졌다.
“관계라뇨?”
“모르셨어요?”
“모르다뇨?”
“지금 집에 없죠?”
“친구들 만난다고 나갔어요”
“제 남편하고 같이 있을 거예요. 세미나 참석한다고 오늘 서울에 가 있거든요”
전화를 끊자 어두컴컴한 실내에 불이 켜지듯 눈 앞이 돌연 환해졌다. 둘 사이가 첫사랑였던 것 모르세요? 그 말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