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Economic Forum Questionnaire
제1회 서울이코노믹포럼 사전인터뷰
대담: 이브 도즈(Yves Doz), 프랑스 INSEAS 경영대학원 교수
정리: 뉴스핌 김사헌 국제부장
일시: 2012년 5월 3일
[인터뷰 전문]
1. 대기업의 혁신에는 최고경영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 대기업은 지배구조의 중심인 오너들이 대부분 이런 역할을 맡고 있다. 삼성의 이건희 리더십이나 현대차의 정몽구 리더십이 단적인 사례다. 해외에서는 보편화되지 않은 이런 오너십 경영이 대기업의 혁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문가적인 견해를 밝혀달라.
= 내 판단으로는 가족 소유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과 기업의 혁신 자체에서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은 서로 다른 쟁점이다. 가족이 회사를 지배하는 경우 보통은 장기적으로 회사를 경영하게 되는데, 이 경우 일시적인 장점만 들고 파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도 지속적인 경쟁상의 장점에 대한 비전을 가진는 경우가 많다. 또 미래를 육성하는 것이 이 같은 기업을 소유한 가족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부가 된다. 따라서 기업 소유주는 혁신에 대한 요구가 더욱 분명하고, 또한 자원을 신축적으로 배치할 능력도 갖춰야 한다. 하지만 가족 기업은 자본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자원의 한계로 인해 고전하게 되며 주요 혁신에 성공할 가능성이 더 작아지게 된다. 역동적인 포트폴리오 게임이 가능한 분산된 그룹이라면 예외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기업들은 혁신을 직접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가져오게 된다. 중앙집중화된 기업 통제도 혁신에 서로 상반된 효과들을 미치게 된다. 한편으로는 주요 의사결정 면에서 책임성이 보다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 중간급 관리자들이 적극적으로 혁신을 추구하고 지원하는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해당 기업의 전반적인 혁신성이 줄어들 수 있다. 이것은 한국기업들이 폭넓은 경제적 발전 요소들을 넘어서 주요 혁신자 혹은 산업발전의 주역이 아니라 다만 빠르고 강력한 추종자인 이유를 알게 해준다. 한국 기업들은 일단 다른 개척자들이 창출하고 도입한 혁신에 기초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열게 되면 이 새로운 사업을 구축하기 위해 대규모 자원을 빠르게 동원하는 방식으로 승리했다. 이 때문에 한국 기업의 이미지는 창조적인 혁신자가 아니라 빠르고 사려깊은 모방자인 것이다.
2. 한국 대기업의 유럽시장 공략이 활발하다. 삼성과 현대차 등 한국 주요 대기업이 현지공장을 세우는 등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다. 한-EU FTA로 반짝 효과를 보는 한국 대기업들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유럽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이 유럽시장 공략을 위해 어떤 기업전략과 프로그램을 만들어가야 할지 견해를 밝혀달라.
= 한국 기업의 유럽시장 공략은 정말로 어려운 과제다. '상품(Commodity)'을 팔 수 없다면 그 기업은 로컬 기업에 그치며, 또 현실적으로 그래야 한다. 아시아처럼 유럽은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다원적이다. 따라서 유럽을 관통하는 문화적이며 역사적 맥락의 차이에 대해 민감해져야 하며 유럽이 진정한 단일시장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도 간단한 요점이다. 유럽은 지역별로 소비가전 산업과 같은 곳도 유통망과 가격 혹은 광고형태가 다르고 규제 또한 여전히 차별적이다. 따라서 좀 더 손쉬운 길은 삼성이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통신사업자를 통해 갤럭시 제품 판매를 촉진하는 것처럼 대량판매시장의 공급업체를 통하거나, 삼성과 LG가 지난 2000년대 초반에 유럽의 혹서 사태가 왔을 때 주거용 에어컨을 개발해 판매함으로써 성공한 것처럼 새로운 제품 범주로 진입하는 것이다. 독자적인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은 더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자동차산업과 같은 일부 부문에서는 유통시스템의 합리화가 딜러들이 현대차를 기꺼이 판매도록 이끌 수도 있다.
3. 신자유주의적인 미국 기업들의 경영과 이를 거부하는 유럽간의 기업문화 차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장단점은? 또 글로벌 기업의 혁신모델로 흔히 유럽식모델과 미국식모델로 나누는데, 한국식에 맞는 기업혁신모델은 어떤 것이라고 보는가.
= 미국이다. 미국식 모델은 기업가적 회사에서 혁신을 아웃소싱하려는 대기업들이 수용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제약회사에서 통신 기술 업체에 이르기까지 이런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 기성의 대형 업체들은 너무 빠르게 변하는 시장과 기술적 요인에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아마도 시스코(Cisco)가 이런 관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벤처 투자와 지역시장의 혁신적인 생태계가 시스코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유럽 기업들은 종종 역동성이 떨어지는 인상을 주고 있는데, 영국 캠브리지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엔지니어링이나 마이크로일렉트릭 분야의 발전은 흔치 않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유럽의 혁신과 관련된 정책들은 미국과 비교해 일관성이 떨어진다.
한국 기업들의 혁신은 여전히 기업 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은데, 당분간은 이렇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대기업을 떠나서 창업하려는 분위기가 무르익거나 대학 졸업생들의 창업이 활발해진다면 다른 혁신 모델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 질 것이다.
4.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상생, 공생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유럽 기업 가운데 바람직한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 자동차 업계를 예로 들면 독일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유럽 선진국들은 고도로 특화된 중소기업들이 대형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잘 형성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작은 업체들은 규모가 큰 자국 업체나 외국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이들 고객 업체들 역시 전체 하부 산업을 위해 중소 업체가 업무량과 쇄신에 있어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런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보적인 관계는 명백하다.
5. 유럽재정위기 이후 유럽기업들의 경영방식과 조직 문화에 변화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변화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 유럽의 재정위기는 [기업들의] 생산성이 뒤처지고 있다는 것과 갈수록 소비자들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도록 만들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특히 유럽의 위기와 거의 동시에 나타난 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와 온라인 구매 시스템은 경제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의 영향력은 때때로 과장되기는 하지만 세계화로 인한 압력이 금융과 재정위기를 넘어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유럽에선 '린 경영(Lean management)'이 널리 퍼지고 있다. '린 경영'이란 관리 구조와 직제를 간소화하고, 인력을 감축, 사업을 통합하는 등의 방법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기법이다. 성과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지고 있으며, 비효율성이 숨어있을 여지는 줄어들고, 팀 관리자에 대한 강조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경영은 보다 덜 정치적으로, 좀 더 '사무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위계적인 요소도 줄어들고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처럼 위계제에서 문화적인 힘의 거리가 가장 강력한 문화권의 기업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