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펀드매니저 출신 개미, 시장 한축으로
[뉴스핌] 여의도에 때아닌 '매미' 열풍이 불고 있다. 매미는 펀드매니저 출신 개미투자자를 일컫는 신조어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이 불황에 시달리자 억대 연봉을 누리던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들도 자리를 지키기 어려워졌다. 이들이 여의도 고급 오피스텔에 둥지를 틀고 그동안 쌓아온 실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수십억~수백억원대의 자금을 굴리는 시장의 한 축으로 등장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몇년전 나타났던 투자자문사 설립 붐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뉴스핌은 매미의 탄생 배경과 그들의 영향력 등을 [매미의 시대]라는 기획을 통해 짚어보려 한다. <편집자주>[뉴스핌=이에라 기자] "5명이 S트레뉴빌딩에 모여 300억원 정도 굴렸습니다. 수익도 꽤 났죠. 평균 20~30% 정도요. 주위의 친한 애널리스트들을 통해 정보도 교환하고 혼자 직접 기업탐방에 나가기도 했어요. 증권사나 운용사 모두 어려워서 예전같이 인센티브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차라리 내가 굴려서 돈을 벌어보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아요."
불과 두달전까지 일명 '매미' 투자자로 활동했던 A씨의 전언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경력을 갖춘 30대 중반의 A씨는 1년 6개월간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 둥지를 틀고 '매미'의 삶을 살았다.
"아직도 주말에 골프치냐는 농담 섞인 얘기를 종종 들어요. 같이 활동하던 펀드매니저들이 매미로 변신해 시간과 돈 모두에서 여유를 얻은 모습을 많이 봅니다."
한 자산운용사 투자총괄본부장(CIO)은 주변의 매미들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본인도 조만간 매미가 될 것 같다면서.
◆ 여의도 '매미'는 어디 사나요?
매미의 탄생에는 금융투자업계 불황이 큰 역할을 했다. 불황 칼바람이 여의도에 몰아치자 구조조정, 연봉 삭감 등이 이어졌다. 자발적으로 또는 타의에 의해 조직을 떠난 '선수'들이 매미로 다시 태어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전직 펀드매니저를 포함해 애널리스트, 영업맨 등이 삼삼오오 모여 여의도 고급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냈다. 이들은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수백억원 이상의 자금을 운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이들 전체가 굴리는 자금 규모를 수조원대로 추정하기도 한다.
여의도에서 매미의 메카로 불리는 곳은 고급 오피스텔 S트레뉴다. S트레뉴와 함께 메리어트파크센터, 메종리브르 등의 오피스텔이 매미들이 가장 모여있는 3곳으로 꼽힌다.
증권업계에는 기존에도 '부티크'라 불리는 전업투자자들이 있었다. 매미의 원조라고 될 만큼 양자간에 큰 차이는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다만, 매미들이 주식 투자를 위주로 한다면 부티크는 주식이외에 인수합병(M&A), IB딜 등 다양한 곳에 투자하는 모습이었다.
◆ '자의반 타의반' 매미는 탄생
지난 2009년 이후 여의도 증권가에선 투자자문사 설립이 유행처럼 번졌다. 유명 펀드매니저 출신들이 자문사를 설립하고, 증권사와 연계한 '자문형 랩(어카운트)' 상품을 내놓아 수 조원의 자금을 흡수했다. 공모펀드가 수십개 종목으로 분산투자하는 반면 이들은 적게는 3~4개, 많아야 10개 정도 종목으로 압축 운용하며 '7공주' '차화정' 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돌풍을 일으켰던 자문형 랩의 압축 운용 방식은 한계를 드러냈다. 수익률이 급락하면서 문 닫는 투자자문사들이 속출했다. 투자자문사를 거친 인력도 매미 대열로 합류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4~5명의 직원을 두고 자문사를 운영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라며 "몇년 고생하다보니 차라리 나 혼자 운용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 매미의 경쟁력은 네트워크
매미들의 경쟁력은 기존 조직에서 쌓아온 실력과 인적 네크워크(인맥)다. 인맥을 동원해 기존 회사에 있을 때 만큼의 시장정보를 얻는다는 얘기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매미는 사무실에서는 정보팀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마음이 맞는 파트너들끼리 직접 기업탐방도 다니고 각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의 자료를 같이 연구하며 정보를 얻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한 '매미' 투자자는 "제도권 안에서 쌓았던 인맥을 통해 정보를 얻는 편"이라며 "고객과 오랜 파트너쉽으로 인한 매력적인 성과보수로 큰 이익을 볼 수도 있고 운용규모가 크지 않아 탄력적으로 시장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 매미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 매미 더 많아질 것..일부 매미는 다시 복귀 중
업계에서는 향후 매미 투자자들의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증권업황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구조적으로 환경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에 있는 한 펀드매니저는 "매미들의 시장 자체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며 "주식 중심의 매미가 아니라 모든 자산(ALL ASSET)을 통해 안정적으로 관리를 해주는 쪽으로 발전, PB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임원은 "증권사 등의 구조조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아 차라리 혼자서 해보자는 젊은 인력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제도권에 있는 상품이 고객의 니즈를 100%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어 틈새 시장을 노리는 스마트 머니는 매미에게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임원은 또 "정부도 벤처 투자를 활성화한다고 하며 새로운 종목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이 큰 상황에서 매미들이 중소형주 장세를 이끌었던 것처럼 향후 2~3년간 또 다른 트렌드를 만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모든 매미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진한 수익률 등 다양한 이유로 다시 제도권으로 복귀하는 인력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자본시장에 모두 위너(winner)만 있는게 아니지 않느냐"며 "증시가 워낙 안좋아서 투자에 실패하는 매미들도 있고 그러다 보니 다시 제도권으로 유입되는 인력도 있다"고 전했다.
A씨 역시 매미의 삶을 접고 제도권으로 들어왔다. 당초 2년만 매미로 활동하고 현역으로 복귀한다는 계획 대로 올 봄 증권사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개인마다 다 다른 이유에서 매미를 그만두지만 수익률이 잘 나지 않아서 사무실을 닫고 짐을 싸는 사람도 있다"며 "그들은 대개 다시 제도권으로 복귀하고 아예 투자에서 손을 떼고 새 인생을 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뉴스핌 Newspim] 이에라 기자 (ER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