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택 가격 회복 못하면 채무 상환 위해 헐값 매각 재촉할 수밖에
- 채권회수하면 가격 회복시까지 시장에 풀지않아, 물량 부족 초래
[뉴스핌=한기진 기자] # 미국에서 올해만 87만 채의 주택을 은행들이 압류했다. 100만채가 압류 진행 중이고 앞으로 500만채가 은행들에 넘어갈 전망이다(부동산 정보제공업체 리어티트랙 발표). 쇼트세일(short sale∙은행과 주택 보유자가 협상을 통해 주택을 담보가치 이하에서 매각하는 것)까지 더해져 지난 4월까지 25개월 동안 거래된 전체 주택 매매 가운데 40% 이상이 압류주택과 쇼트세일 거래였다(캠벨/인사이드 모기지 파이낸스 발표).
"모기지대출을 갚지 못하면 집 현관 열쇠만 은행에 주고 나오면 된다"라는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특징으로 벌어진 일들이다. 대출 원금이 더 남았어도 은행이 알아서 할 일이지 집 소유권을 넘기면 개인은 더 이상 책임지지 않는다. 비소국적(non recourse) 방식의 주택 대출 제도다.
이렇게 압류와 쇼트세일의 규모가 커지면서 생긴 부작용이 주택거래매커니즘의 왜곡이다. 은행들이 압류주택 처리나 쇼트세일에 평균 10개월, 완전 해결에 3년이 걸리고, 이러다 보니 거래 위축→ 주택가격 하락을 야기하고 또다시 압류 물량이 한꺼번에 풀려 추가 주택가격 하락을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하는 못해 은행 연체율이 늘어나고 있지만 미국처럼 은행이 주택거래 시장을 왜곡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하우스푸어를 구제하기 내놓은 세일앤드리스백(sale and lease back) 제도가 이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은행권에서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 상환 시스템은 대출자가 끝까지 부채를 갚는 구조다.
자영업자인 K씨의 사례를 보면 잘 드러난다. K씨는 2009년 파주 캐슬앤칸타빌 전용면적 118㎡를 5억원에 분양 받았다. 서울에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만 4억원 가까이 받았다. 집값이 곧 반등할 것으로 보고 투자했지만 줄곧 내리막을 걷더니 현재 시세가 3억2000만원으로 낮아져 ‘깡통아파트’가 됐다. 은행 이자를 감당 못해 파주 아파트를 경매에 내놓고 그것도 모자라 추가 대출을 일으켜 은행대출을 갚아야 했다. 결국 그는 이자비용을 합쳐 2억원 가까운 빚만 지게 됐다.
K씨는 세일즈앤드리스백 개념을 활용해 우리금융그룹이 금융권 최초로 내놓은 신탁후임대를 이용하면 구제받을 수 있다.

주택소유권을 은행에 3~5년간 신탁하는 대신 일정 수준의 임대료를 내면 살던 집에서 계속 살수 있고 부채를 갚아가면 된다. 주거 안정을 꾀할 수 있고 갑작스럽게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험을 경감시킬 수 있어 금융권 안팎에서 칭찬하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만만치 않다.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그룹 등 경쟁업체들이 상품 출시를 미루고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미국의 압류주택 폐해가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날 것이란 우려된다. 우리금융이 당장 900억원 규모로 시행하고 앞으로 수년간 은행권 전체가 나서면 누적 규모가 조 단위가 넘는 주택을 사들이는 셈이 된다.
주택가격이 회복하지 못해 가계가 빚을 갚지 못하면 은행들은 채권 회수 차원에서 아파트를 소유할 수 밖에 없다. 사실상 미국처럼 압류하는 셈이 되고 이게 주택거래 위축을 불러올 것이란 지적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의 보수적인 채권관리 시스템상 주택을 담보로 회수해도 시장가격이 담보가치만큼 회복하지 않으면 절대로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면서 “주택 거래가 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소유권을 은행에 넘기지 않고 신탁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부작용이 우려된다. 임대료를 내지 못하면 경매절차에 들어가야 하는데 은행은 임대 계약을 근거로 주택가격을 좀더 낮춰 서둘러 매각할 것을 권유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주택가격 하락을 더 부채질 하게 된다.
미국의 쇼트세일이 이와 비슷한 사례다. 쇼트세일은 주택 시세가 융자 금액보다 낮으면 은행과 협상을 통해 부족한 금액을 탕감 받는 대신 가격을 낮춰 헐값에 파는 것이다.
가격 내림폭이 워낙 커 미국의 주택 경기 침체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캠벨/인사이드 모기지 파이낸스 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은행이 소유한 부동산(REO) 가격은 5.7% 하락했지만 쇼트세일된 주택은 14.3%나 내렸다. 반면 은행이 압류하기 직전의 주택가격은 2.5% 내렸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우리금융의 신탁후임대에 대해 “취지는 좋은데”라면서도 "6개월 임대료 못 내면 또 경매절차에 들어가야 한다"며 "은행들이 임대를 안정적으로 낼 수 있는 구조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지주 회장들도 비슷한 우려를 하며 유사한 제도 시행을 미루고 있다.
한동우 신한지주 회장은 17일 “은행 상황에 맞게 하면 될 것으로, 이자 감면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하면 될 것으로 본다"며 "(이 방법이) 오히려 대상자를 더 확대할 수 있고, 집 값 하락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면에서 더 긍정적"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김정태 하나지주 회장도 "은행들만 나선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제도적으로 검토할 게 많다"고 말했다.
이런 시각들에 대해 우리금융 관계자는 “미국은 주택가격 대비 대출이 너무 많아서 생긴 문제지만 우리나라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가 50% 초반으로 그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우리은행이 이런 부분을 보강 해서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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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