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FRS 전면 도입국 지위 우려"..., 3년 만에 '일탈회계' 종료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삼성생명을 비롯한 국내 생명보험사들의 '일탈회계'가 허용한지 3년 만에 막을 내렸다. 금융감독원이 해당 회계처리를 국제기준(IFRS 17)에 맞춰 정상화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도 삼성생명 등이 '계약자지분조정'을 별도 항목으로 처리한 회계방식이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국내 금융당국과 국제기구가 동일한 해석을 내림에 따라 논란은 사실상 종결 수순에 들어갔다.
◆ 논란의 출발점, '삼성전자 지분'과 회계 예외 허용
15일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논란의 기원은 2023년 IFRS 17(보험계약 회계기준) 도입이었다. IFRS 17은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을 시가(현재가치) 기준으로 평가해 보험부채로 인식하도록 규정하며, 회계의 투명성과 비교가능성 강화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삼성생명 등 국내 생명보험사는 금감원의 승인 아래 '계약자지분조정(PPA)'이라는 별도 부채 항목을 예외적으로 적용했다. 그 근거가 된 규정이 국제회계기준서(IAS) 1.19의 '일탈조항'이다. 이는 "극히 드문 상황에서 IFRS 규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재무제표의 목적에 반할 정도로 오해를 초래할 경우, 일탈을 허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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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삼성생명은 계약자 몫을 취득원가 기준으로 유지하며 시가 변동분을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서 "이익을 계약자에게 반영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재점화됐다. 국제회계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된 것이다. 일부 국내 회계법인과 학계 인사 등이 이에 "일탈 시 개념체계 적용 제외가 가능하다"는 해석을 제시하며 논란이 확산됐다.
◆ IFRS IC "일탈은 극히 예외, 기준 이미 충분히 명확"...금감원 "국제기준 부합 위해 정상화 필요"
결국 한국회계기준원은 해당 논란의 국제적 판단을 구하기 위해 IFRS IC에 공식 질의를 제출했다.
회계기준원에 따르면 IFRS IC는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 각국 회계기준제정기구, 글로벌 회계법인 기술팀 등을 대상으로 국제 아웃리치를 진행했다. 16개 기관이 응답한 결과는 일관됐다. "일탈 적용 사례는 사실상 본 적이 없거나 극히 제한적으로만 존재한다", "제한적 사례에서도 기업들은 IAS 1.15와 개념체계를 준수해 회계처리를 했다" 등이었다.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 사무국(IFRS IC Staff)은 해당 내용을 정리했고, 이를 바탕으로 IFRS IC는 지난달 25일 정례회의에서 위원 14명 전원은 만장일치로 "일탈회계는 국제적으로 극히 드물고, 현행 IFRS 문구만으로 충분히 해석 가능하므로 기준 개정은 불필요하다"고 결론냈다.
회계기준원은 "IFRS IC가 IAS 1.19 '일탈' 규정 적용 시에도 IAS 1.15의 '공정한 표시'와 '개념체계'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일부 국내 회계계에서 주장해온 "일탈 시 개념체계 적용 제외 가능"이라는 논리는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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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S IC는 지난 8일 관련 내용을 '잠정 의제 결정(tentative Agenda Decision)' 형태로 공개했으며 내년 2월 6일까지 외부 의견을 수렴한 뒤 상반기 중 최종 확정·공표할 예정이다.
IFRS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130여 개국이 채택한 회계기준을 제정·해석하는 공식 기구이고, IFRS IC는 IFRS 기준서의 해석에 대한 실무적 의문이나 예외적 상황에 대해 공식 해석과 지침을 제공한다. 한국회계기준원은 외부감사법에 따라 회계처리기준의 제정에 관한 업무를 금융위원회로부터 위탁받아 수행하는 기관이다.
금감원도 IFRS IC 회의 직후인 지난 1일 한국회계기준원과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를 열고, 삼성생명의 일탈회계를 IFRS 17 기준에 맞춰 정상화하기로 결정했다.
금감원은 "국내 생명보험사가 일탈회계를 계속 적용하는 경우 한국을 IFRS 전면 도입국가로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일부 의견 등을 고려해 현 시점에서 일탈회계를 중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중단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 제도적 의미, 국제검증 통한 회계질서 정상화
이번 IFRS IC 잠정결론은 단순히 특정 회사의 회계문제를 넘어 국내 회계 해석의 국제 정합성을 검증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회계기준원은 "이번(IFRS IC) 질의는 국내 일부 이해관계자들이 일탈을 적용하면 개념체계의 자산·부채 정의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제기해 국제기준의 일관성과 국내 회계질서에 혼란이 발생한 데 따른 것"이라며 "이번 결론은 IAS 1의 원칙이 충분히 명확하다는 점을 국제적으로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국내 전문가 다수가 동의하더라도 IFRS의 본래 취지와 다르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며 '합의보다 원칙'의 우위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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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계전문가는 "이번 결론은 '국내 합의'보다 '국제 원칙'이 우위에 있음을 확인한 사례"라며 "IFRS 17의 해석이 국내 실무에 정착될 수 있을지가 향후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 "IFRS IC가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라는 '면죄부'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해 회계기준원은 "IFRS IC가 '광범위하지 않다'고 한 것은 한국 만의 특이사례라는 뜻이지 문제없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기준이 명확해 개정이 필요 없다는 것이지, 허용한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 남은 과제, 유배당계약자 권한 및 배당 분쟁 가능성
회계논란은 종식됐지만, 유배당계약자 권리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삼성생명은 "지분 매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해당 금액을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지난 9월 말 기준 약 12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금감원은 유배당보험 계약을 별도 항목으로 표시하고 관련 영향을 공시하도록 지시했지만, 계약자들의 연령대가 대부분 70~80대로 고령이기 때문에 실질적 배당이 이뤄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1970~1980년대에 유배당보험 159만건이 138만명에게 판매됐는데 보험 가입자들에게 배당해야 할 몫을 아직도 배당하지 않고 있다"며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그 돈은 고스란히 삼성생명의 자본금이 될 가능성이 많은데 계약 정의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 사안은 향후 법적 분쟁 및 국회에 계류 중인 이른바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 논의와도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의 평가 기준을 취득가에서 현재가로 바꾸고, 총자산의 3%를 초과하는 지분은 처분해야 한다.

결국 이번 결정으로 ▲국제기준의 우위 확립 ▲회계투명성 제고 ▲소비자 권익보호라는 세 가지 메시지를 남겼지만, '정책의 일관성'이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금감원이 내세운 '소비자 보호' 기조와, 여당이 '코스피5000특위' 등을 통해 추진 중인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yuny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