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26일 향년 53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고 조중훈 한진 회장의 셋째 아들인 조수호 회장은 1954년 인천에서 태어나 1979년 미국 남가주대(USC)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대한항공에 입사하여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1985년 한진해운 상무를 시작으로 한진해운과 인연을 맺은 조 회장은 1994년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03년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 국내외 해운산업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한진해운이 세계적인 선사로 성장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
조 회장은 세계 해운업계가 주목하는 해운인이었다. 폭넓은 대인관계로 국제해운업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컸다.
1991년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국제해사기구(IMO)에 가입할 당시 외무부, 해양항만청 등 관계기관에서 IMO 가입을 위해 발벗고 나서줄 인물로 조 회장을 지목했다. 그때만 해도 일년의 반 이상을 해외로 뛰며 세계 곳곳에 지인들을 심어 놓은 조회장이 적격인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때마침 이 무렵 그는 말타 공화국 명예총영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조 회장은 각국 대표들을 찾아 다니며 협력을 요청, 결국160여 개국의 투표로 치러지는 이사국 선임을 이뤄냈다. 그리고 지난 94년 우리나라가 IMO 이사국으로 연임되는데도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뿐만 아니라 1993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88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 최대의 민간해사기구인 발틱 국제 해사기구 협의회(BIMCO)의 이사에 선임되었고, 1999년에는 동 기구의 부회장으로 국제해운업계에서 한국해운의 위상제고 및 권익보호를 위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또한, 2000년부터 최근인 2005년까지 세계 선사 협의회 (WSC, World Shipping Council) 이사회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평소, 눈 앞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성장을 목표로, 어려운 판단을 할 때 '공동의 이익'을 기준으로 삼아 온 것으로 전해진다.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선친 고 조중훈 회장의 뜻을 이어, 해상운송과 같은 수송사업은 개인적으로는 이익이 없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할 기간산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선경지명적 경영감각, 과감한 용단과 탁월한 추진력으로 세계 해운시장을 놀라게 했다. 1994년 사장 취임 이후, 한진해운은 세계 해운사상 유례없는 초고속 성장을 이뤄내어 국가 기간 산업으로서 해운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초석을 다져 나갔다.
조 회장은 '변화와 혁신', 프로의식을 바탕으로 한 '신뢰경영'과 '고객 감동 서비스' 정신을 유달리 강조했다. 그는 급변하는 영업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밑에서 업무를 추진할 때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결정을 빨리 해주는 것을 최고 경영자의 역할로 보았다.
조 회장을 두고 사람들은 인간적이며 합리적이었다고 얘기 한다.
그는 아랫사람에게도 항상 존대하며 권위주의를 배격했다. 한 마디로 소탈하게 아래 사람을 대했던 것이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본인 스스로는 “아마 선입견 없이 사람을 대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또 전세계 200여 개에 달하는 해외 지점소에 과감한 권한 위임을 항상 강조하였고, 밑에서 소신 있게 기획안을 제출하면 포용력 있게 가능한 한 존중해 주었다. 그는 기업경영에서도 조직이나 부서간에 '휴먼 릴레이션'을 제일 강조하였으며, 사장 재직 시 회의를 진행할 때도 격식을 없애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도록 했다. 회의 시에는 자기 의견을 일방적으로 얘기하기보다 주로 임직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은 한진해운만의 리더가 아니라, 우리 해운업계, 나아가서는 세계 해운업계를 이끌어 가는 리더였다"며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 해운사에 남을만한 명실상부한 세계 해운업계의 별이었으며, 해운인으로서 그가 꿈꾸고 일구었던 비전이 우리 나라는 물론, 나아가 세계 해운산업의 앞날을 인도할 지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