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기석 기자] 기획재정부의 경기판단이 경기보다는 국제유가쪽으로 급속히 선회해 주목되고 있다.
지난 2월만 하더라도 지난해 12월 광공업생산 소매판매 등 실물지표가 나빠졌고 1월중 무역수지 적자 전환 등으로 경기에 대한 우려가 한층 강화됐었다.
유로존의 재정위기에 따른 세계경제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컸던 탓이다.
그러나 3월 들어 경기판단이 유로전 재정위기나 실물경제에 대한 부진보다는 국제유가 급등으로 방점이 찍히면서 물가불안에 대한 염려가 한층 커졌다.
2월중 유럽연합 25개 국가들이 신재정협약에 서명하면서 재정긴축 분위기가 커지고 유럽중앙은행(ECB)가 2차 장기대출(LTRO)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유럽에 대한 불안이 다소 완화됐다.
여기에 국내 경기도 광공업생산이 다소 개선되는 가운데 수출이 회복되면서 2월 무역수지가 흑자로 다시 돌아선 것이 경기판단을 변화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 급등세가 국내 유가상승에 따른 서민 피해나 물가 급등세를 자극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내 내수 부진이 지속되고 있고 가계부채 역시 900조를 넘은 상황이기 때문에 섣불리 정책기조를 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유로존 불확실성이 여전하고 국제유가 상승이 부담스럽지만 표면적으로 물가가 3%선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금리인상 방향으로 강조점을 두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재정부 경기판단, ‘경기’에서 ‘국제유가’로 초점 이동
재정부는 국제유가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으나 국내 경기는 계절적인 요인이 작용하고는 있지만 둔화세에서 다소나마 탈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 2월의 ‘실물경제 부진’ 시각과는 상이한 태도이다.
재정부가 지난 6일 내놓은 ‘그린북’이라고 불리는 <최근 경기동향 2012년 3월호>에 따르면, 1월중 취업자수는 53만 6000명이 증가했다.
1월 광공업생산이 전년동월비 2.0% 감소하며 31개월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전월비 기준으로는 3.3% 증가하며 넉달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2월중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비 3.1%로 낮아지며 두달 연속 4% 이하로 하향된 모습을 보였으며, 2월 무역수지도 22억달러 흑자를 기록하면 1월 20억달러의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경기판단 역시 실물경기 부진보다는 국제유가 상승 등 물가 불안요인으로 한층 더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 대외 불확실성 중에서 유로존 재정위기보다 국제유가 상승이 더 큰 요인이라는 시각으로 변화했다.
지난 2월중 내놓은 <최근 경기동향 2012년 2월호>에서는 “광공업생산 소매판매 등 실물지표가 부진한 모습”이라며 “유럽의 재정위기, 세계경제의 둔화 가능성, 국제유가 상승 우려 등 대외여건의 높은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고 판단했었다.
재정부의 김정관 경제분석과장은 “우리 경제는 고용회복세가 이어지고 주요 실물지표가 계절적인 요인 등이 있으나 개선됐다”며 “그렇지만 유가 상승 등 물가 불안요인이 지속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과장은 “유럽의 재정위기, 세계경제의 둔화 가능성 등 대외불안이 지속되고 있으며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불확실성이 크게 증가했다”며 “대내외 경제여건과 추이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경기회복과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대응 기조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재정부, 경기부양 자제, 정책기조 유지 뜻
정부의 경기판단이 '경기‘보다는 ’국제유가 급등‘에 찍히면서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지만 국내 소비자물가가 기저효과 등이 반영됐더라도 3%선으로 내려온 상황에서, 금리인상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강동수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은 전날 KDI 공개토론회에서 “국내 가계부채가 GDP의 72%, 가처분소득의 157%를 차지하고 있고 부채증가율이 높다”며 “가계부채를 총량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국내 가계부채가 900조원대로 급증한 상황에서 대내외 우려가 커지는 마당에 당장의 금리인상은 서민들에 대한 부담을 키울 수 있어 정책적으로 선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재정지출 확대나 부동산 경기부양을 위한 조치는 자칫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도 있다.
실제로 재정부 박재완 장관은 지난 2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유로존이 자체 방화벽 쌓는 문제 등 대외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으며 국내 수출이나 경기는 설날 연휴 등에 따른 계절적 요인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태”라며 “경기에 상하방 리스크가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정책기조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장관은 “무리하게 경기부양에 나서서 정책여력을 소진할 아무런 필요가 없다”며 “예산이나 재정, 통화 등 정책 방향이 확장세로 다시 전환하지 않고 미세조정 정책으로 가겠다”고 강조했다.
◆ 전문가들, 상반기 지나야 정책 변화, 금리인하 vs 인상 혼조
전문가들 역시 현재의 경기는 수출 대기업 등을 제외하고는 좋지 않은 상황이고 가계부채 우려 등이 잔존해 있어 정책기조를 바꾸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정치권이 이미 4월 총선거 일정에 돌입한 상태여서 시점 상으로도 좋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정책기조는 유로존 위기가 잦아드는 시점, 그리고 국제유가 급등세가 지속되면서 국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소비자물가가 다시 4%대로 올라가는 시점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증권의 최석원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경기는 한마디로 난맥상에 빠져 있다”며 “유로존 사태가 아직 불확실하고 가계부채가 부동산 침체 문제가 얽혀 있어 정책기조를 바꾸기 어려운 국면”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글로벌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면서 국내도 유동성이 많다는 관점에서 기본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라면서도 “그렇지만 지금 당장 정책기조를 바꿀 경우 사태가 악화될 수 있어 상반기까지는 정책금리 역시 바뀌기 쉽지 않을 듯하다”고 말했다.
반면 현대증권의 이상재 경제분석부장은 “국내 경기가 수출이 다시 회복되는 모습이지만 내수 경기도 좋지 못한 상태”라며 “그렇지만 유로존 사태가 지속되면서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으나 아직 지속성 여부를 가름하기는 어렵지만 국내 물가는 당분간 기저효과가 있어 3%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다”며 “그러나 내수 상태가 생각보다 악화되고 있어 당분간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하반기 쯤 금리인하를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외IB들 역시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공공요금 상승 등으로 물가불안 요인이 잔존하고 있어 당분간 금리동결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BNP 파리바는 최근 보고서에서 수출과 광공업생산 등 국내 실물지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한은의 금리인하 필요성이 크게 약화됐다며 올해에는 금리동결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HSBC는 글로벌 유가 상승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이 확대됨에 따라 당초 3월중 금리인하 전망을 올해 3/4분기까지는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수정했다. 오히려 올해 4/4분기 중에는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금리인상쪽에 무게를 뒀다.
[뉴스핌 Newspim] 이기석 기자 (reuh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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