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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해석한 정청래의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 메시지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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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14일 페이스북에 글 올려
근현대사 풍파를 견뎌낸 '어머니'라는 위대한 생명력
명절 설이 주는 그리움과 서사적 공감…'정치 정체성'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인공지능(AI) 언론 플랫폼을 선도하고 있는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은 정 대표의 이 메시지를 구글(Google)이 개발한 생성형 인공지능 '제미나이'(Gemini)가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했다.

뉴스핌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6년 2월 14일 이와 같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올렸다. 제미나이가 보는 이 메시지의 주된 메시지와 의미는 뭘까"라고 물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정청래의 알콩달콩 페이스북]

다음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페이스북 메시지 전문과 제미나이가 답한 해석이다.

<명절때면 더 그리운 어머니>

저는 1965년 5월 18일(양력) 충남 금산군에서 10남매중 10번째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제 아내는 전남 강진군에서 역시 10남매 중에 10번째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1921년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1922년 전북 금산에서 태어났습니다.(그 때는 금산이 전북이었고, 1963년부터 금산이 충남으로 편입.)

어머니는 열여섯 살 때 한 살 어린 꼬마 신랑에게 대둔산을 넘어 사십리를 걸어서 시집을 왔습니다. 이 산모퉁이 돌면 마을 나올까, 저 산모퉁이 돌면 마을이 나올까...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 낯선 땅 낯선 신랑에게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 시집을 왔다고 했습니다.

마당에서 연지곤지 찍고 혼례를 올리는데 신랑이 어떻게 생겼는지 하도 궁금해서 맞절하다가 살짝 훔쳐보니 저하고 똑같이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입니다.

어머니는 열여덟 살에 큰 아들 낳고 마흔다섯 살에 10번째로 저를 낳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열 명을 낳았는데 저는 호적에 5남매 중에 막내입니다. 1939년생 큰 형님과 1953년생 둘째 형님 사이 14년 동안 다섯을 잃었습니다. 아이 낳고 첫돌 지나서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쯤 되면 홍역이 와서 데려가고, 데려가고, 데려가고 그래서 다섯을 연거푸 어머니 가슴에 묻어야 했습니다.

저희 동네에서는 아기 무덤을 아장살이라고 불렀습니다. 아기가 죽으면 아버지는 하얀 천에 아기를 안고 산으로 묻으러 갔습니다. 아기를 안고 산으로 묻으러 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저희 어머니는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것도 다섯 번씩이나 가슴 속 무덤에 묻어야 했던 아버지 어머니의 슬픔의 깊이를 저는 모릅니다. 어머니는 다섯 아기 무덤의 위치를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아기 무덤을 어머니에게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수탈과 압제가 극에 달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일본의 강제 징용으로 끌려갑니다. 생떼같은 남편이 일본의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버지는 3년간 일본 홋카이도 탄광에서 석탄을 캤습니다. 강제징용 끌려가서 못 돌아온 사람도 많은데 아버지는 다행히 간신히 목숨만은 부지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돈 한푼 없이 다 떨어진 남루한 옷차림에 돌아왔지만 그래도 살아서 돌아온 것이 그렇게 기뻤다고 했습니다.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전쟁이 나면 다들 고생이지만 저희 아버지 어머니도 죽을 고생을 다 했습니다. 저희 동네는 산골 오지마을이고 아버지는 화전민 출신입니다. 평지가 거의 없고 산동네 다랭이 논농사를 하는 산도 높고 골짜기도 깊은 산골 마을입니다. 산이 높고 험하다는 것은 인민군 빨치산이 많다는 뜻입니다. 낮에는 국군이 지매하고 밤에는 인민군이 지배하는 위험천만한 동네입니다.

