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설립 전 단지는 파는데 우린 왜"…'비자발적 락인' 현실화
대우·삼성·현대 '3파전' 예고…건설사 물밑 수주전은 '후끈'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면 뭐합니까. 통합심의 통과라는 호재에도 매물이 쌓이고 호가는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아파트 단지 내 상가. 통합심의 통과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지만,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통상 정비사업에서 '통합심의'를 넘으면 기대감으로 호가가 오르고 매물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시범아파트는 정반대 상황을 보이고 있다. 매물은 쌓이고, 급매물이 나와도 거래는 성사되지 않는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이 현상의 배경으로 지난 10월 15일 발표된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지목했다. 해당 대책이 여의도 시범아파트 단지에 규제의 맹점으로 작용하면서, 통상적인 정비사업 기대감이 시장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 통합심의 조건부 가결에도 호가 '뚝'…신탁방식 특수성에 '퇴로' 막혀

이날 단지 인근에서 만난 공인중개사들은 일제히 '10·15 대책'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했다. 정부가 투기과열지구를 확대하면서 정비사업의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규정을 강화했는데, 이 과정에서 신탁방식을 택한 시범아파트가 직격탄을 맞았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단지의 지위 양도 금지 시점은 사업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인 '조합방식'은 조합 설립인가 이후부터 지위 양도가 금지된다. 따라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더라도 조합이 설립되지 않은 초기 단지들은 여전히 매매 기회가 남아 있다.
반면 시범아파트가 채택한 신탁방식은 '사업시행자 지정 고시일'을 기준으로 한다. 시범아파트는 이미 2021년 11월 한국자산신탁을 사업시행자로 지정했다. 10·15 대책으로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기준일이 이미 과거인 시범아파트는 유예 없이 거래가 즉각 동결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에 당국은 투기과열지구 확대에 따른 문제를 완화하고자, 조합설립인가(또는 사업시행자 지정) 후 3년 내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하지 않은 재건축 단지에 한해 예외적으로 3년 이상 보유자에게 양도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내년 상반기 사업시행인가 신청이 예정돼 있어, 신청이 접수되는 순간 이 예외 조항은 사라지고, 10년 보유·5년 거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소유자는 사실상 매도가 어려워진다.
A공인중개사는 "시범아파트는 신탁사를 미리 지정했다는 이유만으로 퇴로가 완전히 막힐 위기"라며 "10년 보유·5년 거주 요건을 채우지 못한 갭투자자나 다주택자 소유주는 사실상 '비자발적 락인(Lock-in)' 상태에 빠진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내년 상반기 문이 닫히기 전에 매도하려는 심리가 매물을 늘렸지만, 거래가 묶이면서 실제 매도세는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 "조합설립 전 단지는 파는데 우린 왜"…'비자발적 락인' 현실화

이 같은 투매(投賣) 현상으로 호가는 내려가는 추세다.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시범아파트 전용 79㎡는 최근 29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직전 최고가였던 29억5000만원보다 3000만원 하락한 금액이다.
수치상 하락 폭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해당 거래 물건은 한강 조망이 가능한 로열동·로열층에 수리까지 완료된 이른바 'A급 매물'이었다.
A중개사는 "시장 상황이 정상적이었다면 30억원을 훌쩍 넘겼을 물건이 전고점보다 낮게 팔렸다"며 "상대적으로 조건이 떨어지는 비로열층 매물은 현재 호가가 28억원 초반까지 밀려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거래된 9동 6층 전용 79㎡ 주택은 28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이 주택이 통합심의 통과 직후 거래된 사례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 달이 지난 현재 호가는 여전히 유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설명이다.
공인중개사들은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사업시행인가 신청'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매물 적체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B공인중개사는 "소유주들 사이에서는 '어차피 규제 때문에 못 팔 거라면 빨리 인가 신청을 해서 정리할 사람들을 정리하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며 "특히 고령 원주민들은 복잡한 설계나 평형 배정보다는 오직 '사업 속도'에만 관심이 있어 신탁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상가 소유주들 간 갈등 불씨도 감지된다. 지분 쪼개기 금지 조치 이후 지하상가 등의 소유권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일부 소유주들이 점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펜스를 설치하는 등 물리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C공인중개사는 "한 호수에 여러 명의 소유주가 얽혀 있거나 위치가 특정되지 않은 지하상가의 경우, 향후 관리처분 단계에서 진통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 대우·삼성·현대 '빅3' 각축전…물밑 경쟁은 이미 '활활'

시공사 선정 관련한 대형 건설사들의 셈법은 분주하다. 시범아파트가 내년 상반기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하면, 하반기에는 시공사 선정이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3파전'을 유력하게 점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대우건설이다. 이미 2023년 공작아파트를 수주한 대우건설은 시범아파트까지 수주해 여의도 내 입지를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공작아파트 수주 전부터 시범아파트를 포함해 광장아파트까지 여의도 일대 주요 단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며 준비해왔다"며 "실제 수주전이 열리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최근 여의도 대교아파트를 수주한 삼성물산 역시 강력한 경쟁자다. 일각에서는 삼성물산이 대교아파트에 이어 시범아파트까지 수주해 여의도 일대에 '래미안 타운'을 조성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관계자는 "대교아파트 수주를 발판 삼아 시범아파트 역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여의도의 상징성이 큰 만큼 내부적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또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단지"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계획안에 따르면 시범아파트는 지상 최고 65층, 2493가구 규모의 매머드급 단지로 탈바꿈한다. 주요 쟁점이었던 노인요양시설(데이케어센터)은 원안대로 수용됐고, 단지와 한강공원을 잇는 입체보행교 설치도 확정됐다.
doso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