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사헌기자] 미국 중앙은행이 대규모 손실로 부실해져서 부도가 나거나 구제 금융을 받는 일이 가능할까?
통화당국으로서 중앙은행은 화폐를 찍어내는 주체이기 때문에, 정의상 중앙은행의 부도는 불가능한 일로 판단된다. 더구나 연방준비제도는 기축통화 발행 주체이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에도 무려 2조 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모기지담보부증권(MBS)과 국채를 매입하는 마술을 부렸으며, 최근에는 6000억 달러의 장기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과감하게 도입한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어떻게 망할 수가 있는지 상상조차 힘든 일이다.
게다가 연준은 이 같은 이례적인 통화정책 상의 조치로 지난해에 사상 최대 수익을 남겨 재무부로 784억 달러나 국고 귀속시켰다고 한다. 매입한 채권의 이자수입이 지난해 순익 809억 달러 중 762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연준은 막대하게 불어난 대차대조표 규모에 따라 전례없는 신용손실의 위험에 처했으며, 또한 이로 인해 정치권으로부터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잠재적인 손실 위험은 최소한이라고 해명해야 하는 처지다.
◆ 연준이 빚을 지게 되는 경우?
연준의 대차대조표 상에서 채무가 자산보다 많게 되는 경우는 경제가 활황국면을 보여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는 경우에 국한된다고 버냉키 의장은 설명했다. "단기 금리가 큰 폭 상승하는 경우 연준이 2년 정도 재무부에 아무런 자금도 보낼 수 없는 시기가 올 수도 있지만,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연준의 최신 정책조치나 이에 따른 잠재적 손실로 인해 정부가 중앙은행에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 말하자면 '구제 금융'을 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 연준이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완화정책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런 역할이 뒤바뀌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경우 정치권이나 의회에서는 연준이 납세자들의 돈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불같이 비판할 게 뻔하다.
이와 관련해 미네아폴리스 연방준비은행의 자문역할을 맡고 있는 미네소타주립대의 바라다라잔 차리 경제학 교수는 연준이 완화 정책 조치들로부터 '출구전략'을 시행할 때, 최소한 회계처리 상으로는 실제로 부도가 나는 일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분명한 '출구전략' 상황은 인플레 압력이 높아질 때 자산매입을 중단하고 나아가 자산을 다시 처분하는 것인데, 이 경우 연준이 대규모의 회계상의 손실을 안게 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예를 제시했다.
연준은 현재 1조 달러가 넘은 재무증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물가가 약 2%포인트 급등하게 되면 이 보유액 가치가 약 10% 정도 사라지면서 자산 매도 회계 시에 100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입게 된다.
차리 교수는 "이 경우 분명히 정치적으로는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낳게 될 것이지만, 경제적으로 보자면 연준이 화폐를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회계 처리 상의 부도 사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다수 경제전문가들은 연준의 이례적인 정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이 덜 적극적인 정책으로 인해 미국 경제의 침체가 장기화되는 경우 발생하는 비용에 비하면 훨씬 작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버냉키 등 연준 관계자들은 실업률이 두 자릿수에 육박하는데도 기업들이 채용에 나설 조짐이 없기 때문에 경제 여건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례적인 정책수단을 포함해 모든 노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들의 입장을 방어하고 있다.
◆ 이례적 자산매입으로 커진 손실 위험. 출구전략 어려움
하지만 연준의 이례적인 자산매입 정책은 위기 시에 단행했던 긴급대출 정책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다. 특히 재무증권과 MBS 매입으로 인해 연준은 분산 투자하지 못하고 일부 자산에 올인한 거대 투자자와 같은 입장이 됐다.
연준의 역사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앨런 멜처 카네기 멜론대 교수는 "가장 큰 위험은 인플레 압력이 높아질 경우 장기채권 포트폴리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연준의 최근 '양적완화(QE)' 정책에 따른 최근 매입조치로 인해 그 위험은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로이터 인사이더의 신용분석 전문가인 에드 롬바크의 분석에 따르면 연준의 새 채권 포트폴리오의 평균 듀레이션은 5년에 조금 못 미치는데, 이 경우 5~6년 만기 재무증권 수익률이 1bp(=0.01%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약 6500만 달러의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11월 12일부터 올해 1월 첫째주까지 미국 국채매입 분에서 약 23억 달러의 회계상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연준은 또한 이른바 '메이든레인 포트폴리오'라고 불리는, JP모간이 베어스턴스를 합병하도록 주선하고 초대형 보험사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을 구제할 때 획득한 위험자산 등 투자자산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손실에 노출된 상태다.
'메이든레인(Maiden Lane)'은 월가에서 동쪽으로 난 길의 이름으로, 베어스턴스나 AIG의 위험자산을 따로 모아 포트폴리오로 관리하도록 만든 회사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 회사의 자산을 속칭 '메이든레인 포트폴리오'라고 부르고 있다.
다만 이 회사의 총 포트폴리오는 660억 달러 정도여서, 급격히 불어난 연준의 전체 증권 포트폴리오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은 편이다.
게다가 연준 관계자들은 이런 자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보다는 1400만 명 이상의 실직자들이 다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경제가 회복되지 않거나 혹은 낮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가 디플레이션 충격으로 빠져들 위험을 더 염려하고 있다.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스탭으로 일했던 JP모간 체이스의 수석이코노미스트 마이클 페롤리는 "연준이 대차대조표를 확대하는 정책을 구사하지 않았다면 경제가 끝장났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런 위험들은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페롤리 이코노미스트는 또 연준의 '출구전략'의 일차적인 수단은 매입한 자산의 매각이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버냉키 의장도 은행 지준에 대해 지급하는 이자율을 인상하는 것이 부양책을 회수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지준부리율 조절정책도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채권시장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정의상 채권은 수익률 혹은 금리가 상승할 때 가격이 하락하는데, 경제가 회복되어 인플레 압력이 높아질 경우 연준은 금리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것은 보유한 막대한 채권 포트폴리오의 가치 하락을 유발하게 된다.
전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이 조사국장으로 재직했던 보브 에이젠베이스 큠버랜드 어드바이저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갑자기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국제적인 반응은 어떻게 될까"라고 반문하면서 "아무래도 이런 사태는 재무증권이나 달러화 혹은 어떤 다른 쪽에도 좋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며, 매우 당혹스러운 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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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