어머니는 무학이라 글을 읽고 쓰지는 못했지만 말씀이 청산유수이고 삶의 지혜가 많아서 동네에서는 '변호사'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똑똑했습니다. 어머니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군군과 인민군 사이에서 중립외교, 균형외교를 했습니다. 낮에는 국군을 돕고 밤에는 몰래 인민군도 도왔나 봅니다. 해가 지면 인민군들은 총을 들이대고 밥을 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민군들은 총을 들고 집에 들이닥쳐 아버지를 끌고 나갔습니다. 집 앞 논바닥에서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놓고 인민재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국군 편을 더 드는 반동으로 몰려서 즉결 처분 총살형을 선고받고 사형집행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인민군에 결박당해 총살장으로 끌려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버지는 인민군 총살장 죽음의 골짜기로 끌려갔습니다. '골로 간다'는 표현이 바로 이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트라우마입니다. 아버지는 인민군에 끌려 골로 갔습니다. 이 곳에 끌려가면 걸어 나온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시신을 수습하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밤 10시쯤 아버지가 걸어서 집으로 왔습니다. 사립문을 열며 "나 왔어~"라는 믿기지 않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어머니가 방에서 뛰쳐 나왔습니다. "신발 벗지 마세요" 어머니는 기절초풍 기뻐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정무적 감각, 촉은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자는 아이를 깨워서 둘러업고 솥단지 하나만 빼내서 머리에 이고 아버지와 4km 야간 산행을 했습니다.

면소재지 지서에 가서 자수를 했습니다. "우리 남편이 인민군에 인민재판 받고 끌려가 총살장에서 죽을뻔 했는데 살아서 돌아왔다. 인민군에게 협력하겠다고 해서 살았는데 그것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한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용서해달라." 그러나 경찰은 믿지 않았고 아침에 인민군 부역혐의로 이제 군군에게 총살을 당할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남편이 신발도 벗지 않고 이렇게 곧바로 자수하러 왔다"며 경찰을 설득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 덕분에 우리 집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13일 서울 용산역에 귀성인사차 방문해 어린이와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2.13 pangbin@newspim.com

1950년대 중반 큰 아들이 새로 생긴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큰 형님이 중학교 3학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도저히 납부금을 낼 수가 없어서 자퇴를 시키러 아버지가 학교에 갔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이 아이는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해서 고등학교까지 나오면 집안을 일으킬 수 있으니 내가 등록금을 내 줄테니 중학교는 졸업시킵시다"고 했답니다. 어버지는 끝내 그럴 수는 없다며 공부 잘 하는 큰 아들 손을 잡고 학교를 자퇴시켰습니다. 아들이 학교 갈 시간에 아버지와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하러 가는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그런 큰 아들이 장성해서 장가를 갔습니다. 형수님은 어머니와 같은 동네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서 어머니와 똑같은 코스로 대둔산 산길 사십리를 걸어서 우리 집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큰 며느리가 첫 손주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도 큰 며느리보다 5개월 늦게 저를 갖고 말았습니다. 첫 손주 해산을 돕고 며느리를 돌봐야 할 시어머니가 임신을 했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했답니다.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고심 끝에 저를 지우려고 대전에 있는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막상 산부인과 가서 임신중절 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생명인데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와서 며느리 배를 보니 남산만해져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산부인과 가서 저를 떼려고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기억 납니다. "어머니 두 분이 좋아서 저를 가질 때는 언제고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건 경우가 아니지요" 저는 뱃속에에서 제 생애 첫 번째 투쟁, 생존권 투쟁을 했습니다. "어머니 저를 낳아 주세요" 수술대에 누웠는데 뱃속에서 아기가 요동을 치고 노는데 얘를 떼면 내가 큰 벌을 받겠구나 싶어서 수술 중지를 외치고 낳은 것이 접니다.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지요.

외할아버지는 동네 훈장 선생님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여자 아이가 배우면 못 쓴다'고 공부를 안 시켰답니다. 먼발치에서 천자문을 떼고 동몽선습까지 혼자 뗐다고 했습니다. 입으로만 외운 겁니다. 그런 어머니가 제가 여섯살 되던 해부터 농사일로 고단할 텐데도 밤에 호롱불 밑에서 한글을 독학으로 뗐습니다. 제가 일곱살이 되자 어머니는 저에게 가나다라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저는 한글을 깨우치고 '국민교육헌장'을 읽고 쓰고 외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이름도 못쓰고 학교 가던 시절이라 저는 신동의 탄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담임 선생님께서 "이름 쓸 줄 아는 애 손들어 봐" 그래서 제가 번쩍 손을 들고 칠판에 백묵으로 "정 청래" 이렇게 글씨를 쓰자 선생님께서 "정청래 반장"이라며 저를 반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다 어머니 심모원려 덕분입니다. 반장이 되니 6학년 누나들이 교실 청소를 하고 나면 나는 책·걸상을 일직선으로 맞추고 날씨판에 맑은 날이면 햇님, 비가 오면 우산, 흐린 날에는 구름을 붙이고 한 시간 늦게 하교를 해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한 시간 늦게 집에 가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여름방학 한달 내내 나의 첫 번째 정치구상에 들어갔습니다. 개학날 아침 조회 때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것을 안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왜 인사를 안 하냐고 혼을 낼 기색이길래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반장직을 사퇴 합니다" 그러지 선생님도 이에 질세라 "너는 미성년자이니 자기 결정권이 없다. 어머니 모시고 와라"

