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28일 경찰과 소방이 구룡마을 화재 현장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 구룡마을 2·3지구 등은 집과 생활용품이 전소돼 잿더미로 변했다
- 화재로 91가구 127명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경찰·소방 등 현장 확인...일부 구역 전소
[서울=뉴스핌] 고다연 기자 = "남은 물건이 하나도 없어요."
40년 가까이 구룡마을에 살았다는 주민이 잿더미를 손으로 뒤적거렸다. 손이 순식간에 검은 재로 뒤덮였다. 그는 한동안 집 터 앞에 서서 형체도 없이 사라진 집과 새카맣게 타 버린 마을을 바라보기도 했다. 다른 주민들도 자신이 살던 집이 있던 곳을 찾아왔다. 한 주민은 통화를 하면서 "야채가게 주변이 다 타서 호박 몇 개 남아있고 건너편에는 덜 탄 곳도 있다"라고 전소된 마을 모습을 설명했다.
28일 오전 11시 30분경 합동감식이 중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화재 현장은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불에 탄 가구들과 생활용품 등이 뒤엉켜 있었다. 집의 형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근처에서는 탄 냄새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심하게 올라왔다. 화재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불이 났다는 메시지를 보고 방 문을 열어보니 불이 이미 심하게 나 있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전날 화재가 발생한 서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인 구룡마을은 고요했다. 화재 당시 하늘에 가득했던 검은 연기도 보이지 않았다. 불이 시작된 2지구 근처로 다가가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약한 탄 냄새가 났다. 구룡마을과 인근 주민들은 마을 입구 근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인근 아파트에 산다는 70대 차모 씨는 "불이 삽시간에 올라오는 걸 보고 놀랐다"며 "기름에 불이 붙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화재 현장에 있었던 60대 상인은 "소방차가 세 대 들어오니까 차를 뺄 수가 없었다"며 "우리 차는 그대로 다 타버렸다"고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주민들은 "개포중학교는 인원이 다 차서 구룡중으로 신청해야 한다"며 화재 이후 이재민 거처에 대해 설명했다.
합동감식 진행 전 폴리스 라인 인근에 서 있던 80대 6지구 주민은 "20년 동안 구룡마을에 살았는데 화재 이후로 집이 어떻게 됐는지 가보지 못했다"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제 동사무소에 있다가 화재 소식을 듣고 뛰어와 보니까 불이 났다"며 "갈 데도 없고 어떻게 되어가나 상황을 좀 보려고 나와있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은 오전부터 합동감식을 통해 구획설정 등을 진행했다.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2지구 가건물 인근에는 노란색 선이 둘러졌다.
화재 완진 이후 약 7시간이 지난 오전 11시 30분, 화재 피해를 입은 구룡마을 2지구와 3지구 등은 전소 상태였다. 불에 탄 의자나 옷가지를 일부 알아볼 수 있었지만 이외에는 새카맣게 타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근처로 다가가자 매캐한 냄새가 심하게 났다.

소방과 경찰 인력이 현장을 오갔다. 화재 현장을 찾은 일부 주민들은 자신의 집터 인근을 서성이거나 "이건 챙길 수 있을까"라며 일부 형체가 남은 물건들을 살펴봤다.
이번 구룡마을 화재는 27일 오후 3시 49분경 신고가 접수됐다. 구룡마을 2지구에서 시작된 불길은 1·3·7지구로까지 번졌다. 소방용수마저 부족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오전 4시39분쯤 구룡마을 화재를 완전히 진화했다. 화재가 발생한 지 약 12시간 50분 만이다.
이번 화재로 30대 여성 1명이 다리에 가벼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주민 39명은 스스로 대피했다. 91가구 12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들은 인근 중학교와 호텔 등에 머물고 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구룡마을은 1980년대 초·중반과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강남권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철거민 등이 이주하며 생긴 무허가 판자촌이다. 지난 1월16일에도 마을 4지구에서 난 불이 5·6지구로 번져 주민 258명이 대피했다.

gdy10@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