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진 회장은 어제 오전 경기도 양평 용담리 선영에서 열린 고(故)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 4주기 추도식에 참석, 현대건설 인수전과 관련해 "장자(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중심의 현대가 컨소시엄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몽진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아버지인 정상영 명예회장의 뜻을 공개석상에서 밝힘과 동시에 아직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 사촌형 정몽구 회장을 향한 일종의 압박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몽진 회장의 발언이 곧, '범 현대가가 현대건설 인수에 이미 뜻을 모은 것 아니냐'는 해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 KCC의 현대 본산 찾기 의지
KCC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내동생인 정상영 명예회장이 여전히 굵직한 경영현안을 챙기는 범 현대가 의사 결정의 사실상 컨트롤타워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창조한 '현대정신'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옛 현대군단 결집에 가장 큰 의욕을 보여왔던 범 현대가 일원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을 비롯해 인영, 순영, 세영 등 다른 형제들과 함께 자신의 가산까지 처분하면서 현대그룹 성공신화를 일군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조카인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사망 직후 질부(조카며느리)인 현정은 회장이 경영권을 거머쥐자 강력한 반대 의사를 피력했던 것도 이런 이유가 바탕에 깔려 있다.
현정은 회장이 시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과 남편의 유지를 이어받아 그룹을 이끌어가겠다고 했지만 현대의 본산인 현대그룹을 정씨가 아닌 현씨 체제에게 맡길 수 없다는 강한 반감이 작용했던 것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부인이자 자신에게는 큰 형수가 되는 고 변중석 여사의 평소 며느리 교육도 정상영 명예회장에게는 정서상 현정은 회장의 그룹 경영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변 여사는 생전 자신의 며느리들을 교육하며 "남의 눈에 띄는 일은 하지 말라"며 "언제나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행동하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가르침은 3대로 내려온 현재까지 범 현대가 며느리들의 생활 곳곳에 뿌리깊게 남아 있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이 같은 배경으로 정몽헌 회장 사망 직후인 2004년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른바 '숙질의 난'으로 불렸다.
당시 현대가의 적통성 명분을 내세워 현대그룹 인수를 선언했고, 현정은 회장은 이에 맞서 정면 돌파 의지를 높였었다.
하지만 '시삼촌이 조카 그룹을 삼키려 한다'는 비난 여론이 조성됐고, 현정은 회장이 부족했던 자금력을 국민주 공모 등으로 메우며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압승, 경영권 분쟁은 일단락됐다.
이후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의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 지분 인수에 나서면서 또 한 차례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상선 지분 인수의 표면적 이유는 외국인의 적대적 M&A 방지였지만 정상영 명예회장의 암묵적인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는 이런 맥락에서 정상영 명예회장이 관심을 높이는 부분이다. 현대그룹 경영권 핵심인 현대상선에 대한 현대건설 7.22%의 지분율은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택배·현대증권·현대아산 등으로 이어지는 현대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에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역시 채권단과의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을 두고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현대건설 인수에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 현대차 포기하면 KCC 나설까?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쪽에서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움직인다면 가장 강력한 인수후보가 될 것"이라면서 "현대차와 KCC, 현대중공업이 연합형태를 구성할 경우 인수 성공에는 그만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 의지를 피력하지 않고 있다. 범 현대가 연합 형태의 인수전 참여 역시 정몽구 회장의 어떤 발언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이에 대해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해 그룹 차원에서 정해진 방침은 아무것도 없다"며 "범 현대가의 지원을 받아 현대차가 인수에 나설 것이라는 것도 정해진 바 없다"고 강조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범 현대가의 지원을 받아 KCC가 총대를 멜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상영 명예회장의 현대그룹 찾기에 대한 의지가 여전하고, 조카인 정몽구 회장이나 정몽준 의원이 표면에 나서기 어렵다면 가능성있는 후보가 바로 KCC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KCC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자금력에서도 범 현대가의 우회 지원이 있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준이다. 부채비율 50% 미만으로 지난해 사상최대 수준인 2811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등 자금력이 괜찮은 상태다.
하지만 KCC 관계자는 "정몽진 회장의 발언은 M&A 특성과 시장 논리상 돈이 많은 기업이 인수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이었다"면서 "현대건설 인수는 전혀 관심 없다"고 해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