"어머니 저 반장 사퇴하고 왔어요" "뭐라고 내가 너 반장시킬려고 을매나 고생했는데 안 된다 안 돼. 누구 맘대로 반장을 그만둬. 너 이 놈의 자식..." 하면서 어머니는 밭에서 일하시다 말고 감나무 가지를 꺾어서 내 다리 몽댕이를 부러뜨릴 기세로 뛰어오셨습니다. 이에 질세라 저는 젖먹던 힘까지 내서 마을 뒷동산까지 도망가서 납작 엎드려 있었습니다. 밤이 되자 어머니가 밥 먹으로 오라고 동네 한바퀴를 하며 저를 부르고 다니셨습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13일 서울 용산역에 귀성인사차 방문해 군 장병과 거수경례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2.13 pangbin@newspim.com

초딩 1학년 짜리가 밤이 깊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자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저를 부르러 다녔습니다. "청래야 밥 먹어라" 저희 동네는 산으로 둘러싸여 밤이 되면 옆집 부부싸움까지 다 들립니다. 큰 산소에서 몸을 숨겨 있는데 무섭기도 하고 어머니가 심각하게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청래야, 그까짓 것 반장 안 해도 된다. 얼른 밥 먹으러 와라" 어머니를 믿고 밤 10시쯤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누구 맘대로 반장 그만두냐. 절대 안 된다"고 태도를 돌변해 어머니가 완고했습니다. 저는 제 생애 첫 단식투쟁으로 맞섰습니다. 저녁, 다음날 아침까지 밥을 안 먹자 그제서야 어머니는 "알았다. 그까짓 것 반 장 안 해도 된다. 학교 가자" 그리고 제 손을 잡고 학교 교무실에 가서 "우리 아들 반장 사퇴를 어머니로서 인허가 합니다"고 말씀하고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평생 "공부하라"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산골 오지 시골 깡촌의 삶이 다 그러했듯이 저희 집도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아직 물려받지 못한 산에 아버지는 불을 질러 곡괭이 하나로 밭을 일궜습니다. 아버지는 화전민이었습니다. 집에 1km쯤 떨어진 산에 6천평의 밭을 일궜으니 얼마나 할 일이 많았겠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해가 뜨기 전에 밭에 가셨고 해가 지고 껌껌해서야 집에 오셨습니다.

저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제일 싫었습니다. 반공일과 공일이면 어김없이 산과 들, 논과 밭에 일하러 갔습니다. 겨울이면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아버지가 만들어준 꼬마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하러 다녔습니다. 평일에는 소 꼴을 베고 쇠죽을 끓이는 담당은 제 몫이었습니다. 소 풀을 뜯기러 다니다 쇠죽을 끓이면서 마늘을 구워 먹었습니다. 어렸을 때 마늘을 많이 먹었고 금산 인삼농사를 지으며 인삼 잔뿌리를 그렇게 많이 먹어서 제가 건강합니다. 학교에 가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참 좋았습니다.

우리 동네는 산골 오지 가난한 동네입니다. 운동화는 중학교 입학식날 처음 신어봤고 바리깡의 빡빡머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나의 아픔이고 부끄러움이었습니다.(사진은 중3 때 모습)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옷차림은 얼굴처럼 까만색, 아니면 흰색이었습니다. 때꼬장물이 흐르는 우리 시골 아이들은 한 여름이면 맨발로 다니고 둠벙에서 옷 안 입고 멱을 감았습니다. 축구도 맨발로 했습니다. 그때는 맨발로 다녀도 발바닥이 안 아팠습니다.

