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왜 '새벽'을 건너뛰었나…규제·비용·지리의 장벽
한국만의 초고밀도 도시 구조가 만든 이례적 시장
속도 경쟁이 만든 편익과 그늘…노동·안전 논쟁 본격화
새벽배송, 금지가 아닌 '지속 가능한 모델'이 필요한 때
[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10여 년 전만 해도 온라인 주문 후 3~5일 걸리는 배송은 당연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쿠팡이 '로켓배송'을 전면화하며 당일·익일·새벽배송 체계를 구축한 뒤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한국의 소비자는 저녁에 주문한 상품이 다음 날 새벽 집 앞에 놓이는 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컬리·오아시스·SSG닷컴 등 주요 이커머스가 모두 새벽배송에 뛰어들었고, CJ대한통운까지 새벽물류를 확대하며 '속도 전쟁'이 업계 표준이 된 상황이다.
최근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가 '자정~오전 5시까지의 초심야 배송을 제한하고, 오전 5시 출근조가 새벽배송 물량을 담당해야 한다'는 안을 제시하면서 '새벽배송 논쟁'이 시작됐다. 이 제안은 곧바로 '새벽배송 금지'라는 프레임으로 확산됐고, 자연스럽게 타깃은 쿠팡으로 향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9~2023년 새벽배송 중 발생한 사망사고는 8건, 재해자 수는 10명에서 151명으로 급증했다. 새벽시간대 졸음운전·과로 위험이 반복되는 구조에서 '고수익을 위한 자발적 선택'이 모든 문제를 상쇄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새벽배송 자체를 금지하자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휴식권·안전장치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 흐름에 놓여 있다.
그러나 반발이 거세다. 소비자들은 물론 쿠팡 위탁기사들로 구성된 '쿠팡파트너스연합회'는 자체 조사에서 "93%가 새벽배송 제한에 반대한다"고 밝혔고, 쿠팡 정규직 택배기사들도 "노동권 개선이 아닌 정치적 이슈가 개입된 논란"이라고 반발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한국에서만 새벽배송이 이 정도까지 확장된 이유가 어떤 구조적 특수성에서 출발하는지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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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AI 제작] |
◆해외선 당일·익일이 기본…"새벽"은 아예 시장이 없다
미국의 대형 유통기업들은 빠른 배송 경쟁이 치열하지만 그 방향은 한국과 다르다. 아마존·월마트 등은 'Same-day delivery(당일 배송)'를 확장하고 있지만 이는 '몇 시간 내 배송'이지 자정~새벽에 도착하는 형태는 아니다.
새벽시간대 배송은 높은 야간 인건비와 소음 규제, 지역별 야간 운행 제한 등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미국 일부 도시에서는 밤 10시 이후 택배 트럭 운행을 제한하는 'Quiet hours' 규정까지 있다. 심야 운행을 늘릴수록 노동 규제 위반 가능성도 높아져 기업이 굳이 새벽 배송을 추진하지 않는다.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EU는 운수 노동자 근로시간 규제가 매우 강해 자정~새벽 사이 운행이 조금이라도 포함되면 그날 총 근무 시간이 10시간 이하로 제한된다. 여기에 높은 물류비·임금 구조, 도심 소음 규제 등이 겹쳐 '당일 또는 익일 낮 시간 배송'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이커머스의 발달 정도와 관계없이 '새벽배송'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구조다.
일본도 새벽배송 모델은 없다. 야마토·사가와 등 주요 택배사의 시간지정 서비스는 아침 8시 이후부터 시작된다. 일본은 편의점(PUDO)·택배보관함 문화가 발달해 소비자는 새벽에 문 앞에 상품이 도착할 필요가 없다. 2024년에는 '운전기사 초과근로 규제'가 시행되면서 택배업계는 오히려 심야근무 축소·운행 밀도 조절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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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만 가능한 이유…"편익이 아니라 구조의 선택이었다"
한국은 반대로 새벽배송이 빠르게 시장 표준이 된 드문 사례다. 서울·수도권의 높은 인구 밀도, 도심 인근에 집중된 물류센터, 단거리·고밀도 배송이 가능한 지리 구조가 결합된 덕분이다. 도로 상황도 새벽 1~5시는 극단적으로 원활해 한 기사당 처리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여기에 쿠팡·컬리·오아시스가 '배송 속도' 자체를 경쟁력으로 내세우며 새벽배송 경쟁은 생활 인프라 수준으로 자리 잡았다. 노동시장 구조 또한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야간근무 활용 여지가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결국 민주노총의 제한 주장과 기사단의 반발은 '새벽배송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해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한국형 '초고속 물류 모델'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고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속도 경쟁이 만든 풍경은 이미 당연한 일상이 됐지만 그 속도를 지탱하는 노동 구조는 여전히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과도기 위에 서 있다.
업계 전문가들 역시 "이제 와서 새벽배송이라는 서비스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산업 경쟁력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이며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는 접근"이라고 지적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문제의 본질은 서비스 폐지가 아니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후 규제를 강화하고, 기사들의 휴식권과 근로시간을 강력하게 보장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보완하는 데 있다"며 "재발 방지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 산업과 노동 모두를 고려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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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이 올해 역대 최대 분기 매출을 경신했다. 사진은 쿠팡의 배송차량 '쿠팡카' [사진=쿠팡] |
mkyo@newspim.com















