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산운용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정부의 해외펀드 비과세 조치 발표에 따라 해외펀드 조성을 본격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다. 지난 주 투신사 한 곳에서만 억대 규모의 달러를 모았다는 다소 부풀려진 얘기도 들린다.
여하튼 국내 과잉유동성을 해외로 유출시켜 환율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정부의 뜻대로 시장이 따라 움직여 주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 투자수익률이 해외투자에 비해 크게 못미친데다 정부의 해외펀드 비과세 조치가 나오면서 해외투자로 몰리는‘관성효과’가 발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우려와 볼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국내 주식에 투자돼야 할 돈들이 해외주식 투자로 대거 쏠리면서 국내 주식시장의 투심 급랭은 물론 수급 불균형까지 불러온다는 우려다. 실제 지난 16일 대책 발표 이후 코스피 지수는 사흘 동안 30포인트 가까이 빠졌다.
게다가 자산운용사들이 해외투자 시 환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100% 헤지를 할 경우 국내자금의 해외유출 효과는 '0'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시차 효과만 있을 뿐 수급 효과는 없다는 것.
요약하면 정부는 환율 안정을 위해 해외 포트폴리오 투자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제 환율 안정에는 별로 효과가 없고 국내 주식시장만 침체시킨다는 것이다.
◆ 해외투자 늘어날 듯, 환율안정효과는 ‘글세’
실제 국제금융센터(KCIF)는 국내 자산운용사 해외펀드의 90% 이상이 환위험을 헤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작년 해외펀드 규모가 2005년보다 두 배 넘게 급증했지만 환율상승 유도 효과는 별로 없었다는 분석이다.
2006년 11월말 현재 국내 자산운용사의 해외펀드 규모는 13조원 가까이 되지만 이 가운데 비과세 혜택에 해당이 안 되는 펀드오브펀드(해외재간접펀드) 규모가 5조원을 넘고 있어 실제 해외펀드 규모는 넉넉잡아 8조원 가까이 된다고 보면 된다.
8조원의 90% 이상이 환 헤지를 하고 있다면 실제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 효과는 채 1조원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이번 정부 대책으로 올해 해외투자가 세 배 급증(약 24조원)한다고 가정해도 유출효과는 최대 3조원을 넘을 수 없고, 이는 작년 말 간접투자 잔액 243조원의 1.2%에 불과한 규모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16조원이 빠져나가도 환율 안정 효과는 채 3조원만큼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권오규 부총리는 이번 대책 발표 당시 "연간 100억~150억달러 정도의 해외투자 증가와 해외자금 유입 감소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의욕적인 숫자가 아닌 보수적으로 본 숫자라고 했으니 최소 12조원의 유출은 기대한다는 소리다.
포트폴리오 부문에서 3조원 이상의 유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면 나머지 9조원은 정부의 다른 대책, 즉 에너지 및 해외인프라 부문의 기업투자, 금융기관들의 해외 지점 건설, 금융기관의 외화대출 억제, 공기업의 해외차입 억제 등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이 부문은 심사숙고가 필요한 분야여서 포트폴리오 투자만큼 금방 유출효과가 나타나기 힘들다.
포트폴리오 부문에서 자금유출 효과를 더 많이 내려면 방법은 두 가지다. 쏠림현상이라고 봐도 될 만큼 투자액이 확 늘어나거나 헤지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상 두 가지 방법 모두 매우 큰 문제를 유발시킬 수 있다. 해외펀드에 자금이 너무 쏠리면 국내 주식시장이 무너질 수 있고, 헤지를 하지 않으면 투자리스크가 너무 커진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배당에서 먹고 환에서도 먹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며 환헤지가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 기사는 22일 오전 8시50분 유료기사로 송고된 바 있습니다.)
◆ 정부, ‘설마’ 환헤지 안하는 것을 기대하나
그렇다면 정부 생각은 어떨까.
헤지를 하고 안하고는 투자자 판단이지만 해외펀드의 경우 헤지를 '못하거나', '안하는' 경우도 많다는 설명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 투자의 경우 100% 환 헤지가 필요하지만 중국, 베트남, 인도 등 고성장으로 통화 절상이 예상되는 국가들의 경우 헤지를 안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나 베트남 투자의 경우 이렇다 할 환 헤지 방법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신흥시장의 경우 환 헤지는 '옵션'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투자의 정석은 환차손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미 과열 신호가 제기되고 있는 신흥시장에서 환 헤지를 하지 않는 것은 투기에 가깝다. 게다가 정부가 환헤지를 하지 말라고 유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외펀드의 90% 이상이 주식에 투자되고 있다는 점도 걸린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작년 11월말 현재 해외펀드의 주식형 비중은 95%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채권이나 실물투자는 거의 없기 때문에 투자 리스크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아울러 해외펀드가 신흥시장에서 지난해와 같은 높은 수익을 거두려면 금융위기가 없는, 국제 투자환경이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이 지속돼야 한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그래서 정책이 1년만 빨랐으면 하는 아쉬움도 토로된다.
물론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아무 것도 못한다. 그래서 '집을 살 때는 일단 지르고 보라'는 격언 아닌 격언이 생긴 지도 모르겠다.
정부는 '투자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말을 너무 신봉하는 건 아닐까.
물론 투자의 책임이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는 것은 투자에 앞서 반드시 환기할 필요가 있으며, 서투른 영어번역처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만 제도적으로 해외투자의 길을 유인해 놓고 그것으로 인해 말썽이 빚어지고 금융시스템 및 국가리스크로 비화된다면 과연 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