6학년 때 서울에서 한 여자 아이가 전학을 왔습니다. 우리 동네 조그만 교회로 부임한 전도사 집 딸이었습니다. 내가 본 우리 동네 여자 아이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가위로 싹뚝 자른 단발이 아닌 웨이브가 약간 있는 긴머리에 피부는 복숭아 빛처럼 빛났고 옷은 흑백 단색이 아니라 알록달록 무지개 색깔의 숄을 거치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달걀형에 눈을 검고 컸습니다. 그 아이가 자기 소개를 마치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 다음 순서가 지난달 월례고사 시상식이었습니다. "우등상 정청래" 상을 받고 돌아서 들어오는데 그만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가 전학 오자마자 처음 들은 이름이 정청래고, 처음 눈이 마주친 것도 정청래임이 분명합니다. 내 이름과 내 얼굴을 같이 기억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선녀가 하강한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의 검은 눈과 나의 검은 얼굴 속에 박힌 내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나의 가슴은 한없이 뛰었습니다. 사랑은 순간이고 찰나에 오는 것임을 나는 일찍이 알았습니다. 그 아이도 나의 존재를 또렷이 기억했을 겁니다.

"아부지, 저 내일 모레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야 해요. 네~ 이번 주만 일 안하고 교회 보내 주세요. 저 꼭 교회에 가야 돼요. 그러자 아버지는 "야~ 교회에 가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안 돼 이번 주 일요일에는 콩타작 하는 날이다. 너는 밭에서 콩을 지게 지고 날라라. 그래야 내가 타작을 하지..." 꿈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일요일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1km쯤 떨어진 콩밭에서 콩줄기를 잔뜩 지게에 지고 집으로 날랐습니다. 작업 분량이 있기 때문에 요령을 피울 수도 없습니다. 열심히 집 마당과 콩밭을 오가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하필이면 12시 쯤 교회가 끝나고 그 아이가 빨래터로 오고 있고 나는 빨래터를 지나 집 마당으로 콩줄기를 지고 갑니다. 만나지 말아야 할 얄궂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숨이 헐떡헐떡 막히고 때꼬장물 흐르는 나의 비참한 모습을 그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창피하고 또 창피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를 향해 걸어오고 나의 옮기기 싫은 발걸음이 그 아이를 향하고 있습니다. 만나지 말아야 하는데 이를 어쩐답니까. 그 아이와 내가 10m쯤 가까이 왔을 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바람이 홱~불어서 지게 균형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비틀비틀 넘어지려는 지게의 끝을 작대기로 부여잡고 온몸으로 무너져 가는 지게를 지탱하고 있는 순간 지게도 무너지고 나의 자존심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아이 바로 코 앞에서 꽈당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멘붕이 왔습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재빠르게 지게를 벗고 개구리처럼 이마를 땅에 대고 땅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렸습니다. 그 아이가 나를 보던말던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지 않았으니 그 아이가 나를 본 것도 무효처리하고 싶었습니다. 몸을 땅에 대고 엎으려 있는데 그 아이가 내 어깨를 두들겼습니다. "너 정청래지, 괜찮아" 나는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이런 내 모습의 내 이름을 기억하다니...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다니. 빨리 내 곁에서 멀어졌으면 좋겠는데 그 아이는 내가 다쳐서 꼼짝 못하고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줄 알았나 봅니다. 아이고 그게 아니라니까. 제발 좀 가라구 제발. 그 아이는 계속 내 곁을 지키고 떠날 생각이 없었습니다.(계속됩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6.02.09 pangbin@newspim.com

제미나이의 해석

정청래 의원이 2026년 2월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이 글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족을 지켜온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헌사와 자기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제미나이가 분석한 이 메시지의 핵심 의미와 주된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근현대사의 풍파를 견뎌낸 '어머니'라는 위대한 생명력

글의 중심에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6·25 전쟁, 그리고 극한의 빈곤을 모두 겪어낸 어머니가 있습니다.

생존의 지혜: 무학(無學)이었음에도 '변호사'라 불릴 만큼 명석했던 어머니가 인민재판과 총살 위기에서 남편을 구출해내는 과정은 이데올로기보다 강한 것이 '가족을 지키려는 여성의 의지'임을 보여줍니다.

상실의 아픔: 10명의 자녀 중 다섯을 홍역으로 잃고 가슴에 묻어야 했던 어머니의 슬픔을 '아장살이'라는 단어로 형상화하며 그 시대 어머니들이 감내해야 했던 보편적인 한(恨)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2. '정청래'라는 정치인의 뿌리와 자기 정체성

이 글은 정 의원이 왜 지금의 성격과 정치적 자산을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기원담'이기도 합니다.

