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왈핀디 지구에서 유세 도중 총격과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하면서 20명이 죽음을 당했고, 부상을 입은 부토는 병원에서 수술 도중 사망했다.
폭발 이전에 두 세 차례 총격이 가해지면서 부토가 총격에 암살되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아직 정확한 내용은 확인할 길이 없지만, '테러와의 전쟁'에 앞장 서던 부토가 친미주의자였기 때문에 이번 사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이 아닐까 하는 쪽으로 모든 시선이 모아지는 중이다.
이번 비보가 국제 금융시장에 미친, 혹은 앞으로 미칠 영향은 아직 불확실하다. 미국 주가와 금리 그리고 달러가 일제히 하락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파키스탄발 악재로 이날 시장의 흐름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그러나 미국 시장이 동요했기 때문에 여타 국제 금융시장으로 파급효과는 불가피하다. 주말 아시아 증시 전반은 '미국' 금융시장을 통한 파키스탄 재료로 하락하고 있다.
물론 납회를 맞이한 시장이라 이 재료가 얼마의 영향을 주었는지는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곤란하며, 앞으로의 현지 시장과 미국 시장의 전개가 주목된다.
◆ 술렁거리는 미국 대선정국
한편 미국 정치권은 더욱 동요하고 있다. 부토가 친미성향의 인사라는 점에서 충격이 심했다. 휴가 중이던 부시가 긴급 기자회견을 가지고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가진 것으로 그 충격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물론 가뜩이나 얇아진 금융시장에 이 정도 지정학적 충격은 갖가지 예측을 난무하게 만들면서 변동성 요인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파키스탄 야당 지도자의 죽음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파키스단은 핵으로 무장한 나라이며 미국과 적대 관계인 나라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기거하며 항상 지정학적인 위기 속에 살아가는데도 미국으로서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동맹군이었다.
이런 나라가 혼란에 빠진다는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정치 경제 그리고 금융시장에도 일정부분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쪽은 당장 다음 주에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를 앞둔 대선 정국에 이번 사태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대테러 정책에 대한 비판이 강화되는 분위기라 어떤 쪽이 기선을 잡는지가 중요한 갈림길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 잘나가던 카라치주식시장, 큰 시험무대
한편 파키스탄은 현 정권과 야당이 권력분점에 합의하고 있었고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대테러 전쟁 명분도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내전이 발생할 것이라거나 핵 위기가 올 것이라는 등 다소 과도한 억측은 금물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잘 나가던 파키스탄 증시가 흔들리고 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하락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카라치 주식시장의 KSE100지수는 목요일 0.3% 하락했다. 올들어 47% 급등한 상황이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지난 해 중반부터 이 시장에 주목하던 외국계 기관 투자자들은 첫 시험무대에 오르게 됐다.
파키스탄이 이전에는 안정적인 정국이었냐하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 더 큰 혼란의 시간이 이어질 것은 분명하다.
부토의 장례가 치러지는 28일 파키스탄 야당 지도부는 내달 선거를 보이콧한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정한 자유선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샤라프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날 것도 요구했다.
◆ 미국의 중동 안정전략 '흔들'
미국은 그 동안 무샤라프와 부토가 합심해서 정국 안정을 이끌기를 내심 바래왔다. 하지만 무샤라프는 테러와의 전쟁을 무기로 정권유지에 급급했고 이슬람 극단세력들은 선거 정국을 이용해 활동무대를 확대해왔다.
다수 분석가들은 내달 선거를 이용해 민주적 질서를 회복하고 이슬람 극단파에 대한 방어전선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상당히 위협받게 되었다는 지적을 내놓는 중이다.
지난 10월에도 폭탄테로 때문에 부토 측의 집회에서 150명이 사망하는 등 이 곳에서 극단적인 폭력 사태는 그리 낯설지만은 않게 됐다.
특히 이번 사태는 사망한 부토 전 총리가 얼마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총리가 되면 서로 협력해서 테러와의 전쟁에 나서자고 말한 것이 알려진 뒤의 일이다.
부토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그리고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두 차례 파키스탄 총리직을 지냈다. 무슬림 세계에서는 첫 여성 총리가 됐던 그녀는 파키스탄에서 유력 정치가의 자손이었지만, 정치적 혼란과 폭력 사태에서 비극적인 가족사 속에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 줄피카르 알리 부토가 파키스탄의 총리직을 지냈지만 1979년 군사 쿠데타 속에 처형당했고, 그녀의 두 오빠들도 의문의 상황 속에서 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