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청구권 예외 조항 활용한 것…주택임대차보호법 충돌 없다
[서울=뉴스핌] 이동훈 선임기자 = # 서울 서초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 40대 후반의 김모씨는 최근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올해 9월인 전세계약기간이 끝나면 집을 비워주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강남3구까진 아니더라도 한강벨트 등 이른바 '상급지'에 집을 갖고 싶은 '욕심'도 김씨가 무주택자로 남은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지난 12일 정부의 발표는 김씨에게는 날벼락이었다. 당연히 활용할 계획이었던 전세 계약갱신청구권은 쓸 수도 없으며 강제적으로 이사를 해야할 상황이 돼서다.
김씨는 불만이 많다. 전월세계약 갱신청구권과 세입자 보호 확대는 현 정부의 전신인 문재인 정부가 주도해 확정된 것이 아닌가. 그런 정부 정책을 믿었는데 새정부의 국정 목표에 따라 순식간에 전셋집에서 나오게 될 판국이다. 여기에 전셋집이 크게 줄었으니 경기도나 서울 외곽에서 원치도 않는 집을 사야할 판국에 놓였다. 대통령 스스로 정부 정책을 신뢰할 수 있어야한다고 했는데 이게 정책 신뢰 훼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주택 투기꾼'을 잡기 위한 정부의 다주택자 제재 조치가 주택임대차 시장에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정부의 다주택자 추가보유 주택 매도 강요와 거주하는 1주택자 정책에 따라 전월세를 사는 세입자들의 주거권이 대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 방침에 따라 자녀 교육이나 직장과의 거리 그리고 향후 주택 마련 계획을 위해 수립했던 주거사다리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할 상황에 놓였다. 아울러 주거복지를 위해 도입된 전월세계약갱신청구권은 무력화된 상태다.
15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 발표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및 보완방안'에 따라 현재 다주택자 보유주택에 전월세를 살고 있는 세입자들은 예외없이 전월세 계약을 갱신하지 못하고 이사를 해야한다.

정부가 이번 방안을 발표한 배경은 다주택자를 제재하고 자신이 살 집 한 곳을 보유하는 '실거주 1주택자' 주택문화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는 잇따라 "주택은 사는 곳"이라며 자신이 살 집만 보유할 것을 권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 계층은 다주택자가 아닌 전월세 세입자로 꼽힌다. 이들은 자녀 교육이나 직장과의 거리, 주거 편의 등을 이유로 집을 보유하지 않고 전세를 살고 있거나 집이 있더라도 다른 곳에 거주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번 정부 방안에 따라 자신이 갖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거나 양도세 중과 유예 폐지에도 불구하고 집을 팔지 않은 다주택자가 보유한 다른 주택으로 이사해야 할 상황이 됐다.
특히 문제는 정부가 약속한 전월세계약갱신청구권이 무력화됐다는 점이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선 집주인이 들어가 살겠다고 하면 세입자는 전월세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번 방안은 주임법과 충돌되지 않는다는 게 국토부의 이야기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금도 주임법에는 집주인이 들어가 살겠다면 전월세계약갱신 청구권 적용을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 있다"며 "이 예외 조항을 확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입장은 다르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사적인 결정이 아니라 정부정책에 따라 전월세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거나 묵시적 계약연장으로 더 살 수 있는 전셋집을 강제로 비워줘야하게 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 정책이 더 강화되면 앞으로 자기 집이 아닌 다른 사람이 보유한 집에는 아예 살 수가 없게 된다. 다주택자 매물이 시장에 대거 쏟아지더라도 집주인이 실거주를 해야하기 때문에 전세 매물은 대폭 줄어 전셋집을 구하기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주거복지 정책의 근간을 바꾼 이번 정책은 시행령 개정 정도로 추진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집주인이 실거주를 하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수 없다는 조항이 주임법에 있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훼손되게 된 만큼 법 개정이나 주임법의 상위법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이번 조치에 따라 집을 매입한 사람이 현재 세입자의 전월세 계약 이후 실거주할 수 있도록 토지거래허가제를 변경하는 '부동산거래에관한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주임법에 계약갱신청구권 예외 조항이 있다는 점을 들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정부 정책 변경에 따라 일괄적, 강제적으로 갱신권을 사용할 수 없게 된 만큼 상황이 다르다"며 "최소 주임법 개정이 있어야 제도 시행이 가능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결국 위법·위헌 소송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의 이번 조치는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양도세 중과 유예 폐지를 추진하며 "정부 정책에는 신뢰성이 있어야한다"고 언급한 것이 지적된다. 계약갱신청구권을 담은 임대차3법은 현 정부의 전신인 문재인 정부 때 추진된 것으로 세입자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현 정부가 이를 무력화했다는 점에서 정책 신뢰성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4~8년을 더 살겠다는 세입자의 계획이 좌절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택 매매·전세 대출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에서 현금부자가 아니면 집을 사거나 그나마 있는 전셋집에 들어가기도 어렵게 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 정부의 '실거주 1주택자' 정책은 현 정부에서 나온 정책으로 아직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정책의 추진을 이유로 집을 빌려서라도 살고 싶은 곳에 살겠다는 세입자들의 자유를 침해한 셈이며 무엇보다 정부의 대표적 주거복지 정책인 계약갱신청구권을 제도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든 정책신뢰 훼손은 논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donglee@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