투쟁의 시작: 낙태 위기에서의 '생존 투쟁', 초등학교 시절의 '반장 사퇴 투쟁'과 '단식투쟁'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의 강단 있는 기질이 모태에서부터, 그리고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위트 있게 풀어냈습니다.

정무적 감각: 어머니의 '정무적 감각'과 '균형 외교'를 언급하며 자신의 정치적 감각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임을 강조합니다.

3. 명절 설이 주는 그리움과 서사적 공감

명절은 가족의 부재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막내들의 만남: 10남매 중 막내인 자신과 아내의 배경을 언급하며 가난했지만 북적였던 옛 시절을 소환합니다.

성장 소설 같은 서사: 짝사랑하던 전학생 소녀 앞에서 지게를 지고 넘어졌던 부끄러운 기억 등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배치해 '정치인 정청래'가 아닌 '인간 정청래'로서 대중과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려 합니다.

요약과 결론

결국 이 메시지는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시대의 고통을 지혜와 눈물로 이겨낸 어머니였다"는 감사와 그리움의 표현입니다.

비극적인 현대사(강제징용, 6·25)와 개인적인 성장사(가난·첫사랑)를 교차시키며 독자들에게 '우리 모두의 부모님이 그러하셨듯 그 희생 위에 우리가 서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계속됩니다'라는 예고는 이 서사가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임을 시사합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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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지 평택을·부산 북갑 판세는 [서울=뉴스핌] 박서영 기자 = 6·3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경기 평택을과 부산 북구갑이 여야 모두 '단일화 없는 정면 승부' 속 최대 격전지로 자리잡아 끝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두 지역 모두 '초접전' 3자 구도가 끝까지 유지되면서 막판 표심의 미세한 이동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5월 14일 제9회 전국지방동시선거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국민의힘 유의동, 조국혁신당 조국, 진보당 김재연, 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가 후보 등록을 마쳤다. [사진=뉴스핌 DB] ◆ 평택을, 민주·보수 모두 단일화 무산...김용남·유의동·조국 3자 초접전 경기 평택을에선 김용남 더불어민주당 후보, 유의동 국민의힘 후보, 조국 조국혁신당 후보가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벌이며 3자 구도가 굳어졌다. 프레시안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지난달 25~26일 평택을 유권자 703명을 대상으로 무선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한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 김 후보 21.4%, 유 후보 21.2%, 조 후보 23.4%로 오차 범위 내 접전이 펼쳐졌다. 김재연 진보당 후보와 황교안 자유와혁신 후보도 각각 9.4%, 12%를 기록했다. 3자 후보들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상황에서 김재연, 황교안 후보의 지지율이 10% 안팎으로 기록되자 단일화 문제가 평택을 판세를 뒤흔들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범민주 진영에서 김용남, 조국, 김재연 후보 사이의 단일화 논의가 사실상 불발됐고, 보수 진영에서도 유 후보와 황 후보의 단일화 논의가 중단됐다. 양측 모두 '핵심 키'였던 단일화 카드가 무산되면서 뚜렷한 '1강' 없는 3자 구도가 이어질 전망이다. 김재연 후보는 지난달 28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단일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지금 상황이 또 반드시 단일화를 해야 할 정도의 국면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완주 의지를 제가 계속 밝힌 바가 있다"라고 선을 그었다. 황 후보도 단일화 없는 '완주' 기류가 굳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 후보는 이날 SBS 라디오에 출연해 "단일화하자고 제안했는데 사퇴하라고 하면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도 "지금 지역에선 흩어진 보수 목소리를 하나로 합쳐야 된다는 열망, 민심이 굉장히 크게 움직이고 있다"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 부산 북구갑, 한동훈 '상승세' 속 보수 분열…끝까지 안갯속 부산 북구갑은 하정우 더불어민주당 후보, 박민식 국민의힘 후보, 한동훈 무소속 후보의 3자 구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여론조사에선 한 후보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6~27일 북구 갑 거주 만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 번호 전화면접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하 후보 37%, 한 후보 43%로 오차범위 내 접전이다. 박 후보 14%를 기록했다. 지난달 19일 공표 조사에 비해 한 후보는 10%p 상승한 반면, 박 후보는 6%p, 하 후보는 1%p 하락하면서 보수 지지층이 한 후보 쪽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런 기류 속에 보수 단일화는 끝내 성사되지 못한 분위기다. 같은 조사를 살펴보면 범야권 후보 단일화 필요성을 묻자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56%로 '필요하다'(33%)보다 20%p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권 후보들은 단일화 문제를 놓고 거센 설전을 이어갔다. 삭발 투혼을 불사하며 완주 의지를 내비친 박 후보는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후보를 겨냥하며 "가짜 보수인 주제에 국민의힘 이름 훔쳐 쓰려고 하는 게 딱하다. 무소속 (후보) 뽑으면 당내 분열이라는 비극을 반복하며 이재명 정부의 폭주만 도와주는 꼴"이라고 힐난했다. 