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서는 국내 시장의 트렌드와 이해관계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놓지만 그 핵심에는 바로 이동통신사의 ‘화이트리스트’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출시되는 대부분의 휴대폰에는 IMEI(국제모바일기기식별코드)가 기록돼 있다. 이 IMEI를 통해 서비스 업체는 기기 정보와 정품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화이트리스트란 바로 이 IMEI를 관리하는 이통사 자체 리스트를 일컫는다.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IMEI가 무선망에 접근하면 즉시 차단된다. 쉽게 말해 이통사에서 화이트리스트에 IMEI가 등록되지 않은 단말기는 개통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국내 다양한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는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통사 철밥통 ‘화이트리스트’
이는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해외 대부분의 이통사에서는 IMEI 관리를 특정 문제가 발생하는 단말기의 접속을 차단하는 ‘블랙리스트’로서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폐쇄적인 통신환경으로 유명한 일본조차도 자사에서 출시해 유통 중인 단말기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접근을 막는 통신사는 한 곳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외 단말기 제조업체는 국내 시장을 노리기 위해서는 이통사와 계약을 맺어야만 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낳고 있다. 국내 제조사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에서 만들어진 휴대폰은 모두 이통사의 유통망을 통해 팔리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시장구조에서 제조사가 1차 구매자인 이통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국내 제조업계 한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물건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중에 어느 쪽 입김이 쎄겠느냐”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실제 지난 2008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SK텔레콤이 주소기업 블루버드소프트의 PDA 개통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17억1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블루버드소프트 PDA에 네이트 접속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SK텔레콤에서 개통을 거부했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공정위 측은 “이동통신사의 이익에 반하는 휴대폰 개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 사건처럼 제품이 개발돼도 출시와 유통이 억제돼 왔다”고 지적했다.
유명무실 ‘유심개방정책’
무엇보다 ‘화이트리스트’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이통사 입맛에 맞는 시장을 구축하는 대가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도 제조사와 이통사의 계약을 통해 전용 모델을 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유심 락(Lock)으로 제어할 뿐, 제품 자체의 IMEI로 제품에 대한 사용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약정 기간이 지나면 해제해 타 이통사 가입이 가능하다.
반면 국내의 경우는 정반대다. 심지어 지난 2008년 7월 유심칩을 개방됐지만 현실적으로 유심칩을 통한 가입자의 이동은 극소수다.
방송통신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통사가 자체적으로 IMEI를 관리하면서 유심(USIM) 개방의 의미가 많이 퇴색 된 것은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당초 개방형 유심은 단말기에 유심칩만 끼우면 이통사, 단말기에 상관없이 해당 가입자가 원하는 이동통신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계획 됐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경쟁사에서 출시된 단말기에 유심칩을 꽂아도 ‘화이트리스트’에 단말기 등록이 되지 않으면 이동통신망 접근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의 T옴니아2에 KT의 유심칩을 꽂아도 바로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결국 소비자는 단말기를 이통사 ‘화이트리스트’에 등록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대리점을 찾아야 한다. 이는 대리점을 방문해 기기를 변경하는 것과 별 다를 게 없다.
이와 관련 이통사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법적으로 보장된 IMEI를 수집해 서비스질을 높이는 것”이라며 “해외 휴대폰과 국내 휴대폰의 호완문제부터 복제, 가짜 휴대폰 등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통사의 주장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해외 이통사의 로밍폰이 국내 통신망을 접속하는 것은 이미 IMEI와 무관하게 허가돼 있고, 해외폰도 방송통신위원회 전파연구소를 통해 전파인증으로 개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이통시장에서 와이파이 기능이나 스마트폰 등의 도입이 늦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이통사가 그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통사 위주로 형성된 시장이 결국 글로벌 트렌드에서 시장을 뒤처지게 만든 주범이다”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시장을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국내 이통3사들이 정작 후진적 시장구조를 안고 있다는 모순을 동시에 가진 셈이다. 때문에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이같은 내부적 문제부터 해결해야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과연 이통사의 화이트리스트가 누굴 위해 존재하는지 한번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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