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문형민 기자] 기업들이 단기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알려진 기업어음(CP)이 장기자금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공시를 비롯해 발행과 유통시장의 투명성이 부족한 CP시장의 확대가 자칫 자금시장을 불안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책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얘기다.
2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21일 현재 CP 발행잔액은 총 123조3100억원이다. 이는 지난해말 89조원에 비해 38.7%나 급증했다. 
특히 만기 1년 이상인 CP가 총 54조8500억원으로 전체 발행잔액의 45.3%에 달했다. 만기 3년이상 장기물도 발행금액의 10%가 넘는 13조원에 이르고, 초장기인 7년 만기 CP가 발행되기도 했다. 회사채와 CP의 경계가 무너진 셈이다.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SK하이닉스, 한진해운 등이 장기 CP를 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1년 이상 CP가 발행된 것은 지난 2009년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1년 이내'라는 만기 규제가 없어진 이후다.
◆ 빨리 싸게 발행할 수 있어 CP 발행 급증
CP는 회사채에 비해 공시나 발행하기 위해 소요되는 기간, 비용 등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회사채를 발행하려면 발행주간사를 선정하고 실사를 거쳐, 입찰과 증권신고서 등 총 1개월 가량이 소요된다. 발행비용도 통상 발행금액의 30bp(0.3%) 가량이 든다.
반면 CP는 기업이 발행하고자 맘 먹으면 당일 바로 발행이 가능하다. 별도의 증권신고서 제출이나 공시 등 제약을 받지 않는다. 증권사가 이같은 역할을 하지 않으니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급한 자금이 아니더라도 기업들이 CP를 통해 장기자금까지 조달하게 된 것이다.
증권사 기업금융(IB) 관계자는 "금리가 하락하면서 단기자금은 CP, 장기자금은 회사채로 조달한다는 관행이 깨졌다"며 "기관이나 펀드마다 장기 CP를 살 수 있는 규정이 다르지만 발행기업 입장에서는 장기 CP에 대한 선호가 높다"고 전했다.
◆ 투명성 약해 자금시장 화약고 될까 우려
시장에서는 이같은 장기 CP의 확산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CP는 발행과 유통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는 불투명한 시장이어서 시장환경이 악화될 때 화약고가 될 수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본부장은 "CP를 통한 장기자금 조달이 불법은 아니지만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자금시장이 혼란에 빠졌을 때 CP가 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15개 재벌이 무너지면서 이들이 발행한 CP를 산 투자자들이 엄청난 손해를 끼쳤다. 2003년 카드사태의 배경에도 CP가 있었다. 빨리 발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벼락치기' 발행으로 이어졌고, 이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윤영환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2003년 당시 SK그룹이 2조원이 넘는 자금을 CP를 통해 조달했고, 이를 MMF가 사들였다"며 "MMF에 카드채도 많이 편입돼있어 환매를 못해주는 사태로까지 번졌다"고 설명했다.
또 작년 초에는 LIG건설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까지 CP를 대규모로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이 사건은 지금도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장기 CP에 대해 공시 강화 등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를 만들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영환 연구위원은 "미국의 경우 270일 미만의 CP는 공시의무가 면제되지만 그 이상을 경우엔 공시해야한다"며 "발행기업에 대한 정보가 공개돼야 사고가 날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강조했다.
한편 내년부터 CP시장을 대체할 전자단기사채 제도가 시행될 예정이지만 원활하게 정착할 수 있을까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자단기사채는 채권 권리의 발생·유통·소멸 등을 전자 방식으로 진행함에 따라 업무 처리가 간소화되는 것은 물론 발행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 발행 회사 입장에서는 안전하고 유용하게 자금을 활용할 수 있고, 투자자 입장에서도 투명하게 공개된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기업들 입장에서는 간편하고 신속하게 또 사실상 익명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을 포기하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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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문형민 기자 (hyung13@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