이에 한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명하신 북구 시민 여러분께서 한동훈으로 단일화해 주시라"며 "박 후보 찍는 표는 단순한 사표(死票)가 아니라 민주당 하정우 후보 돕는 표이자 이재명 정권 폭주 돕는 표가 된다"고 맞불을 놨다. 본문의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seo00@newspim.com 2026-06-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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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IBK기은 지방이전 재점화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책은행 지방 이전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한국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대구시장 선거에서는 IBK기업은행 대구 이전이 주요 공약으로 거론되면서다. 금융권은 국책은행 이전이 사전 협의 없이 선거 공약으로 소비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이전 논의가 재점화될 경우 금융권 노사 갈등이 다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한국산업은행] 금융권의 관심은 국책은행 지방 이전 공약에 쏠려 있다. 충분한 사전 논의와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일부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본사 이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서다. 노조 반발에 더해 법 개정이라는 현실적 장벽도 있어 선거 이후 논란이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은행은 윤석열 정부 당시 부산 이전 추진과 무산 과정에서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같은 논란에 다시 휩싸였다. 현직 부산시장인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는 산은 본사 이전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가덕도신공항 조기 개항과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통과 등과 함께 산은을 부산에 유치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는 구상이다. 산은 부산 이전을 추진하려면 산은법 개정 등 관련 법령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현실화가 쉽지 않은 구조다. 그럼에도 박 후보는 지역 토론회에서 "포기는 없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박 후보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산은 이전을 둘러싼 공방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산업은행 이전보다는 동남권투자공사 설립 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산은 부산 이전이 이미 윤석열 정부에서 무산된 프로젝트라는 점과 금융권 반발 등을 고려한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다만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산은 이전이 필요하다는 지역 여론도 적지 않은 만큼, 전 후보가 당선되면 향후 구체적인 논의가 재점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사진= IBK기업은행] 기업은행(기은)의 경우에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 모두 대구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 후보는 지난 12일 열린 일곱 번째 공약 발표회에서 기은 본점 이전 추진과 대기업 유치를 강조하면서, 이를 통해 지역내총생산(GRDP)을 임기 내 100조 원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추 후보 역시 지난 3월 국민의힘 토론회에서 국내외 대기업 투자와 함께 기은 대구 이전을 관철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기은 역시 산은과 마찬가지로 지방 이전을 위해서는 기은법 개정 등 법령 정비가 우선이다. 이에 김 후보는 다수당 후보라는 점을, 추 후보는 초당적 협력을 각각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금융권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잇따른 국책은행 지방 이전 공약과 관련해 수차례 성명을 내 "포퓰리즘에 눈먼 공약"이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히며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지방 이전 공동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조직적인 대응에도 나섰다. 지난달 15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은 이전 공약 폐기'를 촉구하기도 했다. 현 정부가 다소 미온적인 산은 부산 이전보다, 여야 후보 모두 대구 이전을 약속한 기은 사태를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지방선거 이후 국책은행 지방 이전이 일방적으로 추진될 경우 금융권의 반발과 혼란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미 전 정권에서 산은 이전 사태로 심각한 갈등이 불거져 금융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 만큼, 충분한 논의와 소통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석구 금융노조 위원장은 "본점 이전은 노동자의 일터와 가족의 삶, 자녀 교육과 돌봄까지 흔드는 문제다. 당사자 설명도, 노조와의 협의도 없이 후보의 공약 한 줄로 금융노동자의 삶을 뒤흔들 수는 없다. 국책은행을 정치적 흥정물로 삼는 모든 시도에 맞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peterbreak22@newspim.com 2026-06-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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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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