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행장, 부행장 성과계약 통해 외화구조화증권 투자 적극유도
[뉴스핌 한기진·배규민 기자]황영기 KB금융 회장이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 재직 당시 행한 잘못에 대한 제재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실상을 알 수 있는 열쇠노릇할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중징계에 해당하는 제재안을 내놓자 일각에선 '경영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어선 안된다'며 본질과 동떨어진 주장이 나오는 실정이다.
하지만 뉴스핌 취재진이 복수의 감독기구 관계자들과 만나 밝힐 수 있었던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에 뉴스핌은 실상 추적과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한 시리즈를 준비했다.
김종창 금감원장이 26일 “황영기 회장에 징계 사유있다”라고 직접 밝힌 것처럼, 감독기구 관계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번 제재는 정상적 경영행위를 책임껏 수행해야할 사람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로 보인다.
반면에 최근 주요 언론매체가 각계 인사를 끌어들여 벌이고 있는 논란이 허상에 기초하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 때문에 실상을 바로 알기가 쉽지 않은 상황으로 흘렀다.
감독기구 관계자들은 투자에 앞서 이뤄진 의사결정과정에서부터 CDO(부채담보부증권) 또는 CDS(신용부도스와프) 상품들에 대한 위험성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은폐가 이뤄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심지어 "기망행위에 따라 투자가 시작됐고 결국 손실을 초래했기 때문에 일종의 배임이라고 봐야한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에 이익을 많이 가져다 주기 위한 선의에 기초했다지만 투자결정과정부터 분명한 잘못이 있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는 이미 투자보고서의 의도적 왜곡이 있었고 황영기 당시 우리은행장이 의사결정과정에 직간접적 관여를 했다는 것을 파헤쳐냈다.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는 “정통 뱅커(banker)가 아니어서 주변에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려 CDO, CDS에 대한 투자에 통제가 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 계약서 위험성 분명히 고지 불구 "유동성풍부"만 부각시켜 투자결정 유도
감독기구는 그동안 황영기 회장의 책임소재를 규명하기 위한 증거를 모아왔다.
뉴스핌이 접한 것들은 위험성에 대한 의도적 왜곡 또는 은폐다.
감독기구에서 확인한 내부문건에 따르면 2004년 투자 당시 담당 부행장이 직접 사인한 내부문서에는 ‘CDO CDS투자는 유동성이 풍부하고 리스크가 별로 크지 않은 상품’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뉴스핌이 입수한 CDO 투자계약서 약관 원문에 보면 ‘세컨더리 마켓(secondary market)이 형성되지 않을 수 있고 투자자에게 유동성을 보장하지 않는다(no assurance)’며 ‘재무 및 유동성부족(lack of liquidity)과 관련된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투자자만 구입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세컨더리 마켓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은, 일단 CDO에 투자하면 이를 또다시 유통시킬 수 있는 시장이 없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CDO는 유통시장에서 매수자가 풍부하지 않고 만약 매수자가 따라 붙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시장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예보 고위 관계자는 “투자계약서에는 언제든지 가격이 떨어지면 손실이 나는 즉 위험이 크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음에도 기본적인 상품구조를 왜곡했다”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또 이 같은 구조화상품을 동일선상에 놓고 보지 않고, 상품의 기초가 되는 자산에 따라 상품에 대한 평가를 하기 때문에 투자자의 수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시장이 불안해지며 평가손실이 입기 시작한 2007년, 손절매를 통해 손실을 최소화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도 이 같은 상품 특성으로 인해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서다.
황회장 측이 제기한 손절매를 제대로 못한 후임자의 ‘관리소홀’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키 어려운 점도 이 때문이다.
종합하면 고의적으로 투자약관을 왜곡해서 수조원대의 투자를 했던, 명백한 하자가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상품에 대한 왜곡이 비단 한차례만 이뤄진 게 아니라 총 81건에 걸쳐 행해진 것으로 예보는 파악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CDO CDS와 같은 구조화증권은 세컨더리 마켓이 없는 장외시장에서 거래되는 원래 유동성이 떨어지는 상품”이라며 “딜러가 물량을 팔고 손을 놓으면 그만이다”고 말했다.
◆ "황 당시 은행장 투자 직접관여 흔적 묻어나는 문서 다량 확보"
의도적 왜곡을 알면서 최종 사인을 했다면 ‘기망행위’이고, 내용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사인했다면 ‘배임’에 해당한다.
예보 관계자는 “김 아무개가 대출 받을 거라고 서류 작성해놓고, 최 아무개한테 대출해주는 상황과 다를 게 없다"며 "명백히 정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결권자가 책임이 있음이 분명해지면서 황영기 회장이 이 전결권자의 결정을 알고 있었고, 투자유도에 직접 관여했는지가 이번 징계의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
금감원이 중징계 방침을 내린 근거도 ‘투자결정 과정과 리스크 관리에 있어 명백한 규정위반 사실과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는 의사결정을 부행장 전결(專決)로 위임한 과실’이다.
정황상으로 볼 때 10억달러에 달하는 고위험 구조화증권에 투자하는데 행장이 몰랐다는 황회장측 주장은 결국 "무능했거나 거짓을 말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게 감독기구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황 회장측은 “직접 관련이 없다”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예보는 황영기 회장이 투자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서류상 증거를 확보했다.
당시 책임자였던 부행장과 황 회장 사이에 맺은 성과계약서가 한가지 예로, 외화구조화증권 부문에 대한 성과를 가장 높은 평가대상에 올려놨다.
즉 황 회장이 성과보상을 내걸어 투자를 독려했고 부행장이 이를 따랐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셈이다.
이 같은 평가는 3년 동안이나 계속됐고 2006년에는 CDO CDS 부문에서 수익의 60%를 증대시키는 등 성장세를 보였고 이에 대해 황 회장이 높게 평가한 사실이 있다는 게 예보가 파악한 증거다.
이 밖에도 황 회장이 자산증가와 수익확대를 요구하며 리스크가 높은 투자를 유도한 사실을 증명하는 추가 문서도 확보됐다.
황영기 회장측은 “IB사업단 차원에서 우량자산을 확대할 것을 이야기한 것으로 어느 은행 어느 부서나 계약을 맺고 한다”며 “황 회장이 직접적인 지시를 했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